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년 전 생긴 호텔의 역사, 유리 바닥 아래에 있습니다
[김정형 기자]
안개와 미세 먼지가 낮게 내려앉은 지난 6일 오전, 인천 중구 원도심의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랐다.
매끄럽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위로 세련된 카페들이 줄지어 서 있지만, 코끝을 스치는 갯내음 사이로 어딘지 모르게 묵직한 공기가 발끝을 잡아 끌었다. 1883년 개항 이후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이자 고달픈 민중의 삶이 엉겨 붙었던 곳, 바로 인천 개항장 거리다.
이날 여정은 지역의 숨은 역사를 기록해 온 이경희 전문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진행됐다. 교과서 속 박제된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선 땅속에 묻혀 있던 구한말과 근현대사의 날 것 그대로의 숨결을 호흡해 본 도보 기행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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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중구 김구선생 동상 인천 신포동 인근의 김구 동상이 있다. 김구 선생이 감옥에 있던 인천 감리서가 있던 근처이다. (AI로 사진 보정) |
| ⓒ 김정형 |
"1896년 명성황후 시해의 원수를 갚겠다며 일본 상인을 처형한 청년 김창수(백범 김구의 본명)가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탈옥 후 옥고를 치르다 서른아홉 나이에 다시 이 차디찬 감옥으로 잡혀 오셨지요."
해설사의 목소리에 일순간 비장함이 감돌았다. 김구 선생은 인천 내항 축강 공사(항만 건설)에 동원되어 하루하루 인간 이하의 삶을 버텨내야 했다. 발마다 무거운 쇠사슬이 채워진 채 뭇매를 맞으며 돌을 나르던 청년. 너무 힘이 들어 차라리 바다에 뛰어내려 목숨을 끊고 싶었지만, 자신이 떨어지면 사슬로 엮인 동료들까지 줄줄이 끌려 내려가 죽을까 봐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는 <백범일지>의 구절을 들을 땐 주변에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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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리마루문화쉼터 김구선생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옥살이하는 김구선생을 살리겠다고 감옥 근처에서 빨래와 바느질 품을 팔며 사식을 넣으며 생활하던 장소로 지금은 내리마루 문화쉼터가 들어서 있다. (AI로 사진 보정) |
| ⓒ 김정형기자 |
숨이 가빠올 때쯤 응봉산(68m) 정상부에 위치한 '자유공원'에 다다랐다. 1888년 러시아 토목엔지니어 사바틴 등이 설계한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조선 땅에 살던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안락을 위해 지은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은, 1957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1960~70년대 지방에서 택시를 대절해 신혼여행을 오던 명소이자 우리네 학창 시절 사생대회의 단골 배경이었던 이곳. 지금은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며 웃음꽃을 피우는 평화로운 공간이 되었지만, 공원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외세의 군화 자국과 전쟁의 기억이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공원을 내려오는 길은 울창한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봄이면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는 해설사의 귀띔을 들으며 걷다 보니, 이국적인 반원형 창문이 돋보이는 '제물포구락부'가 나타났다.
1902년 서양인들이 모여 당구를 치고 독점을 논하던 그들만의 리그였던 곳. 바로 옆, 일본인 고노 다케노스케의 별장 터에 지어진 '인천 시민애 집(옛 시장 관사)'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개항기 권력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묵묵히 보여주고 있었다. 중구청 방향으로 발걸음을 더 옮기자, 이 지역이 가졌던 서글픈 정체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정중앙을 기준으로 우측은 좁고 가파른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 건축물이, 좌측은 붉은 벽돌 중심의 청나라 건축물(현재의 차이나타운)이 자로 댄 듯 엄격하게 나뉘어 있었다. 땅은 조선의 땅이되 법은 조선의 법이 미치지 못했던 치외법권의 공간, 조계지(租界地). 국가의 힘이 약했을 때 우리 땅이 어떻게 찢겨 나갔는지 보여주는 잔인한 경계선이었다.
일본 조계지 거리 한복판에 우뚝 솟은 3층 벽돌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숙박시설인 '대불호텔'이다. 1888년 일본인 부호가 지은 이 호텔은 일반 노동자 한 달 품삯을 웃도는 거액의 숙박료를 받던 특권층의 공간이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구식 스테이크와 커피(양탕국)를 판매하며 영어로 소통하던 세련된 공간이었지만, 1899년 경인선 기차가 뚫려 승객들이 인천에 묵지 않고 서울로 직행하게 되자 쓸쓸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중국 음식점 '중화루'로 간판을 바꾸며 격동의 세월을 버티다 헐렸던 이곳은, 2017년 문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지하 저장고 유구를 보존하며 전시관으로 재탄생 했다. 박물관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거친 돌벽들이 화려했던 호텔의 역사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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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물포 구락부 실내 세계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사교를 하던 제물포 구락부의 실내 |
| ⓒ 김정형기자 |
한때 인천의 행정과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중구 원도심은 시청이 구월동으로 떠나고 송도·청라 등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구도심'이라는 쓸쓸한 이름표를 달아야 했다. 하지만 이날 마주한 개항장의 거리는 결코 낙후된 과거가 아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격동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대체 불가능한 역사 문화의 심장이었다.
특히 이번 기행은 지역 행정사에 있어 거대한 전환점을 앞두고 있어 더욱 뜻깊었다. 오는 7월 1일부터 인천시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기존의 중구 원도심과 동구가 하나로 합쳐져 '제물포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공식 출범하기 때문이다(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 지역은 '영종구'로 분리 신설된다).
개항기의 중심지였던 '제물포'라는 역사적 이름을 행정 구역명으로 되찾는 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분절 되어 있던 원도심의 근현대사 문화유산을 하나의 벨트로 묶어내고, 소외됐던 원도심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신호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피워내고 있는 인천 개항장 거리. '제물포구'라는 새 이름표를 달게 될 이 길 위에서, 우리가 새로 써 내려갈 역사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와 책임감이 동시에 교차하는 초여름의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송고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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