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이주노동자 시신 들어왔습니까"

바다 2026. 6. 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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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주노동자 사망 기사 뜨면 장례식장부터 찾는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

[바다]

이주노동자 사망 기사가 뜨면 그는 곧장 서울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는 지도 앱을 켜고 해당 지역의 장례식장을 검색한다.

"혹시 오늘 이주노동자 시신이 들어왔습니까?"

안치실을 확인할 때까지 전화를 돌린다. 해당 지역에 없으면 사고 현장 인근 장례식장까지 수소문한다. 그 사이 추모 기도를 해 줄 스님도 찾는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확인될 때마다 반복되는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일상이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안치실을 직접 찾게 된 지 이제 만 1년이 됐다. 지난 2025년 7월 9일,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베트남 노동자 응오 두이롱(사망 당시 23세)씨를 찾은 게 시작이었다. 계획도, 예정도 없었다.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하나로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무작정 검색해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14명 사망 노동자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양 집행위원장은 "이주노동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라며 "이것이 처참한 차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13일, 양 집행위원장을 만나 이주노동자의 떠나는 길을 집요하게 찾는 이유를 들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양한웅 집행위원장
ⓒ 한노보연
천 원짜리 우의에 칭칭 감겨 냉동고에

"시신 상태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수사기관이 검시하면 의사가 몸에 칼도 대고 피도 흘리고 하겠죠. 끼임, 폭발 사고로 죽었으면, 몸이 다 찢어져 있고요. 그런 시신을 그냥 비닐로 칭칭 감아놔요.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우의로요. 핏자국 선명하고요. 장례식장은 그냥 흰 천만 덮어 두는 거예요."

이 일을 시작하고 양 위원장이 가장 놀랐던 건 '시신의 방치'였다. 망인들은 대부분 피 흘리거나 몸이 으깨진 상태 그대로 냉동고에 들어가 있었다. 알코올로 몸을 닦거나 옷을 다시 입히는, 한국인 사망자라면 통상 거칠 기본적인 시신 정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장례비가 지급되지 않아 장례식장은 시신을 들어온 상태 그대로 보관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장례지도사들은 추모 기도를 올리기 위해 찾아온 스님과 양 위원장에게 안치실 문을 열어줬다. "시신을 보고 기도해야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자 냉동고 문도 열어 줬다. 가장 처음 찾았던 구미 강동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는 배 하나와 맥주 한 캔만 놓여 있었다. 위패도 영정도 없는 처참한 시신 앞에서 양 위원장과 서원 스님은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망인은 건설 현장으로 이직한 지 하루 만에 죽었다. 경북 김천의 한 포도 농장에서 일하다 폭염을 견디기 어려워 건설 현장으로 옮겼는데, 결국 폭염으로 사망했다. 사고 당일 한국 노동자들은 오후 1시에 조기 퇴근했지만, 망인은 오후 5시까지 홀로 일하다 죽었다.

3주 후 포항에서도 네팔 노동자 우다야 시레스타씨가 폭염으로 사망했다. 산에서 예초 작업을 하던 중 한국 노동자는 다 하산하고 홀로 남아 일하다 변을 당했다. 사회노동위원회가 두 번째로 찾은 망인이었다.

망연자실 부모는 뼛가루만 받아 든다

양 위원장은 세 번째 사례부터는 일단 기차부터 탔다. 사무실에서 앉아 전화를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태국·베트남 노동자가 새우 양식장에서 감전사한 전남 고흥으로 갔다. 안치실 풍경은 처참했다. 간이 외벽을 설치한 야외 창고 같은 공간에 냉동고 두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말이 양식장이지, 영세한 곳이었어요. 사업주 영감님이랑 아들이 앉아 울고만 있더라고요. 자기 잘못이기도 하지만 이걸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거기다 욕할 거예요, 뭘 할 거예요.

그때 베트남 노동자의 형과 친구 10명 정도가 와 있었거든. 영감님한테 '분향소 차립시다' 했어요. '이 친구들이 술 한 잔 올리고 같이 밤도 새우려면 시신이 영안실에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당신 잘못도 있지 않느냐. 이걸 소홀히 하면 당신도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 수 있다. 큰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예우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설득했고, 결국 영감님이 장례 계약을 했어요."

