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시 장학금, 전교생 해외 연수... 이 초등학교의 속사정
[이영광 기자]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지역 현안을 꼽으라면 단연 '지역 소멸'이다. 지난 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지역 소멸 관련 공약이 있었지만, 대부분 돔구장 건립이나 대기업 유치 등에 치중돼 있었다.
지난 5월 31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지방 소멸과 지방선거'를 방송했다. 신입생 한 명이 입학한 강원도 정선의 한 초등학교 풍경으로 시작한 이날 방송에서 교통이 불편한 시골을 찾아 주민과 동행하며 대중교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시에 지방선거에 나온 후보들의 공약에서 지역 소멸의 대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해당 회차를 취재한 김정인 기자와 지난 4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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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
| ⓒ MBC |
"지방선거는 원래 해당 지역의 이슈가 의제가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항상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 되거나 유명 정치인이 나선 지역의 선거 구도만 자세히 다뤄지는 거 같았어요. 지역의 이슈 자체가 중심이 되는 선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주제를 잡았어요.
지역 이슈 가운데에서도 지역 소멸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어요. 몇몇 지역에서는 이미 일상생활까지 힘들어진 상황이잖아요. 전문가들을 취재하니 '이미 축소 사회에 접어들었는데 정책은 아직도 성장의 언어로만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더라고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소멸과 지역 불균형 문제를 짚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약이 있는지 점검해 보려 기획했습니다."
- 지역 소멸은 20~30년 전부터 나온 문제 아닌가요?
"맞아요. 굉장히 오랫동안 지역 소멸 얘기가 나왔고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죠. 그런데 정책이 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인터뷰했는데, '인구 감소를 억지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미 이르렀다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 강원도 정선의 남평 초등학교 이야기로 방송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취재하다가 강원도 정선의 한반도 마을에서 20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기사를 봤어요. 인구 소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서 현장을 가봤더니,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반지와 떡을 맞추며 백일잔치를 준비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아이의 형인 시원이는 올해 남평 초등학교에 유일하게 입학한 학생이에요. 시원이 입학으로 그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거죠. 학생들도 입학생이 생겨 너무 좋아하고요. 인구 소멸 현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 첫 이야기로 소개했습니다."
- 남평 초등학교 분위기는 어떤가요?
"되게 좋았어요. 아이들이 적다 보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더라고요. 병아리도 키우고 나중에 계란이 나오면 빵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요. 학교 뒤에 바로 숲이 있어서 숲 체험도 하고, 승마나 골프 같은 것도 가르쳐 주신대요."
- 동문들이 후원 하나 봐요?
"폐교가 되지 않도록 동문회 후원이 많았어요. 학생이 입학할 때 장학금을 주고 전교생의 해외 연수도 매년 지원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매일 오후 4시 20분까지 악기, 영어, 코딩 등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에는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해 다른 초등학교 학생들과 만나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어요."
- 그런데도 폐교 위기를 겪는 건가요.
"동문회 지원과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지금처럼 계속 줄어든다면 폐교 위기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남평초 주변 학교들도 하나둘 폐교되고 있고요. 올해 전국적으로 나 홀로 입학생이 혼자였던 초등학교가 209곳, 입학생을 아예 못 받은 학교가 210곳이나 됐어요. 지난 5년간 통폐합으로 폐교한 초중고도 150여 곳에 이르고요. 학령 인구가 계속 줄면서 지역의 교육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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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
| ⓒ MBC |
"마을에 몇 년 전부터 버스가 아예 끊긴 상황이에요. 다행히 복지 택시가 생겼지만 산내면 내에서만 1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마트나 복지관에 가려면 복지 택시로 일단 산내면사무소까지 나간 뒤 하루 8대 다니는 버스로 갈아타야 했어요. 제가 찾은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이었어요. 청년회장은 62세고요. 직접 차를 모는 분이 절반도 안 되다 보니 주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교통 인프라가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 복지 택지는 왜 집 앞까지 안 오는 거예요? 도시에서 콜택시를 부르면 다 근처까지 오잖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민분들도 집 앞까지 안 와서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을 어귀까지만 온대요. 거기서 타면 산내면 안에서는 이동할 수 있는데, 산내면 안에 마트가 하나밖에 없고 유일한 마트에 가봤더니 고기, 생선, 채소 같은 신선식품은 아예 없었고요. 마트 직원분도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은 가져다 놓기가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신선식품을 사려면 다른 면 소재지까지 힘들게 장을 보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사실 서울에서는 마트가 가까이 있어서 신선식품 사러 가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반나절에서 하루가 걸려야 갈 수 있어요. 어르신들은 단백질 같은 영양 보충이 더 필요한데, 오가는 길이 너무 힘드니까 잘 안 나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영양 섭취 불균형 문제도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어요."
