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도체 성과의 합리적 분배 주체와 방식

강단에서 기업법을 강의하며 필자가 느낀 당혹감은 단지 학문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적 기업관이 현실의 거대한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실천적 위기감이자 깊은 우려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회사법은 주주·경영자·채권자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골몰해 왔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사회연대임금’ 공론화 발언은 당혹스럽다. 법적·경제적 전선이 종업원·협력업체·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단위로까지 급격히 확장되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줬다. 이른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패러다임 전환이 목전에 다가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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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연대임금 공론화에 당혹감
이해관계자 무한투쟁은 비용 커
정부 강제 아닌 자율에 해답 있어
」

이런 전향적 흐름은 양극화 해소와 상생이라는 선의에서 출발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학자적 관점에서 엄밀히 짚어봐야 할 대목은 분배의 방식과 주체다. 현대 회사법 학계에서도 ‘팀 생산 이론’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을 주주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각자의 특수자산을 투입해 성과를 내는 연합체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이론의 핵심도 성과의 배분을 기업 내부의 독립된 이사회가 중재자로서 자율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국가가 기업의 성과 배분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의 성과급 논란이 글로벌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을 벌이는 극히 일부 기업의 특수 사례라는 사실이다.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는 극소수 기업의 이슈가 의도하지 않게 기업 전체의 보편적인 현상처럼 오인돼 사회 전체에 파급될 우려가 있다. 업종과 수익 구조가 다른 수많은 기업에 이러한 배분 방식이 파급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경영난과 시장 왜곡을 초래할 뿐이다.
동시에 이해관계자의 무한 투쟁이 벌어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기업의 성과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순간, 모든 이해관계자가 저마다 기여도를 주장하며 집단적 이익 극대화에 나설 것이다.
이익 배분의 객관적 기준을 국가가 설계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보다 효율적인 국가의 계획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해 왔다. 1990년대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은 분배 정의를 국가가 독점했을 때 발생하는 비효율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적 증거다. 더욱이 지금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보다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할 것인가’에 역량을 더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을 필두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기업의 에너지가 분배 갈등에 매몰된다면, 한 번 뒤처진 성장 엔진은 결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역사가 증명하듯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분배 논의는 결국 빈곤의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내야 할 합리적 대안은 무엇인가. 해법은 명확하다. 원칙으로 돌아가 국가의 강제가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거버넌스에서 찾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기업의 주인은 자본을 대고 위험을 감수한 주주다. 따라서 성과의 분배는 주주, 그리고 그를 대리하는 경영자가 주체가 된 자율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업의 위험감수 수준과 미래투자 수요를 가장 잘 아는 주체는 다름 아닌 그들이기 때문이다.
회사법의 패러다임 전환은 규제의 확장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법적 유연성의 확장이 주를 이뤄야 한다. 예컨대 협력사와의 상생이나 종업원 복지 확대를 기업의 장기적 가치 제고 행위로 폭넓게 인정해 경영진의 배임 책임 우려를 불식해 주는 법리적 보완과 인센티브 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최후의 보루에 그쳐야 한다. 자율적 협상이 도저히 풀리지 않아 벽에 부닥쳤을 때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로서 대화의 물꼬를 터주고,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후방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기업이 주주와 경영자를 중심으로 스스로 생존하고 자율적인 협상을 통해 상생할 수 있도록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해 주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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