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의 세계는 첩보 전쟁] “조선 없는 지구는 깨버려야”…90년대 김정일 발언, 사실이었을까

2026. 6. 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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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미국과 이란이 휴전과 핵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협상의 진전 여부와 관계없이 양측이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핵심 쟁점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이란이 당장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란이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핵 문턱 국가(Nuclear Threshold State)의 지위다. 국가들은 왜 핵 능력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 강명도 등 탈북자들 잇단 증언
과장이나 선전 아니었을 수도
이란 전쟁, 핵 보유 필연성 높여
핵은 북 체제 최후의 안전장치

핵무기 개발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요 성과로 내세운 북한의 대외선전용 화보집 ‘조선’ 2021년 12월호.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핵 포기에 대한 평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믿고 세계 3위 규모의 핵전력을 포기했던 선택은 더는 당연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만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중국의 군사적 압박이 거세지고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980년대 후반 핵 개발 계획을 접었던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한 재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이 과거의 선택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 사이, 북한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북한에 핵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이 되었다. 북한은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했고, 2023년에는 이를 불가역적인 국가 노선으로 선언했으며, 2026년에는 핵 지휘권과 사용 권한 체계까지 헌법화했다. 지난 7일에도 김여정은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불퇴의 한계선”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세계 3위 규모였던 핵전력을 포기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 폭격에 어린이병원 등이 연일 피해를 입고 있다. [AFP=연합뉴스]

고위 탈북자와 간첩의 핵 관련 증언
핵무기를 둘러싼 경쟁은 군사력의 경쟁인 동시에 첩보전의 역사다. 핵 개발을 둘러싼 첩보전과 정보 공작은 냉전기부터 끊이지 않았다. 내가 탈북자들과 간첩들을 조사하며 접했던 기억들 역시 첩보전의 한 장면이었다. 북한이 핵을 체제의 핵심 요소로 제도화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탈북자들과 간첩들을 조사하던 시절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김정일 강성 발언에 흡족해 한 김일성
김일성과 김정일, 군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일성이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전쟁에서 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군 간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전쟁에서는 반드시 우리가 이깁니다.” 김일성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모두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정일이 벌떡 일어났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 없습니다. 지구를 깨버려야 합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의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북에서 내려온 인물이라면 흔히들 하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후계자 김정일의 결단력과 배짱을 내세워 우상화를 하기 위한 일화 정도로 생각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다른 생각도 든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는 표현이 단순한 과장이나 선전 구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북한 지도부의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일성 일가에게는 체제 생존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이었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1994년 7월의 강명도 귀순 기자회견이다. 나는 그의 조사와 기자회견 준비, 신병 관리를 담당했던 실무팀의 일원이었다. 강명도는 김일성의 외가인 칠골 강씨 집안 출신으로, 북한 총리를 지낸 강성산의 사위였다. 당시로써는 북한 권력 핵심부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귀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94년 강명도 귀순 기자회견 모습. [중앙포토]

강명도의 핵무기 증언이 부른 파장
기자회견에서 강명도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회견장이 술렁거렸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청와대에서 수고했다며 적지 않은 액수의 금일봉이 내려왔다. 우리는 행사의 성공을 자축하며 회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너 시간 뒤 강명도와 외부인의 접촉, 특히 언론과의 접촉을 통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와 강명도를 대하는 내부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실무자에 불과했던 나는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북한 핵 문제가 결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강명도의 주장이 사실이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북한 핵 문제는 이미 단순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문제였고, 북한 체제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강명도 기자회견 이후 30여 년이 지난 2026년 5월 말, 한 연구단체가 주최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한국 안보에 주는 함의와 대응’ 세미나에서 토론을 맡게 되었다. 나는 대남정책을 관통하는 핵심에 여전히 김일성 일가의 체제 유지라는 목표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북한의 정치·외교·군사 정책은 다양한 명분과 논리로 설명되지만, 궁극적으로는 권력 유지와 체제 생존이라는 목표에 수렴된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통일은 반드시 유리한 선택이 아니다. 북한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남한의 경제력과 사회 시스템, 문화적 영향력에 의해 북한 체제가 흡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적대적 두 국가론’은 이념적 선언이라기보다 체제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에 가깝다. 김정은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보다는 체제의 안정과 정권의 지속 가능성이다.

통일보다 체제 안정 바라는 김정은
북한의 핵 무력은 단순히 외부의 위협을 억제하는 수단이 아니다.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북한은 핵을 포기했거나 핵 억지력을 갖지 못한 국가와 지도자들의 운명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최근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벌어진 일들이 북한 지도부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은 핵무기 보유가 위험한 도박이 아니라 체제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고 믿을 수 있다.

이란은 핵 문턱 국가 지위를 놓고 미국과 힘겨운 협상을 이어가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과거 핵 포기의 대가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국가들은 왜 핵 능력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30년의 역사는 북한 지도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래전에 내렸음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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