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에어컨 실외기 뒤를 봤다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이혜연 2026. 6. 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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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이런 집은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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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연 기자]

우리 집은 새가 자주 날아온다. 베란다 창가에 수시로 날아와 앉기도 하고, 아침마다 새소리가 들리니, 숲 속에 사는 것처럼 참 낭만적이다. 기분 좋은 소리에 일어나며 시도 지어본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 주는 듯한 노랫소리에 '창가에 걸린 안부'라는 시도 지었다.

어느 날은 실외기에 앉아 있던 새가 부리로 에어컨 배관 마감 테이프를 뜯기 시작한다. '집을 지으려고 하나? 저걸 쫓아내야 하나? 그래 아침마다 예쁜 새소리를 들려주는 값으로 좀 뜯어가라.' 하고 그냥 바라보았다.

검지손가락 크기만큼 뜯어 날아가려다가 테이프를 뱉어낸다. 그러더니 다시 뜯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손바닥 크기만큼이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기 싫었나 보다. 욕심쟁이랄까, 머리가 비상하달까? 그래, 한번 하면 확실하게 해야지. 잘했다.

그리고 기사님을 불러 배관 마감을 다시 했다. 새들 인테리어 비용으로 내 돈 몇만 원이 날아갔다.
그런 후에도 계속 찾아왔지만 집을 다 지은 건지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다행히 새로 감은 건 뜯어가지 않고 부지런히 왔다 갔다만 한다.

그러다 우연히 실외기 뒤쪽을 보았는데, 정말 기절할 만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 집념의 건축 벽과 실외기 사이에 새가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
ⓒ 이혜연
실외기 뒤쪽에 새들이 물어다 놓은 어마어마한 양의 나뭇가지가 쌓여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노래값으로 건축비용을 줬는데. 근데 또 무단으로 집을 짓고 있네. 그것도 실외기 뒤쪽과 벽사이에.

창문 아래 설치된 실외기에서 나뭇가지를 꺼내려니 도저히 집에 있는 집게로는 아랫부분까지 치울 수가 없다. 관리실에 전화해서 청소용 긴 집게를 빌렸다.

시설관리원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어요?"
"아우, 그냥 동그랗게 지어놓은 건 봤어도 이렇게 많이 물어다 놓은 건 저도 처음 보네요."
"만약 여기 알이나 아기새가 있으면 어떻게 해요."
"그럴 때는 119를 불러야 돼요"

이게 새들이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 양이다. 실외기 가로길이를 꽉 채우고 높이는 1/2까지.

새둥지 모양으로 동그랗게 만드는 건 많이 봤지만 저렇게 어마어마한 양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은 건 생전 처음 본다.
▲ 새가 남긴 건축 자재 새가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 양이 어마어마하다.
ⓒ 이혜연
대체 어떤 새가 저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짓는지 궁금해서 AI에게 물었다.
까치 부부는 보통 집 한 채를 짓는 데 약 2주에서 3주(14일~20일)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실외기 뒤쪽은 이미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명당이라, 까치들이 기초 공사 시간을 엄청나게 아꼈을 것입니다. 벽이라는 단단한 뼈대가 있으니 나뭇가지만 툭툭 쌓으면 돼서, 체감상 단 일주일(5~7일) 만에 그 엄청난 양을 다 쌓아 올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참으로 집념의 건축가다. 나는 창가에서 노래하는 낭만이라 불렀거늘, 뒤에서는 돔 형태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들고 일필휘지로 시를 써 내려간 내가 한심해지는 순간이다.

더워지는 날씨에 에어컨을 켰다가, 뒤쪽을 막고 있는 나뭇가지에 열기가 미쳐 빠져나가지 못하고, 불이라도 붙었다간 알이고 새끼고 어미고 모두 죽는 거고, 우리 집은 불이 나는 거였다. 아찔하다.

하루에 한 번씩 실외기 점검을 한다. 버릇처럼. 또 나뭇가지를 물어다 놓지는 않았는지.
더위가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혹시 우리 집에도 새가 집을 지어 놓았는지, 실외기 주변을 확인하시고 건강하고 시원하게 여름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써 본다.

미리미리 점검해서 새도 살고 나도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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