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게으르다? '가난의 심정'을 기록하는 사람

소희 2026. 6. 10.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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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좌표] 한국작가회의 르포·기록문학분과 기획연재②작가 최현숙 인터뷰 - 기록노동자 소희

한국작가회의 르포·기록문학분과위원회에서 [지도에 없는 좌표 _기록(문학)을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타인의 삶을 말하고 사건을 들여다보는 기록이 널리 쓰이고 읽히지만, '무엇이 기록(글)인가'에 대해서는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선뜻 단정해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록 활동을 이어온 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따라가며, 기록 글이 지닌 의미와 자리를 더듬어 보려 합니다. <기자말>

[소희, 희정 기자]

한국작가회의에서 르포-기록문학분과를 신설한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 없었다니 의아스러웠고, 이제라도 생긴다니 환대하는 마음이 교차하며 작가회의에 발을 들였다. 누구나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주문을 외지만, 기록(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럼, 한국 사회에서 기록(문학)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기록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찾아봐도 지도에는 좌표가 없다. 그래서 기록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다. 한국사회에서 드물게 또 시끌벅적하게 퀴어 정치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그다지 흔치 않은 구술생애사 작업을 했다. 첫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2013, 이매진출판사)>를 내며 또 한 번 세상에 요란하게 등장했다.

현재 칠순을 통과하는 최현숙은 벌써 7년째 홈리스 빈곤 현장에서 떠돌고 있다. 홈리스 야학교사 모집 광고를 보는 순간,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꼴렸'고 설렜다. 그답게 앞뒤 잴 것도 없이 홈리스 야학교사를 자원해 수업을 시작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인권 지킴이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렇게만 보면 그가 이제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나 싶지만, 그의 목적은 분명하다. 구술 기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왜 구술기록인가?
▲ 2025년 홈리스 추모제 2025년 홈리스 추모제를 마쳤다. 하는 것도 없이 함께 있는 것 뿐인데 추모제에 참여하느라 매번 감기가 오고, 감기가 나을 즈음이면 새해가 온다. 이 바닥 곁에 온 지 6년. 표정과 말투를 알고 조금은 서사도 아는 홈리스 망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죽었는지 어디선가 살아있는지 모르는, 사라진 노숙인들도 늘어간다. 매년 함께하는 분들 뿐 아니라, 문득 함께하러 온 친구들이 있어 참 좋았다.
ⓒ 최현숙 페이스북
나 역시 기록 작업을 시작하면서 최현숙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가 책을 발간할 때마다 구매해 읽었다. 솔직히 개인의 은밀하고 낯 뜨거운 장면을 만날 때면 누군가 볼세라 책장을 덮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기록하고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늘 고민이었고, 다른 이의 사적인 영역을 관음증 환자처럼 염탐하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생애구술사 작가 최현숙을 만나기 전에 그의 산문집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를 읽었다.

"'출산 파업' 현상은 만국 노동자들의 단결보다 자본에 더 근본적인 타격이며, 선동도 구호도 아닌 현상이어서 더 믿음직하다"라고 쓴 최현숙은 누구보다 신자유주의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가였다. "2017년 박근혜 퇴진 정국의 촛불을 혁명이라 이름 붙이는 것"에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체제 내 정치권력의 자리바꿈이어서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생각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그는 에세이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며 칼같은 글쓰기를 할 수 있을 텐데도 왜 홈리스 빈곤 현장에서 7년이나 떠돌아다니며 고된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구술생애사를 고집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법이라는 건 가진 자들의 재산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해. 법 집행 방식이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억압하고 감옥에 가두고 쫓아내고 또 누범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누범, 내 주인공(최현숙 작가의 노숙인 인터뷰이) 하나가 '내가 29범인데 30범이 무섭겠냐?' (하는 거죠)."

