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교사인 내가 넷플릭스 '참교육' 보고 불편했던 까닭
[송민규 기자]
아이들이 쓰는 '참교육', 내가 배웠던 '참교육'
15년 동안 학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의 언어를 많이 들었다. 교실과 복도에서 아이들은 종종 "참교육해줄까?"라는 말을 쓴다. 친구에게 따끔하게 조언할 때도 쓰고, 장난스럽게 누군가를 놀릴 때도 쓴다. 때로는 몸이 먼저 나가는 상황에서도 그 말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참교육'은 어느 순간 바르게 가르친다는 뜻보다, 누군가를 혼내거나 눌러주는 행위에 가까운 말로 쓰이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나에게 '참교육'은 그런 말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이 말을 들어왔다. 이후 사범대학에 진학해 예비교사로 성장하는 동안, 참교육은 아이들 중심의 교육, 더 나은 학교, 더 인간적인 교실을 향한 말이었다. 교사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그 단어는 꽤 진지한 가치이자 방향이었다.
'참교육'은 본래 가벼운 유행어로 출발한 말이 아니었다. 교육 운동의 역사 속에서 이 말은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 권위적인 학교문화, 학생의 삶을 소외시키는 교육 현실을 바꾸려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이 말해온 참교육 역시 학생의 인권, 교사의 교육적 자율성, 더 나은 학교를 향한 실천을 담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와 평가는 다양하게 갈라졌고, 지금의 교사노조와 전교조, 여러 교원단체들이 놓인 현실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있다. 참교육은 원래 누군가를 응징하는 말로만 쓰이던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사회와 교실에서 쓰이는 '참교육'은 과거의 그것과 많이 달라졌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말보다, 누군가를 망신 주거나 바로잡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며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바로 이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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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참교육> 관련 이미지. |
| ⓒ 넷플릭스 |
실제 학교 현장에서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수업과 생활지도 과정에서 교사의 판단이 쉽게 의심을 받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피하는 방식이 안전한 선택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있다.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자리에서 교사들은 종종 망설인다.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이 지도를 해도 되는지, 학부모 민원으로 번지지는 않을지, 관리자와 기관은 나를 보호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가 보여주는 통쾌함에는 현실의 결핍이 깔려 있다. 학교 현장에서 반복되어 온 답답함이 그 감정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도 함께 남았다. 작품은 교권 회복을 말하지만, 때때로 교권을 학생 인권과 맞서는 말처럼 보이게 만든다. 학부모의 거친 언행은 자녀를 지키려는 절박함으로 설명되지만, 교사의 대응은 권위주의나 폭력의 위험으로 쉽게 읽힌다. 이 비대칭이 작품을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물론 교사의 권한은 언제나 책임과 함께 가야 한다. 교권은 학생을 억누를 권리도, 교사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다. 교권은 교사가 교육활동을 부당한 침해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교사가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학생도 안정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서로를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함께 지켜져야 할 기본 조건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참교육'은 흥미롭지만 위험하다. 통쾌한 장면은 시청자의 마음을 잡아 끌지만, 교육의 언어가 응징의 언어로 흐를 때 학교의 문제는 단순해진다. 현실의 학교는 한 사람을 혼내서 회복되지 않는다. 학교에는 제도와 관계, 신뢰와 책임이 함께 필요하다.
"홀로 견디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장면 앞에서
드라마 5화 마지막에는 교육부 장관의 대국민 방송 장면이 나온다. 그는 교권 침해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선생님들, 그리고 현재에도 고통받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교육부를 대표해 고개 숙여 사과한다. 이어 "교육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고 홀로 견디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드라마적 장면이지만 쉽게 넘기기 어려웠다. 진짜 이런 세상이 오려나, 그러지 않겠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시에 그 말이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리는지도 생각했다.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정당한 교육활동을 지켜주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교사가 교육적 판단을 했을 때 혼자 책임지게 만들지 않는 학교, 사실 확인 전에 교사를 가해자로 세우지 않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장면은 '참교육'이 가진 핵심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때로 더 강한 감독관 한 명이 학교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현실의 학교에 더 절실한 것은 교사가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악성 민원 앞에서 학교와 기관이 함께 대응하는 구조, 교사와 학생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기준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결국 참교육의 의미도 여기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다. 학부모 각자의 참교육, 교사 각자의 참교육, 학생 각자의 참교육이 서로 부딪히는 교실에서 필요한 것은 더 센 응징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의 권리를 지우지 않으면서 교육의 책임을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교사가 안전하게 가르치고 학생이 안정적으로 배우는 일은 같은 방향에 놓여 있다. 교사의 교육활동이 보호될 때 수업은 흔들림을 줄이고, 학생의 권리가 존중될 때 교육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학교는 어느 한쪽을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기준을 세울 때 회복될 수 있다.
넷플릭스 '참교육'은 통쾌한 장면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의미는 통쾌함 이후에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참교육은 누군가를 응징하는 장면보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드라마를 계기로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참교육'을 조금은 비폭력적으로 다시 마음에 담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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