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연금, 4050이 결정하고 득봐”…불공정 분노한 그들 [앵그리 2030]
회사원인 장모(36·여)씨는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은 야당 후보, 구청장은 여당 후보에게 표를 줬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때는 투표하지 않았지만, 정부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불만에 이번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장씨는 “연말에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 다른 전세를 알아봤더니 물건이 하나도 없어 충격을 받았다”면서 “계엄 사태를 일으킨 국민의힘을 밀어주고 싶진 않지만, 정부 견제도 필요하다 생각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장씨는 주말에 서울 올림픽공원 개표소 시위에도 나가 ‘참정권 보장’을 외칠 예정이다.
정치 무관심층으로 꼽히던 2030세대 청년들이 투표장과 거리로 나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6·3 지선에서는 ‘캐스팅 보터(승패를 결정짓는 유권자)’ 역할을 하며 서울시장 등 핵심 선거의 승패를 갈랐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벌어진 서울 올림픽공원 시위도 주도했다.
그동안엔 집권 세력이나 4050세대에 대한 반감을 2030세대, 특히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와 연관 짓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올림픽공원 시위를 기점으로 이들의 달라진 움직임을 단순히 청년층의 보수화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불공정한 사회 제도와 커지는 자산 격차, 기득권층에 의해 불태워진 계층 이동의 사다리, ‘세대 포위론’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소외 등에 지치고 분노한 청년들이 세력화와 행동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 기득권을 향한, 이른바 ‘앵그리 영(Angry Young)’의 선전 포고다.

중앙일보가 올림픽공원 시위 이후인 8일부터 10일까지 2030세대 107명(남 64명, 여 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국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92%(98명)에 달했다. 이들은 이유(복수 선택 가능)로 ▶부동산 등 자산 격차(30%·72명) ▶민심 반영 못 하는 정치(24%·59명) ▶재정 확장 따른 미래세대 부담(22%·53명) ▶연금 등 복지 격차(12%·29명)를 꼽았다. 앞선 연구에서도 2030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공정’이라는 가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5년 사회통합실태조사’ 따르면, 사회 전반이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0대(45.6%)·20대(41.9%) 순으로 높았다. 40대(40.2%)·50대(38.6%)의 응답 비율은 이보다 낮았다.
기성세대 청년층 자산 2배…역대 최고
2030대가 불공정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 간 자산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데, 기성세대가 구축한 사회 환경과 규칙 안에서는 이를 줄일 방법이 없으며 결국 생존할 수 없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가데이터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연령별 평균 자산액은 40~49세(6억2714만원)와 50~59세(6억6205만원)가 39세 이하(3억1498만원)의 약 2배에 달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일해서 번 돈만으로는 기성세대와 같은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힘들다는 불안감은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 같은 부동산 정책이 집값 하락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부동산값 폭등을 막지 못하고 청년 세대의 ‘계층 이동 사다리’만 불태워졌다는 불만이 커졌다.

6·3 지방선거 지상파 방송 3사 출구 조사에서 20대 이하의 56.8%, 30대 59.7%가 야당 후보였던 오세훈 서울시장을 뽑은 것도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권성우(29)씨는 “집 마련이 생애 큰 목표였는데, 이미 10억원을 훌쩍 넘는 집 가격을 보면 나는 어떻게 집을 마련하나 무력감과 절망감만 느낀다”고 했다.
“연금, 정년, 재정 정책서 청년 배제”
기성세대보다 수도 적고 투표율이 낮아 정치적 소수 취급을 받아온 탓에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도 2030세대의 분노를 키운 배경으로 꼽힌다. 국민연금 개편이나 정년 연장, 재정 확장같이 미래 부담이 될 수 있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정작 책임을 떠안아야 할 2030세대의 의견은 배제됐다는 인식이 강하다.
서울 올림픽공원 개표소 시위에 참석한 이준서(23)씨는 “최근 국민연금 개혁이 청년에게 불리하게 이뤄진 것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년층 목소리를 제외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시위에 참여한 임선오(20)씨도 “연금, 정년 연장, 재정 확장 같은 정책은 결국 기성세대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반대로 우리가 져야 할 부담”이라고 말했다.
“스벅엔 비난, 투표용지 사태엔 침묵은 위선”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정치권이나 기성세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도 강하다. 과거 ‘조국 사태’ 등에서 부각된 ‘내로남불’식 태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가 젊은 층의 환멸을 키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최모(33)씨는 “스타벅스가 부적절한 마케팅을 한 것은 맞지만, 대통령이나 정치인까지 나서 일개 기업을 그렇게 강도 높게 비난할 일인지 모르겠다”면서 “참정권이 침해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조용히 반응하는 것이 위선적이라고 느껴졌다”고 했다.
강경 보수와 달라…“청년세대 어려움 반영해야”
결국 젊은 층의 이런 분노를 해소하고 더 큰 세대 간 혐오나 사회 갈등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이들을 단순히 ‘강경 보수화’ 세력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정교한 구분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울 올림픽공원 개표소 시위에서 상당수 청년이 부정선거 구호보다 재선거를 외친 것은 강경 보수와 구별되는 청년들이 있다는 의미”이라고 짚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선거냐 아니냐 식의 단순한 정치적 접근만으로 이번 사태가 해결되긴 어렵다”면서 “그간 정치권이 대변하지 못했던 청년 세대가 가지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보다 엄밀히 진단하고, 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준·오삼권·오소영·류효림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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