무기는 전시하고 희생자는 지워버린 '전쟁 기념관'의 현실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기자말>
[함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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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자 한국을 방문한 퐁니 탄과 하미 탄이 봉은사에서 공양한 초 ‘진실을 인정하다’라는 소원이 베트남어로 쓰여있다. |
| ⓒ 함수민 |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아래 퐁니 탄)과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아래 하미 탄)도 서울 봉은사에 들러 기도를 올렸다. 거대한 미륵불 앞에서 합장한 다음, 초에 '진실을 인정하다(thừa nhận sự thật)'라는 소원을 적어 공양했다. 두 사람은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학살 사건의 피해생존자이다.
1968년 2월 퐁니·퐁녓 마을에서 74명이, 하미 마을에서 135명이 한국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은 1965년부터 베트남 중부 5개 성에 전투 부대를 파병했는데, 이듬해부터 주둔 지역에서 130여 건의 학살을 벌여 1만여 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두 응우옌티탄을 비롯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피해생존자들은 오랜 기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요구해 왔다. 그때마다 한국 정부는 외면과 묵인, 가해 기억의 삭제와 전쟁 기억의 미화로 일관했다. 퐁니 탄과 하미 탄이 초에 새긴 기도는 침묵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저항이자, 책임 있는 조치와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이며, 현행 전쟁 기억 방식을 재고하라는 주문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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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기념관 1층의 대형무기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탱크, 전투기 등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
| ⓒ 한베평화재단 |
문제는 전쟁이 비상식적인 폭력과 학살, 존재의 절멸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국가는 전쟁의 부담스러운 부분을 도려내어 전쟁 기억 속에서 고통 받은 존재들을 지우고 전쟁 행위를 영광스러운 신화로만 '기념'해 왔다. 국가의 전쟁 기념은 무기 박람회나 퍼레이드의 개최, 전쟁 기념비의 건립, 호국 의례의 거행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전쟁은 공동체의 유익한 자산으로, 전쟁 폭력은 자국의 평화와 정의를 위한 일 또는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미화되어 왔다.
20세기경 이념 갈등과 열전으로 몸살을 앓은 한국 역시 전쟁 기념을 국가사업의 하나로 장려해 왔다. 그 결과 '호국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탄생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다루는 전시관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힌다. 이곳에는 고대부터 한반도를 관통해 온 승전의 역사와 대량 학살 무기들이 오락처럼 전시되어 있다. 3층 해외파병실은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한국의 대외 파병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한국군은 '타국에 도움을 건넨 구원자'의 모습으로 추앙된다. 또한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베트남 전쟁 전시 끝부분에 적혀 있다. 이는 전쟁을 벌인 이들의 과오와 책임은 묻지 않은 채 무장의 필요성만을 상기한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신화'처럼 근사하게 그리지만, 실제 전쟁은 고통의 언어로 쓰인 인간의 일이다. 전쟁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전쟁에 연루된 모두의 정신과 신체를 무너뜨린다. 자연을 파괴하며, 불발탄이 터질 미래에 유예된 죽음을 남긴다. 그러나 전쟁기념관 어디에도 전쟁이 야기한 고통은 묘사되어 있지 않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전쟁 폭력에 노출되었거나 학살당한 존재들, 전쟁의 기억을 떠안은 채 이후의 삶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 비명횡사한 비인간 존재들이 전쟁기념관의 전시에서 제외된 까닭은 전쟁을 '기념'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파병 한국군이 베트남 등 타국의 사람들에게 저지른 학살이나 성폭력 문제는 더욱 기억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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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존재를 위한 추모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와 사제단 |
| ⓒ 한베평화재단 |
"과거의 전쟁으로 스러진 무수한 넋을 기억하고, 인류가 전쟁이라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포기할 수 있길 기도합시다." - 강우일 주교
강우일 주교는 "이 땅에서 전쟁이 없어지고 군대가 사라지며 진정한 평화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명과 평화의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전쟁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쟁은 고귀한 생명들을 수없이 살해하고 전쟁 이후에도 인간성과 인격을 파괴한다.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아름답고 조화로운 피조물에게도 파괴와 멸종의 재앙을 몰고 온다"고 전쟁의 참혹함을 설명했다. 한국 전쟁은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념 갈등과 총력전 양상이 동반되면서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두 전쟁 모두에서 보복성 대량 학살이 빈번히 일어났고, 군인보다 더 많은 수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강우일 주교는 "전쟁이 사람들을 폭력의 사슬에 엮어 다른 폭력을 생산하고 전승하도록 한다"고 말하며 "전쟁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최악의 재앙"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기념'의 사전적 의미를 들어 전쟁기념관 명칭의 한계를 꼬집었다. 기념은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을 뜻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것은 인간사의 가장 큰 비극을 훌륭한 업적인 양 받드는 것과 같다. 강우일 주교는 "전쟁은 기념해야 할 선업이 아닌,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사회적 불의이자 윤리적 죄악"이라고 명확히 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전쟁에 관해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인간이 저지른 불의와 죄악을 인지하고 참회하여 전쟁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각오와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역설했다.
