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의 뉴스터치] 1억 개의 눈과 귀

이재명 대통령이 종종 쓰는 말 중에 ‘1억 개의 눈, 1억 개의 귀’가 있다. 여기에 ‘5000만 개의 입’도 더하는데, 바로 대한민국 국민 5000만 명의 신체를 빌린, ‘민심’의 비유적 표현이다.
“국민은 언제나 1억 개의 눈과 귀, 5000만 개 입으로 듣고 보고 소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훨씬 더 공리적으로 판단하고,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점점 확신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 대통령이 2021년 10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압승을 이어갈 때의 발언이다. 그가 대권을 본격화한 2020년 무렵부터 이런 표현이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이학재 전 인천공항공사 사장과 외화 관리 주체를 놓고 갈등을 빚을 때도 “국민을 무서워해야 한다”며 이 표현을 가져왔다.

이 대통령은 “국민은 집단지성체”라는 표현도 ‘1억 개의 눈과 귀’에 뒤에 종종 붙여 왔다. 게다가 “대통령, 국회 순으로 권력이 있는 게 아니라 1번이 국민 권력이고 그다음에 선출권력, 임명권력이 있다”고 했으니, 현 정부를 ‘국민주권 정부’로 이름 매겨도 이상할 게 하나 없다.
하지만 법철학자 함재학은 “‘국민’은 헌법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추상적 개념이고, 구체적으로 한 자리에 절대 모일 수 없다”고 했다. 토크빌은 “전체로서의 국민이 모든 주권을 갖지만 사실상 개개 국민은 한 떼의 소심하고 일 잘하는 가축”이라고 평했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국민주권’은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의 뜻’이란 구호가 공허하다고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1억 개의 눈과 귀’를 다시 쓰면서 민심의 무서움을 표현했다. 한데, 곧바로 선거 결과를 만든 민심과는 달리 공소 취소에 힘을 싣고 기존 부동산 정책에 그린라이트를 다시 켰다. 더 많이 알고, 더 공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앞뒤가 안 맞아 냄새가 좀 이상한데, 어쩌면 이 대통령이 ‘5000만 개의 코’를 쓰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김홍준 중앙SUNDAY 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진아, 왜 호텔 맡긴 줄 아니?” 이건희가 낸 쓰레기통 테스트 | 중앙일보
- 여교사에 “일진 4명 다 끌고와”…탐정 푼 엄마의 ‘학폭 복수’ | 중앙일보
- 대장암? 골절? 다 이겼다…93세 도봉산 왕언니 ‘엉덩이 비밀’ | 중앙일보
- 성매매 민원 터졌던 ‘박카스 할머니’…인천 만월산에 다시 떴다? | 중앙일보
- 단순 가려움증인 줄 알았는데…암이었다, 이게 무슨 일? [Health&] | 중앙일보
- “이혼이나 당하고” 발언에…이승환, 윤서인에 5000만원 손배소 | 중앙일보
- 개구리 점프 그 남자, 얄미운 예언 “1위 멕시코, 한국 2위” | 중앙일보
- 논란 때마다 말로만 “쇄신”…선관위 사과 못 믿겠는 이유 | 중앙일보
- “정말 매력적, 가창력 훌륭해”…젠슨 황도 반한 한국 가수 누구길래 | 중앙일보
- [단독] 배달 뛰며 변호사 꿈꾼 고학생, 가난은 기회까지 뺏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