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군 독도 해상 폭격에 '어민 수십 명 사망'... "78년 전 진실 규명해야"

김형호 2026. 6.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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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 6월 8일은
독도에서 조업을 하던 우리나라 어업인 다수가
미공군의 폭격 연습으로 사망한 날입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매년 이날에
울릉도·독도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데,
어업인들의 조업 사실과
사망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형호 기자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흰색 천이 허공에 흩날리며
맺은 한을 하늘로 날려 보냅니다.

원을 그리며 도는 춤사위는,
그날의 총격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을
어루만져 올리는 듯 애달픕니다.


"6.8 미공군 폭격사건 희생 영가시여, 극락왕생하소서"

1948년 6월 8일은 독도에서 미역을 따던
우리나라 어민 수십 명이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지던 포탄과 총알에
영문도 모르고 죽은 날입니다.

[김형호 기자]
"독도 주변에서 조업 중이던 어민들이
미공군의 폭격 사건으로 사망한지
올해로 78년째를 맞았습니다."

당시 4살이던 김상복 어르신은
이 사건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김상복/6.8 독도 폭격사건 희생자 유족]
"2019년에 울릉도에 오니까 아버지가 미역조업 하다가 미공군이 폭격해서 죽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엄마가 알려주지 않았던 거예요.

일본 오키나와에서 주둔하던
미군 공군의 폭격기 21대는
그날 오전 11시 반쯤
독도의 서도 앞 해상에서
500kg무게의 폭탄 수십 발과
기관총을 발사했습니다.

울릉도와 강원도 묵호, 경북 죽변 등지에서
독도로 미역을 따러 온 어선 수십 척이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1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시의 사망사건이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던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서경순/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어로 활동을 하다가 이러한 희생을 당한 것은우리 대한민국의 영토권, 주권이 미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날의 진실은 아직도 묻혀 있습니다.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가 발생하고
2년이 지난 1950년,
독도에는 위령비가 설치됐는데,
사건은 '조난'으로 새겨져
지금도 그대로 세워져 있습니다.

[서인원 / 독도연구보전협회 이사]
"그 당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서 정한 사건 위령비라고 하겠지만, 모든 국민이나 그 당시 피해자 유족 어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표현)을 선택해서 비문을 (다시 새기는 것이)."

독도폭격 어민 사망사건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며 기리고 있지만,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명확히 기록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MBC뉴스 김형호입니다. (영상취재: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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