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라고!" 3년 만에 다시 나타난 그 남자가 저지른 행동
[이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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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토커 이미지 |
| ⓒ 연합=OGQ |
파티 당일 오전, 날씨가 너무 좋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꽃내음을 맡으며 공원에 도착했다. 오늘 같이 농구를 하기로 한 분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몸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너무 놀랐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참여하는 페미니즘 행사 때마다 나타나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남자였기 때문이다.
스토킹 사건의 발단
이 사람은 원래는 내가 운영하던 소규모 페미니즘 단체의 회원이었다. 처음에는 시간을 내어 모임에 참석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대화는 잘 안 통하는 사람인 것 같았지만, 페미니즘이란 언제나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법이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의 식사 자리에서 그가 내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가져온 옷을 걸친 나는 그 후로 나는 그가 불편해졌다.
그 뒤로 그와 개인적인 연락은 최대한 주고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사건은 이어졌다. 친구들과 여성단체에서 주최한 페스티벌에 참여했는데, 갑자기 그곳에 나타난 그가 나한테 가까이 와서 "사랑한다"라며 고백 공격을 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아...네..."라고 하고 답하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때라도 단호하게 거절할 걸 그랬다. 그런데 그때는 페스티벌 자리에서 큰 소리를 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보면 나의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후 그의 불쾌한 접근은 온라인으로도 이어졌다. 여성의 몸 해방운동을 실천하는 나도 스스로의 몸이 뚱뚱하고 못생기다고 느껴지는 아이러니함과 죄책감을 페이스북으로 털어놓자, 그는 '전혀 못생기지 않고 아주 아름다운 몸'이라면서 맥락에 맞지 않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길로 그를 페이스북에서 차단했다. 차단당한 그는 내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찾아와 전혀 상관없는 게시글에 자신을 왜 차단했는지 질문하는 댓글을 달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여성의날에 내가 소속되어 일하고 있는 단체 부스에 찾아왔다. 내가 그를 무시하자, 부스에 있던 다른 활동가에게 '가현님한테 페이스북 차단 왜 했는지 물어봐 주실래요?'같은 질문을 했다. 질문을 들은 활동가들은 당황해서 나를 쳐다봤다. 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닌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결국 내가 나서서 그에게 차단한 이유를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다고 하고서야 그를 멀리 보낼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잠시 페이스북 차단을 풀고 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당신의 무맥락 댓글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여기저기 왜 차단했냐고 물어보는 행동은 스토킹 범죄가 될 수 있으며 그의 그 행동이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불쾌하게 한다면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퀴어문화축제 입구에서도 나는 그를 마주쳤지만, 드랙킹 분장을 하고 있던 나는 그에게 내 존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내내 그가 나를 알아볼까 봐 조마조마했고, 주변 활동가들 옆에 꼭 붙어서 숨어다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나는 그와 내가 속해있는 단체의 다른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해당 단체에서 제명되었다. 나는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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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우리 사회는 스토킹을 심각한 범죄행위로 인식하고 있는가. |
| ⓒ pixabay |
모든 사고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몸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편하고 불안해졌다. 저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온 건지, 그러면 내가 활동하는 계정을 계속 팔로우하고 있다는 건지, 왜 온 건지, 어떻하면 멀리 보낼 수 있을지,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영문을 모르는 다른 활동가는 그에게 "저희는 여자농구팀이라서 남자랑은 같이 안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준비운동을 하면서 같은 자리에 있는 여성들에게 "저 사람 스토커예요"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어리둥절했다. 누구의 스토커? '내' 스토커라고 소유격을 붙여서 말해야 하는 것도 입이 더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나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용기를 내어서 뒤를 돌아 그에게 가까이 갔다.
"저는 선생님을 스토커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지금 안 가시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은 그는 우리로부터 5미터쯤 걸어가서 운동을 하는 척했다. 다른 활동가가 여기서 나가라고 하자, '나도 여기서 운동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호소하면서 계속 우리를 쳐다볼 수 있는 곳에 있으려고 했다. 자꾸 안 나가길래 "신고할게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켜서 녹화를 시작했다. 안 가면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니까. 그는 계속 출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려 했다. 우리가 그에게 가까운 출구를 안내하며 계속 나가라고 하자 그는 참가비도 냈는데 억울하다고 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다른 활동가들이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 같았고, 내가 계속 단호하게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가까이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지금 장난하세요? 운동 같은 소리하네. 장난하시냐고요."
