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집에 올 때마다 딸은 왜 탈출구를 찾나
[김상목 기자]
'현재'는 학교에서 합창반 연습에서도 솔로 역할을 도맡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고생이다. 천사의 음성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녀의 일상은 지옥과도 같다. 엄마와 초등학생 남동생과 함께 현재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에게 매일 공포에 떠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참다못해 반항도 해보고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엄마에게 이혼을 거듭 권하지만, 지긋지긋한 상태는 바뀌지 않는다.
학교가 마친 후 집에 가기 싫어 동네 도서관에 머물던 현재는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던 '해인'과 마주친다. 아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동아줄이 필요하던 현재에게 잃어버린 딸을 지극정성으로 찾는 해인은 자기가 바라던 모든 것에 가깝다. 어느 날 아빠의 폭력에서 자신을 구해준 해인의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현재는 지금 상황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하지만 그 꿈은 과연 정당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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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를 위하여> 스틸 |
| ⓒ 라이카시네마 |
물론 주인공은 무기력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가련한 희생자로 머물길 거부한다. 그러나 막상 필사적으로 저항을 이어가려 해도 손뼉도 마주쳐야 하는데 돕는 이가 없다. 한편이 되어야 할 엄마 '석영'은 오랜 학대에 지친 나머지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린 듯하다. 가장 큰 폭력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다른 가족들에게 참고 견디길 종용하는 역할까지 도맡는다. 어린 남동생은 누나에게 의존할 뿐, 별다른 힘이 되긴 한참 멀었다. 짐이라면 모를까.
아빠가 귀가하는 밤이 되면 오늘만 무사히 넘어가기만 고대하는 지긋지긋한 나날 속에 현재는 바깥으로 맴돌며 탈출구를 찾는다. 언니, 동생 사이긴 해도 친구처럼 지내는 '석영', 교내 합창반 활동과 자유로이 접근 가능한 동네 도서관 등이 집에 들어가기 싫은 현재의 피난처가 되어준다. 하지만 이조차 임시방편일 뿐, 가족을 정신적으로 지배하려는 아빠는 합창 연습에도 출몰해 억지로 데려가기 일쑤다.
아빠는 화풀이 대상인 아내와는 달리 딸에게 비뚤어진 애정을 보인다. 아내는 성에 차지 않지만, 딸은 자신과 닮아 똑똑하다며 칭찬도 하지만, 자기 뜻대로 자신에게 의존하길 바라는 건 갈수록 굳어진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기에 더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아직 어린 아들은 납작 엎드려 폭풍이 지나기만 기다린다. 간간이 아빠의 역성을 들어주는 게 남동생의 생존 전략이다. 현재의 우군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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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를 위하여> 스틸 |
| ⓒ 라이카시네마 |
그때 구원의 천사처럼 해인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10년 전 잃어버린 친딸 '윤슬'을 찾기 위해 전단을 돌리던 해인을 본 현재는 빛과 소금을 만난 기분이었으리라. 엄마 노릇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현상 유지에 매몰된 자신의 엄마와는 다른 진짜 '엄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릴 적 한 번쯤 상상했을, '부모 선택 교체하기' 찬스가 마침내 자신에게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해인 곁에 붙어있을 수 있을까?
기회는 곧 온다. 아빠의 가정 폭력을 신고한 과정에 해인이 개입한 덕분에 임시보호자로 해인의 집에서 머물게 된 것. 그토록 바라던 꿈 같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이젠 지긋지긋한 원래 가족도, 집도 없이 떠도는 친한 언니도 별로 필요치 않다. 이대로만 쭉 살 수 있다면 자기 삶에도 볕이 들 텐데, 하지만 현재 역시 잘 안다. 해인의 마음에는 지금도 친딸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이제 윤슬과 현재는 상상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한다.
이제 현재는 위기를 돌파하려 노력하던 가련한 청소년에서 타인의 엄마를 자기가 소유하고픈 욕망에 몸부림치는 존재로 타락할 위기에 처한다. 물론 당사자는 자신이 남의 것을 빼앗는다고 딱히 여기지도 않는다. 10년 전에 실종된 딸을 덧없는 집착으로 찾아 헤매며 과거에 사로잡힌 해인은 오히려 자신과 새롭게 출발하는 게 '현재'를 위함이라 믿는 현재다. 아전인수 격 합리화일 뿐이라 석영이 지적해도 '인생역전' 동아줄을 쥔 현재는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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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를 위하여> 스틸 |
| ⓒ 라이카시네마 |
자식이 부모와 다툴 때 전가의 보도로 써먹는 일갈,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남들 부모처럼 못하냐는 푸념이 환청처럼 들린다. 혹은 보호소의 버림받은 반려동물이 필사적으로 꼬리를 흔들며 방문객의 마음을 얻고자 애쓰는 장면이 겹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악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종종 표변하면 두려움을 안기는 그런 찰나.
