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당에 충성 안해”…30대女, 오세훈에 ‘생존형 투표’ 한 이유 [앵그리 2030]
“단순히 우리가 보수화됐다고 줄여서 말할 수 있을까요?”
한국외대 재학생인 고은강(24·남)씨에게 정치학계 화두인 2030세대 보수화에 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중앙일보와 8~10일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다른 청년들도 “우리는 이념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진영 논리로만 보면 어떠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3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오세훈)을 더 지지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앞장서서 비판하는 2030세대를 두고 여권의 빅스피커(김어준·최욱 등)들은 보수화를 넘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세뇌에 따른 것’이라거나 ‘범죄’로까지 규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모두 ‘오류(誤謬)’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본지 취재진이 2030세대 107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약 20명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를 했다. ‘역대 선거에서 서로 다른 정당에 투표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설문에 참여한 2030세대 중 8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유로는 “정당보단 정책 등 다른 점을 고려했다”(37%)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상황에 따라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27%)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심층 인터뷰에서도 “앞으로도 한 정당에 충성할 생각이 없고,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에 힘을 실을 것”이라는 예고가 적잖았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전성언(39·남)씨는 “적어도 우리는 윗세대처럼 특정 정당을 ‘무지성’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며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투표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서연(25·여)씨는 “정권의 독주에 견제구를 던지고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늘 투표해왔다”고 말했고, 강혜나(26·여)씨는 “정책을 보고 우리 세대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청년들이 단지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는 근거는 선거 결과에서도 포착됐다. KBS·MBC·SBS 등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진행한 지방선거 출구 조사를 보면, 서울의 20대 이하 56.8%, 30대 59.7%가 국민의힘(오세훈 후보)를 뽑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2030세대 모두 더불어민주당(전재수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성별로 나눠봐도 2030세대는 ‘스윙보터(swing voter)’ 성격이 짙었다. 그간 진보 성향을 보였던 서울의 30대 여성(53.6%)이 오세훈 후보를 더 선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모(36·여)씨는 “망해가는 곳에서 내 인생을 지키는 방향으로 한 표를 던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생존형 투표’를 했다고 주장하는 2030세대의 마음에는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반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 주체로 ▶정치권(49%) ▶사회 제도(34%) ▶4050 기성세대(13%)를 주로 꼽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양모(31·남)씨는 “사드·후쿠시마·환율 등의 이슈를 두고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태도가 달라지고, 과거의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느라 바쁜 정치인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적이 있느냐”며 “이러한 정치인들이 제도를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었고, 고도 성장기의 혜택을 받았던 4050세대는 이에 편승하면서 침묵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불공정하다”는 주장은 단순한 인상 비평이 아니었다. 이들은 그간 정치권의 ‘내로남불’ 포인트를 조목조목 짚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구모(32·여)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책없이 시작된 집 값 상승으로 인해 2030세대와 윗세대의 자산 격차가 크게 확대되었지만, 혜택만 본 이들은 이를 극복할 의지는 전혀 없는 것 같다”며 “이러한 점이 누적되며 2030대들은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경기 안양시에 거주하는 이제희(25·남)씨는 “민주당이 밀어붙인 노란봉투법 등의 입법이 취지는 좋지만, 결국 기업을 흔들면서 청년 일자리만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취업 정병(정신병)에 걸린 청년들이 자포자기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최예나(25·여)씨는 “정부가 민생지원금과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을 뿌리고 있으나, 이 지원금은 결국 우리가 메꿔야 하는 세금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며 “세금을 통해 나라가 발전된다면 기꺼이 내겠지만, 지금 상태에선 현금성 지원의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만난 이준서(23·남)씨는 “검찰청 폐지와 공소 취소 추진 등을 통해 입법이 사법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당장 피해가 보이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삼권 분립이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투표용지 사태에 대해서도 2030세대는 ‘불공정’ 개념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해결책으로 ‘재선거를 해야 한다’(43%)보다 ‘재선거를 하지 않더라도 합리적 조치가 필요하다’(50%)를 더 꼽았다. 이정욱(27)씨는 “완벽한 공정은 원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재선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올림픽 공원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다만 잘못된 것을 그냥 두지 말고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리자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지적은 정치권과 윗세대를 향한 ‘공정성’ 요구로 귀결됐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년들을 위한 대책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룰(규칙)이라도 잘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권모(남·24)씨는 “4050세대가 굳이 자신들의 자리를 내려놓고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고, 또 정치권도 유권자가 더 많은 4050의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다”며 “기성세대에 비해서 우리 세대가 부담 해야 할 짐이 많은 것은 백번 양보해서 받아들이겠다. 그렇지만 ‘룰’을 억지로 바꾸면서까지 미래세대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는 것은 참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김진호(남·27)씨도 “우리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는 능력주의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모두가 반대하는 기본소득까지 추진하면 누가 일을 하겠느냐”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본질이 제대로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측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2030세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청년 세대 전체의 우경화 내지 보수화로 해석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0대는 비교적 선동에 취약…리터러시 교육해야
한편 2030세대처럼 10대들도 “특정 정당을 단순히 지지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비판하기 위해 14일 기자회견을 예고한 ‘애국대학’ 대표 A씨(17)는 통화에서 “누군가를 단순하게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으로 입장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들은 2030세대 보다 정치적 선동에 비교적 취약하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실제 지난해 12월부터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어게인’ 사이버 행진 집회가 다섯 차례 이상 개최됐는데, 실시간 접속자가 한때 2000명을 넘길 정도로 호응을 얻었고 참가자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체포 작전을 재현하는 등의 콘텐트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이 콘텐트들은 “재밌다”, “귀엽다”는 반응과 함께 숏폼이나 단체 DM(다이렉트메시지)을 통해 또래 집단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보수 성향 교육 단체들이 ‘교실의 정치화’를 우려하며 투표권 연령 추가 하향 움직임을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과정에서 청년층보다도 과소 대표되고, 정체성 갈등까지 겪는 청소년들에게 극우적 메시지는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설명해 주는 동시에 강한 집단 정체성을 제공한다”며 “강경 보수화 성향의 10대들을 향해 ‘사상을 교정해야 한다’는 식의 비난·낙인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고, 청소년참여예산제나 청소년의회, 미디어 문해력(리터러시) 교육 등 실제 정치 참여와 의사결정 경험을 제공하는 제도적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더중앙플러스-이런 기사도 있어요
「 ‘창자 끊기고 오장육부 뒤틀려’ 오세훈 구급차 실려가게한 男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5634
」
김정재·이아미·이규림·김창용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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