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출판일 하던 작가의 시골살이, 무엇이 다를까

이승숙 2026. 6. 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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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형 작가의 <모쪼록, 간결하게>를 읽고

[이승숙 기자]

돋보기안경을 새로 맞췄다. 책을 읽는데 언젠가부터 글자가 깨끗하게 보이지 않았다. 돋보기를 끼고 보는데도 그랬다. 눈을 비벼도 보고 돋보기를 깨끗하게 닦아도 봤지만 글자가 작게 보이는 건 여전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눈이 피곤했다. 보려고 사둔 책이 쌓였는데 눈이 불편해 잘 읽지 못했다. 안경점에 가서 새로 돋보기를 맞췄다. 침침하던 눈앞이 깨끗해졌다.

새 돋보기를 끼고 책을 본다. 요즘 읽는 책은 김혜형 작가의 '모쪼록, 간결하게'이다. 김혜형 작가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 우리는 정토회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같이 부처님의 말씀(불법)을 배웠다. 또 내 첫 책 <꽃이 올라가는 길(2016년, 다이얼로그)>에도 김혜형 작가가 언급된다.

버릴 게 없는 사람
 "모쪼록, 간결하게", 김혜형, 마북출판사
ⓒ 이승숙
우리는 강화에 같이 살면서도 자주 만나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늘 같이 있는 듯이 느꼈던 것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삶의 길이다.

어릴 때 엄마는 작은 엄마를 일러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상찬하셨다. 심지어 '똥까지도 버릴 게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작은엄마의 마음 씀씀이와 됨됨이가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김혜형 작가 또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재주며 솜씨, 마음 씀씀이까지 어느 하나도 모자란 게 없는 사람이다. '모쪼록, 간결하게' 책 속에는 단단하고 야무진 그이가 있었다.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야문 사람답게 글 역시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김혜형 작가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직접 만들거나 고쳐 쓰는 걸 즐겨 한다. 물건의 중복 소유가 싫어 소비를 자제하지만, 일단 인연을 맺은 물건과는 끝까지 함께 한다. 새것을 덜 소비하고, 이미 가진 것을 잘 누리고, 기왕 세상에 나온 것들이 제 몫을 다하게 하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저마다의 쓸모만큼 닳도록 쓰이길' 소망한다.

능력자로 만들어 준 시골살이
 '강화포도책방'에서 열린 김혜형작가의 '모쪼록, 간결하게' 책담회
ⓒ 김민하
도시에서 출판 관련 일을 하던 작가는 강화로 터를 옮긴다. 뜻이 있어 시골로 왔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세를 주고 얻은 집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도록 한다. 단열 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블록 집은 겨울이면 틈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수도가 얼어 물이 안 나오고 인터넷도 수시로 먹통이 되었다. 도시에서는 집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실에서 고쳐줬는데 시골에서는 간단치가 않았다.

그게 출발이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공부하며 헤쳐나갔다. 그러다 작가는 직접 집을 짓기까지 한다. 웬만한 문제는 스스로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된다. 시골살이가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책 <모쪼록, 간결하게>는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시간이 쌓이는 집'은 집을 짓고 집에 딸린 것들을 만들고 설치하며 집과 함께 나이 들어 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2부는 '손이 좋아하는 일'이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가구를 만들고 소품도 만든다. 또 흙을 빚고 옷도 만든다. 3부는 '인생이 담긴 선물'이다. 인생의 한 부분을 뚝 떼어서 서로 주고받는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반가사유상'을 만들며 생긴 일화도 이야기 한다. 흙을 빚어 아기 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 건조되기를 기다리다가 그만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뿔싸, 목이 뚝 부러졌네. 탄식했지만 이미 늦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은 이럴 때 유용하다. '사고'라는 첫 번째 화살은 피하지 못했으나 '후회와 집착'이라는 두 번째 화살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쩔 수 없지.' 아픈 마음을 즉시 돌이켰다. 부러진 목을 일단 밥풀로 붙여 창가에 놓아두었다.