배고픈 사람이 라면 한 봉지를 훔치면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세상이다. 교도소를 다녀와도 굶주림이 해결되지 않는다. 굶어 죽어도 도둑질이 범죄가 되는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한테 범죄 경력이 한 줄 더 생긴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나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사회를 경쟁 구도로 만들고, 폐쇄적인 가족중심주의를 통해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진다고 봐.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자는 뭐예요? 기업에 종속되어 자기 밥벌이 하는 거잖아요. 자기 식구들 밥벌이, 대부분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강화해. 가족중심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환상을 키워서 강화하는 거죠.

(가족 환상이 깨어진 노숙인은 아직 가족중심적인) 우리하고 다른 거지. CCTV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물건에 욕심이 나니까 훔치는 거예요. 재수 좋으면 안 걸릴 수 있어. 재수 나쁘면 걸려. 그럼, 빵에 가든가 뭐 소위 거리와 빵이 뭐 별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면에서 감옥은 자유가 없어 갑갑하긴 해도 편안할 수도 있는 거지. 나는 그런 것(환상을 깨뜨린)을 드러내고 싶은 거예요."

최현숙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강조하며 이기적인 욕망을 키우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추락한 지점에 홈리스가 있었다. 가난하고 더럽고 게으른 데다 무책임하다는 사회적인 낙인이 찍히고 혐오의 대상이 되어도 누구 하나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이 사회에서 배제당해도 당연할 것 같은 삼등 국민이 되어버린 사람들.

신자유주의가 노동자 민중을 밑바닥 경쟁으로 몰아넣어 경쟁과 효율만 강요하는 사회가 되려면 국가의 정책과 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정리해고가 자유롭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 유연화 정책이 그것이다. 불안정 노동이 만연해지고 확산할수록 경쟁에서 밀려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는 낙오된다.

경제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사회적 책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위기를 맞게 되는 가족은 해체된다. 그럴 때 국가는 죽지 않을 만큼 복지를 내주고 그들을 삼등 국민에 위치지어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의 위기를 관리한다. 가족중심주의는 이렇게 가장 편리한 방식의 국가 통제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술생애사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사회적으로 읽혀야 한다고 최현숙은 말한다.

"한 사람의 생애가 본인이 기억하는 어떤 사적 기억을 넘어서 사회 구조 속 계급·성별·역사적인 맥락과 지역적인 상황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떻게 위치 지어졌는지 파악해서, 이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나 처지를 순전히 개인이 재수가 없거나 부모가 가난해서 대물려주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내가 하는 구술생애사거든. 한 사람의 생애와 그 경험들이 개인적이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한 것을 해석하고, 그것이 이데올로기화되어 통념이 만들어지면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그걸 밝혀내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구술생애사는 사회적인 글쓰기인 거죠. "

마흔이 넘어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정말 마흔쯤에 글을 붙잡고 산 적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하는 시기였다.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연합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해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을 만났던 경험을 살려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성명서, 보도자료, 사업계획, 투쟁 계획을 썼다. 그렇게라도 글쓰기는 생활이었다. 그러다 노인요양보호사가 되어 만난 노인들이 주절주절 귓가에 대고 하는 이야기가 최현숙을 잡아당겼다. 그들의 말을 듣다가 이건 사회적으로 기록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다.

"현재의 사회운동은 주로 계급 불평등을 보는 방식이고 경제 문제를 위주로 본다면 구술생애사 방식은 다른 거죠. 구술생애사 방식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가난해졌고, 가난으로 드러난 외적 모습도 있지만, 가난의 심리적 측면까지 포함해 가난의 심정들을 보는 것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 자체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거든. 그냥 뭐 그럭저럭 살았던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이야. 한 사람이 정말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느끼느냐?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느냐? 나는 쓸데없는 사람이고 쓸모없는 사람이고 찌그러진 인생이라고 느끼느냐에 가장 중요한 건 가난의 심정이라고 생각해요. 구술생애사는 그 가난의 심정을 세세하게 듣고 쓰는 작업인데, 사회적 글쓰기 중에서 인간의 내면을 찾아 들어가는 인간의 서사가 각별한 영역이라고 봐."

그런데 왜 최현숙은 유독 빈곤 문제를 파고들어 따지는 걸까?

