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와 통제에 치우친 이민 정책 바꿔야 이주노동자 살린다

임용현 2026. 6. 9. 14: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살리는 이주민 정책을 기대한다

[임용현]

"50m 높이에서 추락하는 찰나의 시간을 저는 헤아릴 수 없었어요. 저는 혼자 추락하지 않았어요. 동료인 응웬 응옥 꽝과 같이, 대형 거푸집과 같이 떨어졌죠. / (중략) / 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국에 돈 벌러 왔어요. 가난이 너무 싫었어요. 네, 맞아요. 건설 현장에 불법 취업을 했어요. 부모님까지 가족 여섯 명이 제 등에 매달려 있으니까요. 고향에 매달 생활비를 보내야 하고 유학 올 때 브로커에게 들어간 빚도 갚아야 했죠. 택시비를 아끼려고 한겨울 새벽길을 30분씩 걸어 기숙사에 가곤 했어요. 옷도 사지 않았어요.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죠. / (중략) / 제 목숨 값이 얼마나 될지 저도 너무너무 궁금해요. 과연 건장한 30대 베트남 사내의 몸값은 얼마일까요."

- 김선향의 시 <나는 얼마입니까?>에서

2023년 7월, 충북 오송에 조성 중인 충북경제자유구역 내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두 명이 25미터 높이에서 작업 중 갱폼(작업 발판을 겸하는 건물 외벽 거푸집)과 함께 떨어져 숨졌다. 안전보다 비용과 시간을 앞세운 속도전(速度戰)이 빚은 참사였다. 당시 추락재해로 숨진 서른여덟 청년, 응웬 두안 썬(NGUYỄN TUẤN SƠN)은 유학생 비자로 들어와, '합법적'인 건설 현장에서 '불법적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다.

체류 자격으로 제한된 노동권이 '불법' 상태 만들어

한국 정부는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면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이주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자본 이동은 더없이 자유롭지만, 이주노동은 엄격한 체류 자격과 고용 제한 조치를 통해 단속과 통제의 대상으로 묶어둔다. 이주민의 체류 자격과 그가 수행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와 대상 지역, 체류 기간은 비자 종류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적용된다.

지난해 10월 대구 성서공단 내 한 제조업 사업장에서 출입국 단속반을 피해 숨어 있다가 추락 사망한 베트남 국적의 유학생 이자 이주노동자였던 뚜안도 이주민을 단지 노동력 관리 대상으로만 치부해 온 정책의 피해자였다. 그는 합법적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었지만, 외국인 유학생의 구직활동을 제한하는 까다로운 비자 요건 때문에 불법 취업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뚜안처럼 많은 외국인 유학생이 학업을 위해 노동을 병행해야 하지만, 이들에게 발급되는 체류 자격(D-2(유학) 및 D-4(일반연수))은 학업이 본분이라는 이유로 취업 활동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당시 유학생의 취업은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음식점·단순 사무보조 등에서의 시간제 근무(아르바이트)가 허용되었는데, 단시간 노동만으로는 생계를 잇기가 벅찼다.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제조업에서 '불법'으로 일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취업을 전제로 한 비자도 마찬가지다. 이주민의 취업 비자는 그가 가진 일에 대한 경험과 역량에 따라 선별적으로 발급된다. 노동력의 쓸모가 한국에서 살아갈 권리를 좌우하는 결정적 잣대가 되는 셈이다.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이 기준에 부합하려면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할당한 일자리에서 누구보다 온순하고 근면 성실하게 '근로'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E-9(고용허가제) 외에도 E-7(전문·기능 인력), E-8(계절근로), E-10(선원 취업) 등 거의 모든 취업 비자에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이는 정부가 이주민을 단기적인 대체인력으로 바라보며, 제조업, 농어업, 건설업, 음식 서비스업 등 산업 현장의 인력 부족 현상을 '단기·순환형 저숙련 외국인력 확대'로 보충하는 정책을 줄곧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아래, 정부 역할은 외국인력 수급 조절에 머물고, 이민 정책은 단속과 추방 위주로 구성된다.

보이는 치안 활동? 보이지 않는 이주민!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현 정부가 관리와 통제 중심의 이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3일 이재명 정부는 '2030 이민 정책 미래전략'을 발표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정주 가능성을 일부 확대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주민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닌 노동력으로 간주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2030 이민 정책 미래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외국인 커뮤니티 활용, ▲정보수집을 통한 동향 파악 등 이른바 "보이는 치안 활동"을 통해 "시민이 체감" 할 수 있는 가시적인 정책 수단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주민의 안정적인 체류권 보장 등 인권 보호는 고사하고, 이주민을 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보는 낙인찍기와 치안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요컨대 "노동 시장 편입은 허용하되 시민권 접근과 노동권 보호는 체계적으로 제한하는 구조, 이것이 한국 이민 정책의 실체"다1).

