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 묘목 50주는 왜 '의혹'이 됐나
[배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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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북한 가는 제주 감귤. [자료사진] |
| ⓒ 연합뉴스 |
그런데 이 소식은 곧바로 다른 질문을 불러왔다. 왜 보냈느냐, 누구를 만났느냐, 혹시 수상한 접촉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특히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리호남 전 주중 북한대사관 참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리호남은 과거 남북 정상회담 논의 과정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름이 언급된 인물이다.
그 순간 한라봉 묘목 50주는 단순한 농업협력 품목이 아니게 됐다. 어떤 이들에게는 16년 만의 제주 남북교류 재개였고, 다른 이들에게는 수상한 대북 접촉의 증거처럼 읽혔다. 같은 물품, 같은 사건이지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제주도가 북한에 무엇을 보냈느냐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통일부 승인까지 거친 작은 지자체 교류가 왜 곧바로 의혹의 언어로 번역되는가.
한라봉 묘목 50주는 어떻게 북한으로 갔나
우선 이번 일을 불법 대북접촉이나 대북송금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공개된 내용을 종합하면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제주형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중국 측과의 협의, 제주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의 기금사업 의결, 올해 2월 베이징에서의 북측 관계자 접촉, 3월 통일부 반출 승인, 4월 물품 반출, 5월 남포항 도착으로 이어졌다. 통일부도 제주도의 북한 주민 접촉 신고와 물품 반출 신청을 관련 법적 요건에 따라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원 물품의 성격도 봐야 한다. 이번에 전달된 것은 현금이 아니라 한라봉 묘목, 신장투석기와 소모품, 산림방제 약품, 비닐하우스 자재였다. 의료, 산림, 농업 분야의 제한적 협력 품목이다. 한라봉도 과일이 아니라 묘목이었다. 장거리 운송 과정의 부패 우려 때문에 묘목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누군가 먹으라고 보낸 과일이라기 보다, 과거 제주 감귤 교류의 연장선에서 선택된 농업협력 품목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비슷한 과거 사례도 있다. 제주도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감귤과 당근을 북한에 보내며 이른바 '비타민C 외교'를 이어왔다. 총 6만 6000t의 감귤과 당근이 북한으로 갔고,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과 5·24 조치 이후 사업은 중단됐지만, 제주 감귤 교류는 지자체 남북교류의 대표 사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번 일을 남북관계 전환의 신호로 과장하는 것도 곤란하다. 북한은 여전히 남북관계를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 최근 북한은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재정리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 상황에서 한라봉 묘목 50주와 신장투석기 지원만으로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였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더구나 제주도는 북측 협력 파트너로부터 공식적인 회신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물품이 남포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번 사업을 대북정책 전환의 공개 성과로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업은 남북관계 변화의 신호라기보다 지자체 차원의 제한적·실무적 협력이 실제 이뤄진 사례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문제는 이런 '제한적 사례'조차 쉽게 제 크기로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부 보도와 댓글 여론은 리호남 접촉을 앞세워 '수상한 대북 접촉'이라는 프레임을 제기했다.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16년 만의 남북교류 재개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양쪽 모두 짚을 지점은 있다. 접촉 인물의 이력은 가볍지 않고, 16년 만의 제주형 교류 재개도 기록할 만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 붙잡으면 사건은 금방 과장된다.
리호남이라는 이름 하나로 전체 사업을 불법으로 몰 수는 없다. 동시에 통일부 승인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의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접촉 경위와 절차, 물품 전달 확인, 향후 협력 원칙은 차분히 설명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협력기금이 사용된 사업이라면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후 설명은 필요하다.
다만 그 설명 요구가 남북교류 자체를 위축시키는 의혹의 언어로만 흘러서는 안 된다. 남북교류는 원래 조심스럽다. 공개가 늦으면 의심을 받고, 공개가 빨라도 공격을 받는다. 북측과의 협의가 끝나기 전에는 드러내기 어렵고, 드러난 뒤에는 왜 숨겼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바로 이 취약함이 지금 남북교류의 현실이다.
제주도가 이번 사업을 비공개로 추진한 이유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제주도는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이 예민한 사안이라 비공개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이 진행 단계였기 때문에 완결 이후 발표하려 했다는 설명도 내놓았다. 이 해명을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남북관계가 막힌 상황에서 작은 접촉 하나도 정치적 논란이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조용히 추진할 수밖에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성급한 환영도, 성급한 의심도 아니다. 이번 제주 대북지원은 남북관계를 바꿀 만한 큰 사건이 아니다. 동시에 수상한 대북접촉이라는 말만으로 지워버릴 일도 아니다. 오래 중단됐던 제주형 남북교류가 의료·산림·농업 분야의 낮은 단계 협력으로 제한적으로 재개된 사례다. 딱 그 정도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성과? 의혹? 그냥 있는 그대로 보자
한라봉 묘목 50주는 거대한 평화의 상징도 아니고, 불법 접촉의 증거도 아니다. 그것은 제한적 지자체 교류의 한 품목이다. 신장투석기와 방제약도 마찬가지다. 이 물품들이 남북관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막힌 상황에서 이런 수준의 협력조차 실제 반출과 도착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기록할 만하다.
남북교류를 둘러싼 논쟁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사건을 제 크기 그대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작은 접촉을 곧바로 성과로 포장하는 것도, 곧바로 의혹으로 번역하는 것도 모두 같은 문제를 낳는다. 남북관계는 과장된 기대와 과장된 불신 사이에서 늘 흔들려왔다.
이번 제주 대북지원도 마찬가지다. 성과도 의혹도 아닌 제한적 교류 사례. 그렇게 놓고 봐야 이후의 질문도 정확해진다. 절차는 적절했는가. 물품은 제대로 전달됐는가. 후속 협력은 가능한가. 지자체 남북교류는 어떤 기준 아래 계속될 수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질문들이다.
한라봉 묘목 50주가 왜 의혹이 됐는지 묻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 질문은 단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막힌 남북관계 속에서 작은 교류조차 어떤 언어로 소비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장면을 의혹이나 성과 어느 한쪽으로만 읽는다면, 다음 접촉도 같은 방식으로 소모될 것이다. 제 크기로 보는 것,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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