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 로컬의 희망이 되다

2026. 6. 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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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마을 리포트

지난해 9월 강원 고성 청년마을 ‘곁마을’에서 진행한 지역살이 프로그램 ‘살아보세 금수강산’ 참가자들. [사진 곁마을]

고향을 떠나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일자리, 문화 인프라, 또래 네트워크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지역의 청년들은 진학과 취업을 이유로 도시로 향했다.

최근 로컬 현장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외지에서 유입된 청년들이 아니라 ‘지역 출신 청년’들이 로컬 생태계를 꾸리고 이끌어가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계속 지내고 있거나, 한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청년들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역에서 자리잡고 뿌리내리는 방식도 외지에서 온 청년들과는 다르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주민들, 부모 세대가 쌓아온 관계, 공간에 대한 익숙함이 이들이 정착해 사업을 펼쳐가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로컬 사업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지역 청년의 이동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출신지와 무관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아이턴(I-turn)’, 고향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제이턴(J-turn)’, 고향으로 돌아오는 ‘유턴(U-turn)’ 등이다. 그동안 로컬 청년 이슈는 주로 I턴, 즉 외지 청년 유입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U턴, J턴 청년처럼 지역과 접점을 가진 청년들의 역할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서도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61개 청년마을을 선발해 청년들이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과 삶의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마을당 3년간 매년 2억원씩 지원하고 있다. 올해 선발된 청년마을 10곳 가운데 5곳이 지역 청년들로 구성된 팀이다.

지역에 새로 들어온 청년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어려움은 ‘관계’다. 외지인을 경계하거나, 지역 자원을 이용하러 온 사람으로 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외지 청년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주민들과 라포를 형성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반면 지역 출신 청년들은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할 때 누구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김성진 행정안전부 사무관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활동 기반을 만들려면 공동체와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갈등이 생겨도 원만하게 해결할 역량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심사하다보니 올해 청년마을 사업에서는 지역 출신 청년들이 많이 선발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에 대한 이해, 사업 성공으로 이어져


강원 고성의 엄경환(37)씨는 2021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디자인 일을 하던 그는 익숙하게 봐온 어촌을 새롭게 브랜딩하고 싶었다. 고성에서 처음 시도한 일 중 하나는 항구 인근 건물 옥상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전시였다. 이곳은 전적으로 ‘어부들의 영역’이었다. 외지 청년에게는 잘 보이지도, 쉽게 접근할 수도 없었을 공간이었지만 어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엄씨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주민들에게도 그는 낯선 기획자가 아니라 수십 년간 함께 지낸 이웃의 아들이었다. 현직 어부들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선보인 전시는 지역의 군수까지 찾아올 정도로 주목받았다.

지역에 대한 이해는 콘텐츠 개발로도 이어졌다. 고성은 낮술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새벽 3시에 출근하는 어부들에게 정오는 퇴근시간이기 때문이다. 낮에 먹는 술 한잔이 어부들에게는 ‘퇴근주’인 셈이다. 엄씨는 아버지와 동료 어부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풍경을 떠올리며 ‘어부의 낮술’이라는 막걸리 브랜드를 만들었다. 고성 지역 찹쌀을 사용하고, 어촌의 일상과 지역 농수산물을 결합해 하나의 로컬 콘텐츠로 풀어냈다.

지역 네트워크는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자산이 되기도 한다. 경북 영주 청년마을 ‘소백산예술촌’을 이끄는 조국원(33) 클라우드컬처스 대표는 20대의 절반을 수도권에서 보냈다. 공연 분야의 일을 하다 2019년 영주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본격적으로 지역 문화기획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영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해온 덕분에 지역에서는 ‘그 집 아들이 아버지 일을 이어서 한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일 소개와 협업 제안도 이어졌다. 조 대표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사업 첫해에 세계유산축전 사업을 맡아 진행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클라우드컬처스는 지역사회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지역 출신 청년과 외지 청년, 둘 다 중요


유턴 청년들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은 때때로 “공부시켜 서울까지 보내놨더니 실패하고 돌아왔느냐”는 시선을 마주하기도 한다. 지역 출신이라는 점은 초기 자산이 되지만, 동시에 어릴 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정을 받아야 하는 과제를 주기도 한다. 일부 청년들은 활동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이런 시선을 돌파하고 있다. 조국원 대표는 “영주에서 활동하면서도 전국 단위 사업을 맡고, 중동·일본 등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며 “동시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익사업과 지역 문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안에서 지지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지역 청년과 외지 청년의 역할이 다르다고 말한다. 지역 청년은 기존 공동체와 외부 청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거’ 문제다. 외지 청년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당장 숙소가 필요하지만, 빈집이나 유휴 공간을 활용하려면 마을 번영회나 어촌계 등 주민 자치조직과의 협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때 지역 청년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고, 외지 청년이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연결할 수 있다.

반대로 외지 청년은 지역에 없는 시각과 기술, 더 넓은 네트워크를 가져올 수 있다. 제주 오아시스마을을 운영하는 조용우(39) 테이블지니 대표는 “농업 현장에도 디자인, 마케팅, 인공지능 등 새로운 역량을 가진 청년들이 필요하다”며 “로컬로 오는 청년들이 많아져야 토박이 청년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지역의 관계인구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부 청년 유입과 지역 청년 지원을 함께 고려하는 로컬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황종규 동양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외부 청년만 지원해서는 청년이 지역사회 안에서 고립될 수 있다”며 “그동안 대도시 청년의 창업이나 일자리 지원보다 농촌·소도시 출신 청년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했다. 이어 “여전히 지역에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많다”며 “새로운 청년을 유입하는 것만큼, 지역 출신 청년들이 계속 머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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