"홈리스라고 하면 노숙인이나 쪽방 주민들, 고시원에 사는 사람까지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무슨 범법자, 중독자, 빵쟁이 그러니까 범법을 저질러서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 굉장히 폭력적인 사람들도 포함되지요. 홈리스 또는 노숙인 같은 빈곤이 고여있는 곳에는 범법의 문제나 성매매의 문제나 폭력의 문제 또는 더럽다는 사회적인 낙인 등 여러 가지가 있죠. 내가 만나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보여 어떤 낙인이든, 자괴든 폭력성이든 그렇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사회적이고 구조적이고 공적인 일로 연결해 내는가 하는 것이 나의 주요 작업인 것이죠."

그는 지난 7년 동안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 만난 홈리스 당사자들과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인권 지킴이 활동을 하며 만났던 노숙인들 그리고 여성 노숙인 쉼터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기록 윤리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들의 말을 '훔치'기 바빠 녹음기를 켰다. 그는 노트북에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를 "묻어 놓고 죽나 보다" 했었는데 최근에 기회가 생겼다. 아랫마을에 모여든 예술가들과 협업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작업인 여성 노숙인들에 관한 글들이 <광장의 '미친'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요즘 <나의 동료들에게 (https://iamwritingtoyou.com)> 에 게재되고 있어요. 정신장애 여성 노숙인 등 주로 여성 홈리스들에 관한 기록이에요."
▲ <광장의 '미친'여자들 > 웹포스터 《나의 동료들에게: I am writing to you》 프로젝트에 최현숙 작가가 참여해 4회차에 걸쳐 <광장의 "미친 여자"들>을 싣고 있다.
ⓒ 최현숙 페이스북
최현숙은 구술기록이 인간의 내면을 찾아 들어가 쓰는 글이라고 말했다. 최현숙의 구술생애사에는 개인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행위가 예고 없이 불쑥 등장한다. 그는 가장 사적인 것은 감춰져야 한다는 사회통념에 맞선다.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취급되는 곳이 바로 가정이고 성 문제라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억압된 정치적인 장소이기도 해서 진짜 문제이다.

이렇게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 "변하지 않는다기보다 가장 느리게 변하고 있고, 그 억압은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인지한 최현숙 작가는 '가장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놓지 않는다. 사회가 가리고 싶어 안달이 난, 은밀하게 억압하고 교묘하게 착취하는 영역을 최현숙은 구태여 들춰내고 집요하게 파헤치려 한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 성이 있고, 성감대가 있고 성적 쾌감이 있고 성적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은 이런 존재들이 직결된 욕망이고 평생 어떻게 성적인 주체로 사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남성은 지지받지만, 여성은 훨씬 억압당하는 게 통상적인 차이이고 차별을 만드는 거죠.그래서 남성들 인터뷰뿐 아니라 여성들 인터뷰에서 스스로 자기 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자기 성적 주체성, 어떤 성적 욕망이나 성에 관련한 몸을 그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나아가서 생애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런 것을 질문하고 서로 해석하며 인간에게 성과 주체성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찾아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금했다. 그의 책 <할배의 탄생>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을 때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게 될지 걱정하는 장면을 보고 최현숙 작가가 인터뷰이와 어떻게 원만한 합의를 했을지 물었다.

"인터뷰하고 나서 초고를 보내주고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보면 <억척의 기원>에 나온 나주 여성농민회 출신은 전국여성농민회 회장까지 했던 사람이니까 자기 글이 어떻게 나가는지 중요할 거잖아요. 그래 글을 읽고 우리 사회에서 정말 예민하고 정치적인 부분을 빼달라고 해요. 그런데 나는 그 부분이 당신의 개인적인 경험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에게도 정말 중요하다고. 그래서 정 빼달라고 하면 약간 가공하고 줄여서라도 내자고 설명해요.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요.

할배의 탄생 김용술 할아버지도 '야 이거 사람들이 나 너무 주책바가지'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게 왜 중요한 문제인지 설득했죠. 실제로 독자들 중에는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해서 책을 냈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고 마는 거지. 내가 모든 인간을 다 가르치고 설득하며 살 수는 없잖아."