- 인구 감소로 신선식품 상점이 사라진 지역을 식품 사막 지역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리 단위 의 행정구역 73%가 식품 사막 지역에 해당하더라고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에요. 마트가 없어 불편한 걸 넘어 주민들의 건강에도 영양 불균형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농민신문이 2020년에 조사했는데, 전국 행정리 3만 7000여 곳 가운데 소매점이 한 곳도 없는 마을이 2만 7000여 곳으로 73.5%나 됐어요. 저희가 찾아간 전북 정읍은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곳이었는데, 정읍 지역 행정리의 93.3%에 소매점이 없었어요. 섬을 제외하고 차로 1시간 이상 나가야 소매점이 있는 마을도 전국에 14곳이나 된다고 해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읍면 단위 인구가 3000명 이하로 떨어지면 병원·의원·약국 같은 의료 서비스가 사라지고, 2000명 이하로 떨어지면 식당, 미용실, 세탁소, 제과점, 목욕탕까지 없어진대요. 생활 인프라가 줄면서 주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거죠."
"저출생 문제도 있지만 의료 서비스의 지역 불균형 문제가 더 심각한 상황이에요. 저출생으로 인한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부족 문제는 서울에서도 발생하지만, 지역에서는 차원이 다르게 심각해요. 주민들이 아프면 안 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의료 인프라가 무너진 상태거든요. 특히 응급 의료 인프라가 심각한데, 이를 보여주는 게 '치료 가능 사망률'이에요. 제때 치료 받았으면 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사망한 비율인데, 수도권보다 지역이 훨씬 높아요. 저희가 찾아간 충북은 이 수치가 전국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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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
| ⓒ MBC |
"지역을 살리겠다는 공약들은 많았지만 내용을 보면 반도체 공장 유치, 삼성전자 유치 같은 공약이나 돔구장, K팝 아레나 같은 대형 건설 공약이 주를 이뤘어요. 고속도로·철도 확충 공약도 많았고요. 전문가들은 성장 위주의 공약보다 실생활 밀착형 공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의료·돌봄·교육·교통 같은 실생활 공약들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었어요."
- 아무래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좋으니까 그런 걸까요?
"그런 것 같아요. 보여주기 좋고 표를 얻는 데도 유리하니까요. 문제는 돔구장 같은 공약을 굉장히 많은 후보들이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 지역의 인구 규모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하고, 대형 SOC 공약은 현실적으로 이행되기도 어렵잖아요. 지금은 그보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먼저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 지방 의원 경우는 아마 후보 이름조차 모르고 투표하는 사례가 대부분일 것 같거든요. 이것도 문제 아닐까요?
"맞아요. 알려고 해도 정보를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도 있어요. 지역 의회는 지역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지자체를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정작 누가 출마했는지, 공약이 뭔지 알기도 어렵고 무투표 당선도 너무 많아요. 찬반 투표 도입 등 여러 가지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고,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지역 의회가 실질적으로 역할을 한 사례가 있나요?
"부산 사하구를 찾아갔는데, 그 지역에는 출근 전에 문을 여는 어린이 병원이 없었대요. 어떤 시민단체가 주민 서명을 받았는데 3개월 만에 1200명이 서명했어요. 서명지의 한마디 란에 '도와주세요', '아기 낳고 기르기 너무 힘들어요' 같은 말들이 가득했고요. 주민 대회를 통해 정책을 검증하고 구의원들을 설득해서 결국 조례까지 제정했어요. 지역 의회가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 지금이라도 지역 소멸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정책들이 모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고 지적하더라고요. 그런데 주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정책이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바텀업 방식이어야 실질적으로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했어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 방송에 못 담아 아쉬운 내용이 있나요.
"청년들이 왜 지역을 떠나는지, 떠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자세히 다루지 못한 게 아쉬워요. 강원도 원주와 청주의 청년 활동가를 만났는데 지역을 사랑하는 분들이었어요. 일자리, 교통, 교육, 의료 같은 생활 인프라도 필요하지만 청년들이 오래 지역에 살 수 있으려면 '커뮤니티' 형성이 중요하다고 해요. 지자체가 지역 소멸 대응 정책을 펼 때도 커뮤니티 형성 지원이 많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지역을 살릴 좋은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하셨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도 취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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