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감염병 땐 코로나 19 식 ‘무조건 격리·거리두기’ 안 한다

다음 감염병 위기 때는 ‘무조건 격리·거리두기’식 방역 조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감염병 특성과 의료체계 부담, 사회적 피해를 함께 따져 방역 수위를 정하는 체계를 마련하기로 하면서다.
질병관리청은 10일 이러한 내용의 ‘감염병 위기관리체계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방역·사회대응, 의료대응, 접종대응, 연구개발 등 4개 분야 17개 중점과제가 담겼다.
질병청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장기간 격리정책으로 의료자원 부족과 초과사망 등 부수적 피해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다고 보고, 다음 감염병 위기 때는 보다 효율적이고 회복력 있는 대응체계를 갖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핵심은 감염병을 유형별로 나눠 대응하는 것이다. 정부는 에볼라·메르스처럼 국내 종식이 가능한 감염병을 ‘제한적 전파형’, 코로나19·신종플루처럼 장기 공존을 염두에 둬야 하는 감염병을 ‘팬데믹형’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제한적 전파형은 조기 차단과 국내 종식을 목표로 하고, 팬데믹형은 유행 단계에 따라 방역·의료·사회대응 수위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위기경보 기준도 손본다. 지금까지는 감염병 발생 상황 중심으로 경보를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감염병 특성과 방역·의료·사회 대응 역량까지 함께 고려하도록 관련 기준을 정비한다. 위기경보 단계별 지휘체계 역시 감염병 유형에 따라 달리 운영할 계획이다.
거리두기와 이동제한 같은 사회적 조치도 별도 매뉴얼로 관리한다. 질병청은 마스크 착용, 손 위생, 환기, 소독, 인원 제한, 거리두기, 교통 차단, 지역 간 이동 제한, 집합 제한·금지, 시설 운영시간 조정 등의 적용 기준과 의사결정 절차를 담은 ‘감염병 위기 사회대응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사회적 조치가 과학적 근거와 형평성에 따라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의료대응체계도 일반진료와 병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뀐다. 감염병 위기 초기에는 중앙·권역 감염병전문병원과 지역 감염병치료병원이 집중 대응하고, 팬데믹 중·후기에는 지역감염병센터와 동네 감염병치료병원이 경증환자 등을 맡아 일반의료체계로 전환하는 구조다. 코로나19 때처럼 병원을 통째로 비우거나 일반진료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38개소 597병상과 긴급치료병상 55개소 938병상을 ‘국가 감염병 병상’으로 통합·정비한다. 운영·관리 주체도 질병청으로 일원화한다. 병상은 중증·일반·특수로 나눠 관리하고, 소아·분만 등 특수환자가 감염병 치료와 기존 진료를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특수환자 대응병상’도 지정한다.
지역 단위 대응도 강화한다. 전국 70개 중진료권별로 지역 책임의료기관 등을 ‘지역감염병센터’로 지정해 지역사회 내 의뢰·회송과 환자 진료, 의료기관 네트워크 운영을 맡긴다. 일반환자와 감염병 환자의 동선을 분리한 ‘전환형 병상’ 등도 구축해 일반진료와 감염병 진료를 병행하도록 한다.

초과사망 감시 제도가 처음 도입된다. 질병청은 사망 추이와 초과사망 규모를 적시에 추정하고, 기대사망 범위를 넘어서는 이상 징후를 탐지할 수 있도록 ‘화장정보 기반 사망감시’를 도입하기로 했다. 방역 조치가 감염병 확산을 줄이는 효과뿐 아니라 의료 이용 차질과 사회적 피해를 얼마나 낳는지도 함께 보겠다는 의미다.
백신은 도입 전 검토부터 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까지 전주기 관리를 강화한다. 정부는 민관 합동 백신신속도입분과위원회와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백신도입 범정부 협의체를 운영해 위기 상황에서 백신을 신속히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접종 과정에서는 QR과 백신 바코드 기반 시스템을 활용해 오접종을 줄이고, 이상반응은 수동신고 외에 설문을 통한 능동신고도 병행한다.
백신·치료제 개발 속도도 높인다. 질병청은 감염병 임상연구분석센터를 설립하고, 백신·치료제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팬데믹 위험이 높은 병원체의 후보물질을 평시에 미리 확보하기로 했다. 위기 시 백신과 치료제를 각각 100일, 200일 안에 신속 개발하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목표다. 2028년까지 코로나19 mRNA 백신 국산화도 추진한다.
다만 상당수 과제는 앞으로 구축하거나 검토해야 할 단계다. 감염병 위기 대비·대응을 위한 별도 재원도 아직은 확보 방안을 검토하는 수준이다. 지역감염병센터 지정, 전환형 병상 구축, 사회대응 매뉴얼 제정이 실제 위기 때 작동하려면 재원과 지역 의료역량, 부처 간 의사결정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임승관 질병청장은 “이번 방안은 언제 발생할지 불확실하지만 반드시 다시 발생할 다음 감염병 위기 대응에 있어 연속성, 효율성,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을 갖출 수 있도록 주력했다”며 “고도화된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작동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일상의 가치를 보전하는 안전한 내일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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