KBS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2021년 7월 1일 방송)를 보고 작가는 충격을 받는다. 우리가 버린 옷들이 가난한 나라로 흘러 들어가 땅과 강, 바다를 뒤덮는다. 아프리카 가나의 오다우 강은 의류 폐기물로 꽉 들어차 쓰레기 강이 된 지 오래다. 산처럼 쌓인 헌 옷더미, 그것을 태우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참혹하기 짝이 없는 지옥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작가는 묻는다.
 반가사유상
ⓒ 김혜형
김혜형 작가는 지난 십수 년간 속옷과 양말 외에는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고 한다. 필요한 옷이 있으면 만들어 입거나 얻은 옷을 수선해 닿도록 입는다. 옷이 일회용품이 된 세상, 어제의 신상이 오늘의 쓰레기가 되는 패스트 패션 시대에 작가는 휩쓸리지 않는다.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이야기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졌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엄마는 재봉틀로 온갖 것을 다 만드셨다. 베갯잇은 물론이고 어린 우리들의 속옷이며 여름 바지 등도 만들어 입혔다.

얼마 전에 친정 남동생이 사진 하나를 보냈다. 엄마의 재봉틀이었다.

"누나야, 이거 생각나제? 다른 건 다 버려도 이건 못 버리겠더라. 엄마가 이거 사고 너무 좋아서 잠자다가도 일어나서 재봉틀을 쓰다듬어 봤다 그러셨잖아."

퇴직을 한 동생은 요즘 시골집을 정리하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정집은 비어 있었다. 오래 비워놓았던 집이라 남아 있는 것 중 쓸만한 건 별로 없다 했다. 장 단지며 다듬잇돌 같은 것은 이미 남의 손을 타서 사라진 지 오래고 남아 있는 것은 다 삭고 헤진 것들뿐이라고 했다.

선물하는 마음
 엄마의 재봉틀
ⓒ 이승일
재봉틀은 용케 남아 있었다. 고물상이 훑고 간 뒤에도 남았으니 우리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더 있나 보다. 발로 페달을 밟는 재봉틀이 아니라 손재봉틀이다. 왼손으로는 천을 잡고 오른손으로 돌리다 보니 박음질이 깨끗하게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재봉틀을 돌돌 돌려 온갖 것을 다 만들었다.

환갑까지도 못 살고 엄마는 돌아가셨다. 복수가 차올라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시면서도 기운이 나면 재봉틀 앞에 앉았다. 혼자 남을 아버지의 속옷을 엄마는 만드셨다. 아버지가 남은 평생 입을 수 있을 만큼 속옷을 많이 만들어 놓고 엄마는 떠나셨다.

작가는 손때가 묻고 마음이 담긴 물건을 좋아한다. 그래서 선물할 때도 텃밭에 자라는 나물을 갈무리해서 보내거나 손수 만든 물건을 챙긴다. '선물에는 물건의 사용 가치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손수 만든 선물은 인생의 일부를 떼어주는 일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손수 농사지은 쌀과 밭작물, 채취한 봄나물들, 톱질해 만든 가구, 흙으로 빚은 도자기, 손수 바느질한 옷과 가방 등,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 만든 것으로 선물 상자를 꾸린다.

그렇게 만든 선물 꾸러미는 마음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한 조각을 떼어주는 마음'으로 선물한다. '마음을 주는 일은 일방적이지 않아서 선물을 받은 이들 역시 인생의 한 조각을 떼어 내어' 작가에게 벅차게 안긴다. '그들이 준 정성스러운 선물은 나(작가)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나(작가)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작가는 말한다.

김혜형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휩쓸려가는 세태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것은 곧 정성 어린 삶이었다. 물건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고 그 존재 이유를 알아주고 살아있는 생명들을 귀히 여기는 따뜻함이었다.

정성 들여 사는 삶을 들여다봤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다 따라 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정성 어린 그 삶의 태도를 선물 받은 마음이다. 나도 따라서 정성 어린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화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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