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부촌 현관엔 꼭 LG로 두 대씩"…부자들 사로잡은 K가전

김진영 2026. 6. 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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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전력난이 키운 히트펌프 신화
LG전자, 파나소닉 61년 아성 무너뜨려
매년 11% 뛰는 대만 전기료 공포에
LG 워시타워 고효율 히트펌프 기술 각광
수입 가전 불모지서 점유율 싹쓸이

대만 타이베이의 신축 아파트나 고급 콘도미니엄 현관문을 열면, 거실 대신 거대한 'LG 스타일러' 두 대가 옷장처럼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색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연평균 습도 75%의 축축한 기후와 사방을 메운 오토바이 매연으로부터 위생을 지키려는 대만 상류층의 유별난 'K가전' 사랑 덕분이다. 대만에 공장 하나 없는 LG전자가 60년 넘게 대만 가정의 안방을 독차지해온 일본 가전 거두들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김건일 LG전자 대만법인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신의구 A13 원동백화점 현장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를 통해 "대만은 인구 2350만명으로 시장의 절대적인 규모는 작지만, 아시아 그 어떤 국가보다 평균 판매단가(ASP)가 압도적으로 높은 초프리미엄 시장"이라며 대만 시장의 전략적 가치와 성공 비결을 밝혔다.

김 법인장은 "태국과 세탁기 시장을 비교하면 판매 대수는 태국이 3배나 많지만, 매출 금액으로 보면 대만이 더 크다"며 "그만큼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니즈가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이 점을 간파한 LG전자는 과거 수교 단절로 팽배했던 대만 내 반한 감정을 기술력과 K컬처를 무기로 정면 돌파하며, 대만 법인 설립 25주년이 되는 올해 세탁기·TV·스타일러·제습기·공기청정기 등 주요 가전 품목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석권했다.

김건일 LG전자 대만법인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신의구 A13 원동백화점에 위치한 LG전자 매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일본식 '올드 패션' 깨부순 K가전의 혁신 속도전

LG전자의 이 같은 약진은 대만 현지에 공장을 두고 61년째 시장을 지배해 온 일본 가전 거두 '파나소닉'과 '히타치'를 기술 경쟁에서 밀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김 법인장은 부임 당시 일본 가전의 실태를 보고 정면 승부를 확신했다고 회상했다.

김 법인장은 "대만에 부임해서 보니 제가 20~30년 전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보았던 모델들이 그대로 매장에 진열돼 있었다"며 "기존 일본 업체들의 기술이 완숙되긴 했으나, 제품 스펙은 혁신이라기보다 미세한 개선만 반복하는 '올드 패션'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LG전자는 매년 신제품과 종래에 없던 기술을 투입하는 속도전을 폈고, 이것이 대만 시장을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특히 대만의 고질적인 전력 수급 불안과 주거 환경 변화를 정밀 타격한 맞춤형 가전이 승부수가 됐다. 대만 정부가 원전을 철폐하는 과정에서 최근 3년간 전기요금이 매년 6~11%씩 급등하자, 소비자들이 전기료를 획기적으로 아껴주는 LG전자의 '인버터 히트펌프' 기술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건일 LG전자 대만법인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신의구 A13 원동백화점에 위치한 LG전자 매장에서 LG 워시타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이 기술이 탑재된 일체형 세탁건조기 '워시타워'는 대만 출시 초기 무모하다는 비판을 딛고 초대박을 터뜨렸다. 김 법인장은 "1세대 워시타워를 출시하며 한국 돈으로 약 430만원을 책정하고 '연간 1만 대를 팔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유통 관계자들이 터무니없다며 많이 웃었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 목표치를 훌쩍 넘겼고, 22년 동안 깨지 못했던 대만 시장에서 처음으로 세탁기 마켓셰어 1위(약 32%)를 거머쥐는 일등 공신이 됐다"고 밝혔다.

나아가 LG전자는 내달 초 대만 시장에 가로 폭 65㎝ 크기의 차세대 '워시타워 콤팩트(세탁·건조 각 18kg)'를 출시한다. LG전자 세탁기 역사상 한국 시장을 제치고 해외 시장에 가장 먼저 선보이는 최초의 사례다. 이는 최근 대만의 신축 아파트 베란다 평균 면적이 2.1~2.2평 수준으로 급격히 좁아진 주거 특성을 반영해 김 법인장이 3년 전 본사에 직접 개발을 발의한 현지화의 결실이다.

오토바이 매연·반려동물 열풍이 키운 '이색 대박' 상품들

대만의 독특한 기후와 이동 수단 문화가 만들어 낸 이색적인 히트 상품들도 흥미롭다. 대표적인 제품이 의류관리기 'LG 스타일러'다. 연평균 습도가 75%에 달하는 대만은 가옥 구조가 좁음에도 불구하고 용량이 큰 '5벌식' 플래그십 모델의 판매 비중이 무려 82%에 달한다.

김 법인장은 "대만에서는 BMW를 서너 대 보유한 자산가들도 일상적으로 오토바이를 탄다"며 "외출 후 옷에 묻은 지독한 매연과 오염물질을 현관에서 즉시 차단하려는 대만인들의 철저한 위생 관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만 소비자들은 스타일러를 옷장 대용으로 현관이나 옷방에 2대씩 설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대만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스타일러 최대 판매국으로 우뚝 섰다. 최근에는 대만 인기 배우 허광한을 모델로 기용해 젊은 층 유입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반려동물 열풍도 가전 지형을 바꿨다. 현재 대만의 반려묘·반려견 수는 340만 마리를 넘어서며 14세 이하 어린이 인구수를 추월했다. 털 날림과 알레르기에 민감한 펫팸족을 겨냥해 출시한 'LG 360˚ 공기청정기 펫 모델'은 전체 공청기 매출의 50%를 차지하며 시장 1위를 견인하고 있다. 제습기 역시 독보적인 인버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 50%를 돌파했다.

김건일 LG전자 대만법인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신의구 A13 원동백화점에 위치한 LG전자 매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가전 구독 서비스' 도입… 미래 '록인' 효과 극대화

LG전자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말레이시아에 이어 대만에서 해외 법인 중 두 번째로 가전 구독 사업을 본격화하며 질적 성장에 고삐를 죄고 있다. 사시사철 에어컨을 틀어야 하지만 가전 케어 서비스 예약이 어려운 현지 '페인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며, 구독 사업 진출 1년 만에 주요 제품군에서 최대 20배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김 법인장은 "처음 사업을 전개할 때 대만은 구독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수립되지 않은 국가라 '그걸 왜 하느냐, 성공하겠느냐'는 우려와 질문이 쏟아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김 법인장은 "구독 사업의 진짜 가치는 눈앞의 매출 성과보다, 제품 판매 이후 끊어졌던 고객과의 접점을 다시 이어 소비자의 실제 사용 사이클을 매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며 "여기서 얻은 생생한 데이터와 피드백을 본사 사업부에 전달해 '대만향 맞춤형 제품'을 설계하고 개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만 타이베이 신의구 A13 원동백화점에 위치한 LG전자 매장. 김진영 기자

타이베이(대만)=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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