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주고 잊어버리세요” 20년 기부자가 말하는 ‘좋은 기부’

2026. 6. 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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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부자들
고태호 태헌 대표 인터뷰

고태호 태헌 대표는 “선행도 전문가가 해야 한다”며 이를 두고 ‘선행의 외주화’라고 표현했다. 양수열 기자

직접 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고태호 태헌 대표는 한때 장학사업을 직접 해보려 했다. 교회와 ROTC 인맥을 통해 기금을 모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도 맡았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개인정보 보호로 장학생 후보군도 구하기 어려웠고, 지원 이후 변화까지 추적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몇 년간 부딪혀본 끝에 그는 결론을 내렸다. “선행도 전문가가 해야 한다.”

방식을 바꿨다. 직접 사람을 찾아 돕는 대신 전문성을 갖춘 비영리단체에 맡기기 시작했다. 자신은 꾸준히 후원하고, 현장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식이었다. 그는 ‘선행의 외주화’라고 표현했다.

기아대책 고액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인 고태호 대표는 해외 아동 결연과 국내 취약계층 지원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기아대책 본부에서 만난 그는 “좋은 기부는 자동이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 대표는 “오랜 기부 경험 끝에 도달한 결론은 단순하다”며 “믿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면 오래 믿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Q : 기부 사업을 직접 해보려고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 “제가 91학번인데 당시에는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대학생들이 많았어요. 다니던 교회 내에서 ‘교회가 사회에 더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도 있었고요. 그래서 직접 해보자는 뜻을 모았어요. ROTC 선배들이 돈을 모았고 제가 실무를 맡았어요. 해보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장학금을 조성하는 것보다 필요한 학생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웠어요.”

Q : 사업이 잘 진행되지 못했겠네요.

A : “3년 정도 하다가 깨달은 게 있었어요. 선한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각자 본업이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업을 해야 하고 직원도 챙겨야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어려운 사람을 찾고, 지원하고, 변화를 관리하는 일을 계속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선행도 전문가가 해야 한다’였어요.”

Q : ‘선행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A : “회사도 마찬가지잖아요. 직접 하는 것보다 전문회사에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인 일이 많습니다. 기부도 비슷해요. 사람들이 운영비를 아까워하는데 직접 해보면 압니다. 어려운 사람을 찾는 데도 비용이 들고 사업을 운영하는 데도 비용이 들어요. 그걸 개인이 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기관에 맡기는 게 결국 더 많은 사람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 운영비에 대한 시선도 남다른 것 같습니다.

A : “많은 사람이 ‘100원을 기부하면 100원 전액 수혜자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직접 해보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압니다. 누군가는 현장에 가야 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관리해야 하고, 누군가는 회계를 해야 하니까요.”

Q : 좋은 기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 “믿고 맡기는 기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부를 지속하려면 ‘자동이체의 힘’이 필요해요. 기부 단체를 결정하고 어느 정도 잊어야 오래 갈 수 있어요. 계속 확인하고 성과를 따지고 감시하려고 하면 단체도 기부자도 지치게 됩니다.”

Q : 오랫동안 기부를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A : “젊었을 때는 열정이 많았습니다. 몸으로 뛰고 직접 도우려고 했죠. 지금은 다릅니다. 열정은 조금 줄었지만 대신 꾸준함이 생겼어요. 기아대책 같은 전문기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효율을 배우게 된 거죠.”

Q : 해외 아동 결연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A : “처음에는 인도네시아 아동 후원을 시작했어요. 매제가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갔거든요.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에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가족 모두가 말렸죠.”

Q : 그 영향이 있었군요.

A : “그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고, 인도네시아 아이들을 돕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지에서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 그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후원을 계속하기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시작한 인연을 중간에 끊을 수는 없더라고요.”

Q : 국내에서는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까.

A : “아이들입니다. 한부모가정 아이들이나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요. 딸 셋을 키우고 있는데 큰애가 스물여섯 살이고 둘째는 고3, 막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거의 20년째 육아를 하는 셈이죠. 그러다보니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Q : 기부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 “생각보다 기부할 여력이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기부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보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부금이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비영리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부자가 100만원을 냈다면 밑그림을 그려주고, 최소한 120만원어치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문일요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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