양 위원장은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시신이 제대로 된 장례 절차도 치르지 못한 채 화장돼 유골로 고국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 국제 화물로 보내려면 10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하더라. 그 나라 부모들에게는 1억 원처럼 느껴지는 돈 아니겠느냐.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는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유골함만 받아 들게 된다"고 말했다.

'돈 냄새' 맡고 찾아오는 브로커

일부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 시신을 둘러싸고 '돈 장사'를 하기도 했다. 이주민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브로커가 등장한다는 건 지역 장례식장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양 위원장은 올해 초 전남의 한 해안 도시에서 브로커를 목격했다. 이들의 대화를 들은 장례식장 직원들이 먼저 귀띔해 줬다.

그곳에는 브로커와 브로커가 고용한 조문객 1명, 지역 대학교수가 소개했다는 통역인 1명이 있었고, 정작 고인의 실제 지인들은 분향소 밖에서 쭈뼛대며 편하게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양 위원장은 당시 상황이 마치 '위장 분향소' 같았다고 말했다.

"거제에서 온 사람들이래요. 거제는 조선소 때문에 산재 사고가 잦잖아요. 두목 브로커랑 그가 고용한 노무사가 2인 체제로 움직였어요. 이주민 커뮤니티에 사망 소식이 퍼지면 브로커랑 연결된 사람들이 브로커한테 유족을 연결해 줍니다.

브로커는 유족 위임장 하나를 들고 모든 권한을 가진 것처럼 나서는 거죠. 합의금으로 회사에 3억 5000만 원을 처음 불렀고, 이후 1억 원 정도로 합의 봤대요. 떼가는 게 50%일지, 60%일지, 누가 알아요."

장례식장 직원은 협상하던 공장 관계자가 '차라리 유족에게 직접 돈을 주고 싶다'라며 하소연도 했다고 양 위원장에게 전했다. 그는 "브로커의 돈을 받는 통역사가 유족 측에 통역을 제대로 해 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브로커가 이주민 커뮤니티와 깊이 유착돼 있어 손을 쓸 도리가 없다고 하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죽음이 사라지지 않게 분향소 투쟁에 나서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추모기도 활동 일지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사고 현장과 장례식장을 찾던 그는 이제 지역 노동청과 사업주도 찾아간다. "일하다 사망한 이주노동자에게 예우를 다하라"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2명의 이주노동자가 연이어 죽은 전남 영암 대불산단 사건이 계기가 됐다. 양 위원장은 당시 노동부 목포지청을 찾아가 "영안실에 분향소를 차려라. 대체 노동부가 뭘 하고 있느냐? 관리 감독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후 사고 현장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시경·동신 스님과 양 위원장은 대불산단 사업장을 찾았다. 이들은 "최소한 현장 근처라도 가야 영혼을 달래지 않겠느냐"며 "꼭 안에 들어가야 한다. 종교인 기도일 뿐인데 왜 막느냐"고 항변했다. 결국 공장 문은 열렸고, 캄보디아인 고 톰 소띠에씨가 선박 블록에 깔려 죽은 자리에서 그를 추모했다.

이주노동자 추모 기도를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양 위원장은 "시신에 대한 존엄한 예우와 유족에 대한 예우다. 이 기본적인 두 책무도 하지 않으면서 '돈보다 생명'이라는 둥, 진실을 규명한다는 둥 하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용자는 마땅히 분향소를 차려야 하고, 노동부는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은 '돈보다 생명, 돈보다 생명'을 강조하지 않느냐"며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일하다 죽은 이주노동자의 존엄을 보장하지 않으면 노동부도, 대통령도 다 거짓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의 존엄을 찾는 싸움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 폐지든, 노동3권 쟁취든, 여기서 비롯된 죽음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다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분향소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간인 동시에 절을 하고 술 한잔을 올리며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이라며 "죽음을 잊히지 않게 만드는 공간이다. 이주인권운동도 '분향소 투쟁'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바다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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