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공장 베끼고, SK 설계 도면 빼돌려… 종착지는 中
1등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첨단 시장
후발주자 추격 수단·방법 안 가려

대한민국 첨단기술의 유출 경로를 추적해 보면 최종 종착지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중심에 선 중국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의 절반 이상이 중국과 연관됐다. 과거에는 연구원 개인이 자료 일부를 반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공장 복제’ ‘유령회사 설립’ ‘협력업체 포섭’ 등 수법이 날로 지능화·조직화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1등만 살아남는’ 첨단기술 시장의 특성을 지목했다. 한국과 중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는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중국이 추격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고자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김민배 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일 “첨단기술 시장에서 2등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며 “저렴한 비용으로 최상의 기술을 얻고 상대 국가를 기술적으로 종속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에 끊임없는 침탈 경쟁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전방위적 탈취 공세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산업기술 국내 유출 사건은 146건, 해외 유출은 33건이었다. 해외 유출은 2021년(9건) 대비 3.7배 급증했다. 국가별 비중은 중국이 54.5%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베트남(12.2%) 인도네시아(9.1%) 미국(9.1%) 순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복제’ 사건이다. 삼성전자에서 18년, 하이닉스에서 10년간 근무한 반도체 전문가 A씨는 반도체 클린룸 조성 조건(BED)과 공정 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을 빼돌려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다가 2023년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200여명을 고액 연봉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결국 공장 건설은 무산됐지만 A씨가 중국 청두시 투자를 받아 설립한 현지 업체의 연구개발동이 완공되면서 삼성전자 기술이 적용된 시제품이 생산됐다. 통상 4~5년 소요되는 기술 개발 기간을 약 1년6개월로 단축한 것이다. 검찰은 삼성전자 측 피해금액을 최소 3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던 B씨는 2019년 중국 반도체 컨설팅 기업 이직에 앞서 ‘초순수’(극도로 정제한 물) 시스템 관련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잇따랐다. 중국 판매법인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C씨는 2022년 중국 화웨이 자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사내 문서관리 시스템에 접속, 5900여장의 사진을 무단 촬영하는 등 영업비밀을 불법 유출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 기소됐다.
한 안보 전문가는 “중국 기업들은 단순히 금전적 보상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미인계를 활용하거나 사소한 기술 유출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협박해 점점 더 핵심 기술을 요구하고,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전문 컨설팅까지 지원한다”고 지적했다.
양윤선 기자 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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