내가 낯 뜨거워하며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것은 하나의 장면일 뿐, 사회통념과 이데올로기로 억압되었던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과 갈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 그런 장면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최현숙이 설명한 구술생애사가 인간의 내면을 찾아 들어가 쓰는 글이라는 의미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감춰진 것을 드러내기까지 최현숙이라는 기록자의 집요한 질문, 인터뷰이가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라포 형성과 기다림, 타인의 말을 그대로 갖다 쓰는 대범함, 인터뷰이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구술기록자가 갖춰야 할 덕목일까?

"냉정해서 그래요. 난 인터뷰하는 동안 공감도 표현하고 아주 따뜻한 친정엄마 같다는 말도 듣지만 난 절대 엄마 같은 사람이 아니야. 공감하며 듣되 들은 사람으로서 말한 사람을 난도질하지는 않아야 하고, 냉철하게 해석해서 쓰죠. 나는 칼 같은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 같아. 그 사람을 해부하지는 못하지만, 이 사람이 가진 이야기를 재료로 독자들이 가진 고정관념, 시선, 독자뿐 아니라 세상이 가진 시선을 해부해 내고 싶은 거예요."

공감하되 냉철하게 기록하기

최현숙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글쓰기 재능이 있다고 해서 구술생애사 기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자주 받는 질문일 것 같아 망설였다. 구술 기록을 잘하기 위해 어떤 훈련이 필요하냐는 나의 질문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질문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흔한 질문에도 흔한 대답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잘 듣고 냉정해야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공감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고통과 기쁨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가 고통스럽다고 말한 고통은 이해하지만, 고통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반대하거든. 기쁨도 마찬가지지. 보통 사람들의 기쁨이나 보람을 말하는 단계는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자식들 좋은 대학 들어갔다거나 이런 건데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거든. 글을 쓸 때는 냉철하게 나의 해석을 어떻게 살려내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그는 관점이 중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사회가 가진 어떤 고정관념이나 낙인을 그대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갈 수는 없죠. 또 나한테 굉장히 중요한 건 미화하지 않는 것, 노숙인들이 나한테 자기 인터뷰해서 '미화도 좀 시켜줘'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미화 안 해. 아주 단호하게 말하거든. 홈리스판의 더러움과 게으름과 계획 없음과 이런 것들이 여기 특징이야. 이걸 미화해서 '뭐 열심히 사는 노숙인들이다. 너네 그렇게 보지 마라' 이런 말, 나는 안 하겠다는 거지.

그렇다고 할 때 고민이 있는 거죠. 내가 사실 그대로 드러냈을 때,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노숙인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런 독서의 시선을 깨뜨리기 위해서 어떤 글을 만들어 내느냐가 나한테는 굉장히 고민거리예요."
▲ 최현숙 작가 인터뷰를 마치고도 여운이 남아 길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 희정작가
그러니까 현재 7년째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여전히 '꼴리'고 설렌다. 홈리스 빈곤 현장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최현숙 작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난 7년 동안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을 만날 때면, 자신의 어린 시절 가부장제의 권위를 대표했던 아버지와 불화, 억압의 경험, 방황, 도벽, 액체증이라는 사회적 낙인의 경험이 홈리스 노숙인들과 닮아 원초적인 욕망이 발동한다.

"지금도 여전히 10대, 20대의 그 도벽, 지금도 하고 있는 거잖아. 계속 말을 훔치러 다니고 계속 도둑질해서 막 제대로 쓰지도 않고 여기저기 쌓아놓고만 있고, 지금도 말을 훔쳐서 일단 노트북에 수집 중이야."

그들의 말을 수집하고 채집해 건져 올린 이야기가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경쟁과 효율성만 강요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반사되는 기록이.

인터뷰이: 최현숙
인터뷰어 및 기록 : 소희
촬영 : 희정

덧붙이는 글 | 한국작가회의 르포.기록문학분과(이하 기록분과)에서 기획한 연재입니다. 희정, 차성덕, 소희가 함께하고 있다. 가입이나 기타 문의는 hanjak_repo@naver.com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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