이날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상임이사는 "전사자의 훈장만 가득할 뿐, 군인 아닌 죽음이나 군인에 의한 죽음은 기억하지 않는다"며 전쟁기념관의 전시 내용을 비판했다. 그는 올해 60주기를 맞은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 마을의 이름과 희생자의 수를 호명했고,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과 전쟁으로 생을 빼앗긴 모든 존재를 불렀다. 시민들은 "기억하소서"로 복창했다.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삭제되었던 기억과 존재들이 아래로부터 이름 불리는 순간이었다.
"카인럼 마을 84분, 띤토 마을 57분, 지엔니엔·프억빈 마을 196분, 하떠이 마을 26분, 빈호아 마을 430분, 낌따이 마을 37분, 빈안 마을 1004분, 뇨럼 마을 169분, 흥찌 마을 25분, 쯔엉탄 마을 58분, 붕따우·토럼 마을 78분과 지금 이 순간에도 스러져 가는 가자지구와 레바논과 이란의 생명들, 폭격에 타 버린 숲과 강과 대지, 인간의 전쟁에 동원되어 비명도 없이 사라진 모든 존재를 기억하소서." - 구수정
추모 미사가 열린 전쟁기념관 앞으로 시민들이 손수 만든 "베트남 학살 60주년, 그 이름을 부릅니다", "가자의 폐허가 지구의 심장이다", "레바논의 절규, 세계여 응답하라" 등의 현수막이 걸렸다.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는 시민 참여 부스를 운영하여 전쟁기념관 전시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였다. 추모 미사에서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과거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상처 입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했고, 누군가는 우리가 무력과 폭력이 아닌 대화와 책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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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모 미사에서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현수막들 “가자의 폐허가 오늘 지구의 심장이다”, “레바논의 절규, 세계여 응답하라”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
| ⓒ 한베평화재단 |
추모와 기억은 행동이 수반될 때 동력을 얻는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국가의 공식 기억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 사회가 분단의 현실을 핑계 삼아 비대해진 군사주의, 견고한 무장평화 신화, 자국중심적인 사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2일 전쟁기념관은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이하 '탄탄이')"를 업무방해 및 공용건물손상죄로 고소했다. '탄탄이'는 베트남 전쟁을 망각해 온 한국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의 전쟁 기억 방식을 성찰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인데, 그간 전쟁기념관 3층 해외파병실에 전시된 채명신 장군의 훈령 전시물을 철거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 왔다.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고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던 해당 훈령은 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거짓'에 불과했다. 방한 당시 하미 탄은 "이 문구가 사실이었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이 죽었어야 했을까"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탄탄이'는 국방부와 외교부 등 국가기관에 민원을 넣고 전쟁기념관의 전시와 관련한 정보공개청구도 해 보았으나, 각 기관으로부터 회피에 가까운 응답만을 받았다. 이에 전략을 수정하여 전쟁기념관의 전시 공간에 들어와 비폭력 직접행동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탄탄이'는 전시실에서 손피켓을 들거나 항의의 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고, 쉽게 제거 가능한 테이프를 활용하여 훈령 전시물 앞에 '거짓'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전시물에 직접적인 훼손을 가하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전쟁기념관은 부정확하고 과장된 내용을 토대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탈부착이 쉬운 부착물을 전시물 위에 붙인 정도의 해당 사건은 무려 용산경찰서 강력2팀에 배정되었다.
고소장에는 '탄탄이'의 부착물이 채명신 장군 훈령의 "역사 교육적 효용을 해하였다"고 적혀 있다. 지켜지지 않은 훈령의 역사 교육적 효용을 묻기에 앞서, 실재한 베트남 민간인학살의 진상과 그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탄탄이'를 고소한 전쟁기념관은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6월의 호국인물로 채명신 장군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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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명신 장군의 훈령을 ‘거짓’이라 비판한 ‘탄탄이’의 비폭력 직접행동 반투명 포스트잇으로 ‘거짓’ 글자를 만들어 항의 의사를 전하고 있다. |
| ⓒ 함수민 |
우리는 전쟁을 성찰하고자 승전의 영광이 아닌 전쟁의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읽는 것, 국가의 공식 기억에서 배제된 존재들을 호명하는 것이야말로 이후 세대에 전달해야 할 전쟁 기억의 첫 단추이지 않을까. 견고한 군사주의의 벽에 부딪혀 때론 평화는 상상하는 것조차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과거에 전쟁이 있었다고 미래에도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부터 전쟁과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평화를 꿈꾸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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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입구에 걸린 어느 어린이의 다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전시 성폭력과 전쟁에 의한 피해와 상처를 주요 전시 내용으로 다루고 있으며,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
| ⓒ 함수민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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