물론 현재도 할 말이 많다. 엄마 석영은 딸이 앞장서겠다고 몇 번이고 권하고 설득해도 끝내 자신과 자녀를 구하기 위해 결심하지 못했다. 어린 동생은 칭얼대기만 할 뿐,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누나의 짐이 될 따름이다. 석영은 그나마 조언과 의지가 되어주던 존재였지만, 그녀 역시 딱히 손에 쥔 게 없어 든든한 반석과 한참 거리가 멀다. 현재가 머리를 굴려보니 해인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자기와 맞는 조각인 것. 그녀는 딸이, 자신은 엄마가 필요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서로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가까워진 관계는 불순한 이해관계가 개입되자 점점 그늘이 드리운다. 현재는 남은 가족이 어찌 되든 나부터 살아야 한다. 과거를 세탁하고 해인의 딸로 입양될 기회가 생긴다면 뭐라도 저지를 것 같은 그녀의 표변을 응시하는 관객은 10대 청소년이 얼마나 가변적 존재인가 새삼 깨닫고 만다. 그만큼 주변 환경에 좌우되기 쉽다는 것, 좋은 어른이 곁에 있냐 여부에 따라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는 현재다.
상처 입고 고통받은 자들의 연대는 초반의 훈훈한 위로를 넘어 서로에게 기대치가 높아지며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다. 현재는 상처받은 야생동물처럼 분노를 표출하거나 자기중심적인 돌발 행위를 거듭 저지르고, 해인은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뇌에 빠진다. 석영은 자식을 되찾고자 뒤늦게 노력한다. 석영은 동생 같은 현재에게 남에게 의존하지 말라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충고한다. 현재는 새로운 차원의 혼란에 휩싸인다. 천사 같던 소녀는 격동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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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를 위하여> 스틸 |
| ⓒ 라이카시네마 |
서로 다른 연배와 조건의 여성들이 모성애와 자매애로 중력장을 형성하는 영화의 골격과 더불어 또 다른 주제가 중반 이후 주요한 화두로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는 자기 처지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지만, 현재의 투정조차 부릴 상대가 없는 외톨이 석영의 존재감이 늘 질문을 던진다. 미워할 대상조차 없이 오늘 밤 어디서 잘지 염려하는 석영에게 현재는, 마치 누나에게만 의존하며 구하러 와주길 떼쓰는 남동생 '이재'와 겹쳐 보일 테다.
여기에 해인의 잃어버린 딸 윤슬에 대한 현재의 상상적 질투는 별도의 쟁점을 형성한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영화 속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빼어난 외모를 가진) 현재가 대체하려는 해인의 친딸 윤슬은 청각장애인이다. 주인공의 조바심과 달리 현재가 윤슬의 자리에 가는 게 과연 합당한지, 현재가 자기중심주의에 빠진 채 더 낮고 열악한 처지의 존재에게 유일하게 남은 걸 빼앗으려는 건 아닌지는 개인의 욕망을 넘어 사회적 쟁점으로 주제를 확장하는 장치다.
김다솜 감독은 2019년 선보인 단편 <우리는 서로에게>를 통해 소원한 관계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엄마가 쓰러진 후 고향에 돌아가 만난 엄마의 '마음으로 낳은 딸'과 대면한 후 기이한 질투심에 빠진 영화감독 친딸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바 있다. <현재를 위하여>를 보고 나면 감독의 전작이 자연스레 소환된다. '딸'이란 존재가 갖는 여성이자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복합적 존재감이 가져오는 풍부한 이야기를 감독은 경험담과 연동해 제시하려 한다.
현재 역을 맡은 황보운 배우는 그녀의 전작 <만인의 연인>에서와 연계되는 색깔의 연기를 펼친다. 또래 친구들은 상상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에 질식할 것 같은 시련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좌충우돌하는 캐릭터, 원치 않게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신도 상처를 받는 이중성이 천사와 소악마 사이를 오가는 이미지로 화면을 수놓고 있다. 어두운 터널을 끝내 좌충우돌 통과한 현재가 새 출발점에 선 풍경은 누구나 서봤던 삶의 분기점으로 공감할 법하다.
<작품정보>
SOAR
2026 한국 드라마
2026.06.17. 개봉 90분 15세 관람가
감독 김다솜
출연 황보운, 채정안, 배민수, 민효경, 손예원
제작 바로엔터테인먼트, 21스튜디오, 산산
배급 라이카시네마, 2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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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를 위하여> 포스터 |
| ⓒ 라이카시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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