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기대, 재계는 우려…삼성전자, 광주 공장 검토
삼성전자가 광주에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지역균형 발전 정책과 맞물린 투자 논의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일각에선 기업의 투자 결정이 정치권 요구에 따라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광주 지역 반도체 투자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다. 업계에서는 웨이퍼 생산과 회로 공정이 이뤄지는 전공정 시설보다는 반도체 패키징 공장 설립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을 검사·조립해 최종 제품으로 완성하는 후공정 단계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 비중이 커지면서 패키징 경쟁력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그동안 호남권 반도체 투자 유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일부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북 새만금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지만, 삼성전자는 기존 용인·평택 중심의 전공정 투자 기조는 유지하면서 후공정 시설을 호남권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공정 공장은 전공정 공장보다 전력·용수 사용량이 적고 관련 생태계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낮아 지역 투자 부담이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첨단 패키징 공장 투자 규모를 10조~20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최첨단 전공정 팹 건설 비용이 60조~70조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광주 공장 건설이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의 첫 호남권 반도체 생산 거점이 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충남 온양과 천안, 중국 쑤저우 등에서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추가 지역 투자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최근 충북 청주에 약 19조원 규모의 첨단 패키징 공장 투자를 시작한 만큼 향후 신규 투자 시 기존 생산거점과의 역할 분담 및 연계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정부의 지역균형 발전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성장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낼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국민 앞에 공개하겠다”며 “영호남 문제에 있어 호남에 좀 더 균형을 맞춰야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반도체 투자 유치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최근 한 포럼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자신에게 “뭐가 와도 온다”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반도체와 관련된 발표가 머지않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재계에서는 지역균형 발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업 투자 결정의 자율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역 발전은 중요한 과제지만 기업 투자는 시장성과 수익성, 인력과 인프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며 “정치적 요구가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기업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와 주요 기업 간 투자 협력 방안이 이달 말 청와대에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와의 간담회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 프로젝트의 윤곽이 드러날 경우 지역균형 발전과 기업 투자 자율성 사이의 균형을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부와의 투자 논의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지방 투자 계획에 대해서도 “현재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박영우 기자 novemb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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