공격적인 말투와 눈빛, 그리고 촬영 중인 휴대폰을 보고 나서야 그는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여 체육공원을 나갔다. 그런데 체육공원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그는 체육공원 게시판 앞에 멈춰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의 하체가 다시 멈춰 선 것을 본 나는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꺼지라고!!!"
내가 온 공원이 쩌렁쩌렁 울리게 외치고 나서야 그는 공원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가 안심한 사이 스토커는 다시 돌아왔다. 쉬는 시간에 공원의 화장실에 갔던 친구는 스토커가 공원에 다시 들어와 매점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파티 장소 주변에도 스토커는 다시 나타났다. 내가 다시 나가려고 하자 친구들이 나를 멈춰 세웠다. 밖에 나간 활동가가 스토커에게 참가비 1만 원을 환불해 줄 테니까 가라고 했는데 갑자기 스토커는 '참가비를 후원하겠다'고 태도가 돌변했다고 했다. 후원은 무슨. 만원을 손에 쥐여주고 그를 쫓아내고 나서야 우리는 파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파티 장소 주변을 배회하며 여러 참가자들에게 목격되었다. 나는 재밌게 노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그가 갑자기 파티 장소에 불을 지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문 쪽이나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없는지 나도 모르게 확인했다. 너무 즐거운 파티를 끝내고 나서도 나는 결국 대중교통도 타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와야 했다.
스토킹 피해자는 왜 신고하지 못할까
스토킹 처벌법이 처음 시행된 2021년 신고자는 1만 4천여 명이었지만 불과 4년 후인 지난해 신고자는 무려 1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스토킹 신고는 폭증했다.(경찰통계자료 범죄예방대응국 관계성 범죄 신고자 성별 분류 현황) 이렇게 수많은 신고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10년 가까이 같이 활동하면서 내가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놀랐다. 맞다. 내가 특별히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남성페미니스트 단체에서 활동했을 때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이기도 했다. 스토커는 여성 비중이 높은 행사들에만 나타났다.
처음에 나는 스토커가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멀쩡히 직장도 다닌다고 하고, 운동도 다니고, 무엇보다 페미니즘 행사에 오는 남성이기도 했으며 폭력적인 언행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동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보니, 이제는 조금 두려워지면서 왜 그를 스토커로 신고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생겼다.
왜 그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냐면, 그가 페미니스트들과 퀴어들이 함께 모여 용기를 내고 뜻을 나누는 행사가 있는 날에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좋은 날에 내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이 출동을 하고, 당사자로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당황하고 내 하루는 망친다고 생각하니까 선뜻 신고를 하기가 어려웠다. 신고를 하는 순간 그가 벌인 행동이 내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렇게 크게 힘들지는 않고 조금 당황했을 뿐이고, 물리적인 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욕설이나 폭언을 들은 것도 아니라서 과연 이게 신고한다고 해결되는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스토킹처벌법이나 스토킹방지법의 내용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법조문의 내용들이 다 쓸데없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모두 여성단체, 반성폭력단체 활동가들이기에 나에게 신고가 쌓일수록 좋다고 했다. 그러면 신고를 몇 번이나 해야 이 귀찮은 상황이 끝이 날까. 경찰이 오면 매번 다른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경찰이 만약 "선생님 따라온 게 아니라 그냥 행사 참가하러 오신 거라던데요?"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이 피해를 증명해야 할까. 오히려 신고를 했다가 누군가의 실수로 내 집 주소나 직장이 가해자에게 알려지면? 보복하러 찾아오면? 이런 복잡한 상황들이 떠오르며 신고 자체를 생각하기 싫어지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정신적으로 버텨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아니 더더욱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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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17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 |
| ⓒ 연합뉴스 |
더 이상 스토커와 상관없는 주변 사람들까지 공포와 불안에 떨게 둘 수 없었고, 나 스스로도 이런 불편함과 불안 속에 방치해두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서주는 친구들이 있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해주고, 상담이 필요하면 말해달라는 친구들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며칠 전 서울의 강동구에서 20대 남성이 교제하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스토킹이나 다툼 등으로 인한 경찰 신고나 범죄 피해 이력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적혀있었다. 신고가 없었다면 피해도 없었던 것으로 간주되어 버리는 사회이니, 피해자가 피해의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도 앞으로 나의 단호한 대응을 다짐하면서 쓴다. 또 다른 누군가가 스토킹에 대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조금씩 결심하면서 나아가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게 미래의 나와 내 친구들을 지키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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