이에 대해 경기이주평등연대 박희은 집행위원장은 지난 3월 18일 법무부 출입국 이민조사과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뚜안 님 사건과 같은 토끼몰이식 합동단속 계획은 올해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밝혔지만, 윤석열 정권에서 시작된 '미등록 이주민 50% 감축 계획'을 아직 폐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리력(출입국 단속반)을 동원해 사업장을 급습하는 방식의 단속 관행은 일단 멈춰 세웠지만, 미등록 이주민에게 안정적인 체류권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유학생 배달업 불법취업 및 명의도용 집중 단속 안내’ 카드뉴스의 한 장면.
ⓒ 수원출입국· 외국인청 인스타그램
통제 일변도의 정책, 위험을 증가시킨다

정부의 강압적인 미등록 이주민 단속 기조가 지금도 변치 않았다는 점은 얼마 전까지 대대적으로 이뤄졌던 '배달업 분야 불법 취업 외국인 집중단속'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2). 현행 출입국관리법은 이주민이 배달 라이더로 일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거주(F-2), 영주(F-5), 결혼이민(F-6) 비자 등 장기 체류 자격을 보유한 경우로만 제한하고 있다. 일반 취업 비자나 유학생 비자(D-2)로는 배달업에 종사할 수 없도록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시 체류 자격 취소, 범칙금 부과, 강제 출국 조치 등 강도 높은 처벌 및 제재를 하고 있다. 뒤이어 서울시도 '외국인 배달 라이더 불법취업 대응을 위한 상담·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 이주민 라이더를 향해 단속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잠시 주춤했던 감시와 단속 중심의 이민 정책이 배달업에서 반복재연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만을 겨냥한 단속은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특히 노동권 보장 수준이 턱없이 낮은 플랫폼 노동에서 '안전할 권리의 보장'은 합법적 구직 경로를 이탈해 일자리에 진입한 이주민의 책임으로 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 부산지회에 따르면 올해 부산에서 31세 중국인 라이더가 일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불법' 상태로 일하던 중이라 산업재해로 분류되지도 않고, 보상은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도 어렵다고 한다. 이미 '불법' 이주민을 활용하고 있는 배달업체나 플랫폼이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리 만무하다.

라이더유니온 구교현 지부장은 나아가 "내국인보다 통제가 쉽다는 사업주의 인식과 언제 퇴출당할지 모르는 이주노동자의 불안감이 맞물려 과로와 과속이 용인"된다고 말했다. "더 낮은 임금에 더 오래 일하는 구조가 사고 위험을 높이고, 사고가 나면 대처도 쉽지 않으니 결국 스스로 숨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라는 얘기다.

관리와 통제, 차별과 배제 정책 허물어야

통제와 단속 일변도의 이민 정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내몰 뿐만 아니라, '합법적' 상태의 이주 노동자 안전도 위협한다. '합법적' 이주민들 역시 자격 유지를 위해 위험을 감내하거나, 아니면 합법 경로에서 탈락할 압력에 상시로 노출된다. 그리고 이 같은 배제와 차별의 구조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마저 국가 통계에서 공백으로 남긴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3)에서 "살아 노동하는 동안에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 미등록(un-documented) 노동자가 되기 쉽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원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인불명(unknown)으로 처리되기 쉬웠으며, 사망 후에는 시신 처리 과정에서 무연고(un-related) 사망으로 분류되기 쉬웠다"라고 진단한 이유다. 관리와 통제만을 목표로 하는 이민 정책은 이 악순환을 부채질한다. 차별과 배제로 점철된 이민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촉구한다.

1)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 인권을 말하며 통제를 설계하다", 손인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6.4.10. 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882

2) 법무부는 배달업에 종사할 수 없는 이주민들의 취업 사례가 늘자 '국민 일자리 보호와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을 내세워 지난 3월 9일부터 4월 30일까지 53일간 집중 단속에 나섰다. (참고: 법무부 보도자료 "법무부, 배달업 분야 불법취업 외국인 집중단속실시", 2026.3.9.)

3) 김승섭 외,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2024, 국가인권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임용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