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산재 상담 뒤에는 성차별적 노동환경이 있다
여성노동자회의 여성노동전문상담실인 <평등의전화>는 매년 상담사례를 분석,발간하고 있다.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들은 6월 한 달 동안, 2025년에 접수된 상담 사례를 분석해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연재는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총 다섯 편에 걸쳐 게재되며, 상담 현장에서 포착한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성차별의 실태를 드러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기자말>
[바다]
'산업재해 및 사회보험' 상담이 가장 많아
|
|
| ▲ 출처: 2025년도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 |
| ⓒ 한국여성노동자회 |
다음을 위한 실업급여,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 시 수급 쉽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받는 임금은 일상을 유지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임금은 노동자가 생계와 일자리를 유지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발생으로 노동안전권이 흔들릴 때 퇴사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 "피해를 드러냈을 때, 회사와 행위자가 어떻게 나올지 가늠이 안 된다".
내담자들은 우선 연차를 사용하며, 상담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신고 시 사업주가 취해야 할 법적 의무와 절차가 있고, 필요시 유급휴가를 부여하게 되어 있지만, 휴가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작은 사업장일 경우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무급일 경우가 많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되기 전 안정적 유급휴가는 사업주의 선의를 기대해야 한다.
다행히 절차대로 이루어져 행위자가 징계받더라도 직장을 다니는 동안 마주칠 수 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견디기 어려운 회사생활을 감내하거나,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받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과 시간을 겪다가 실업급여 상담을 하기에 이른다.
A씨는 대표이사의 일상적 성희롱으로 공황증세가 왔다. 병가를 내고 노동청 진정을 넣었다. 노동청에서는 회사 자체 조사로 돌려보냈고, 아픈 와중에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내 조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은 불인정 되었다. 노동청에서는 간접 증거 말고 직접 증거를 요구하였다.
A씨에게 증거불충분으로 인정되지 않는 성희롱보다 더 무서운 건 생계의 막막함이었다.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몸을 추스를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되려면 고용노동부 진정 결과나 회사 내부의 조사보고서, 징계 결과 등이 있어야 확실하다. 또는 회사에 신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거나 도저히 근로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임을 보여야 한다.
실업급여는 실직 시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최소한의 수준에서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고 있어 어쩌면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보험일 것이다. 실업급여는 자발적 퇴사의 경우 원칙적으로 수급이 제한된다.
그러나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별표2'는 수급 자격이 제한되지 않는 정당한 이직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성희롱ㆍ성폭력 그 밖의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도 포함된다. 평등의전화 상담을 통해 드러난 현실을 여성노동자회에서 주장하여 이직 사유 코드에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를 명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는 구체적 사유 적기를 꺼려하여 이직확인서 발급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직접적 증거 요구하는 현실, 노동안전권 침해
A씨는 당연히 인정받을 거라 여겼던 성희롱 인정은 직접적 증거 요구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없었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단둘이 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청 진정 시 직접적 증거가 없더라도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 가까운 주변인과 동료에 고통을 호소한 문자나 진술, 병원 진료 등을 근거로 폭넓게 인정해 왔다. 그러나 형사사건의 증거주의와 같이 노동청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의 직접적 증거를 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경향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에 대비하고 증거를 잡기 위해 피해자 더러 위험을 자초하라는 소리와 똑같다.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안전하게 근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다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반복된다. 노동부는 사업주의 의무강화와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직장 내 성희롱 규율의 취지를 살려 폭넓게 직장 내 성희롱을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피해자는 억울함을 계속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될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 산업재해 인정되지만, 신청조차 하기 어려운 문제 더 커
실업급여는 구직활동을 전제로 받을 수 있는데, 피해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피해가 인정되었다손 치더라도 피해 회복을 통한 일상적인 생활을 찾기까지 오래 걸린다. 많은 피해자가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적응장애, 불면증 등 정신적 질환을 겪고 있고, 정신과 약을 먹거나 심리상담을 상당 기간 병행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모두를 위한 산업안전보건: 표준을 넘어'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정신질환 산재 비중은 남성보다 4배나 크다고 한다.
B씨는 사내 불법 촬영 신고로 피해자 진술을 한 뒤 사무실에서 위축된 마음이 들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올라왔다. 집에서도 영상 속 장면이 떠올라 잠들기 힘들었고, 잠이 드는 순간에도 사건 장면이, 가해자가, 회사 사람들이 꿈에 나오는 등 괴롭고 두려워 결국 퇴사했다.
B씨는 나도 모르는 사이 겪은 불법 촬영 피해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치료받으며 산재 신청 도움을 받으려고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정신적 질환으로 일상을 이어가기 힘든 피해자는 절차의 복잡함과 긴 소요 시간 등으로 산재 신청을 혼자서 해나가기가 쉽지 않다.
성희롱으로 인한 산재는 '인정이 안 되는 문제' 이전에 '신청조차 하기 어려운 문제'가 더 크다. 성희롱은 명백한 노동재해로, 행위자에 대한 징계 여부와 별개로,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받고 있다면,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 회사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노동자가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본 노동자 중 상당수는 산재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한 채 퇴사하거나 치료만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제도상으로는 산재 신청이 가능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이를 활용하기까지 신청 절차와 소요 시간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법 재해인정 기준항목 중 업무상 질병에 '직장 내 성희롱으로 발생한 정신적 질환'이란 명시는 없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과 그 밖의 업무와 관련한 질병'으로만 명시되어 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자 상당수가 정신과 질환으로 치료받다 생계의 문제로 퇴사를 고려하는 현실에서 산재보험법 업무상 질병 적용 명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성차별적 근로환경에 대한 구조적 대응 필요
실업급여, 산업재해, 근로조건 관련 상담의 이면에는 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에서 겪는 성희롱과 성차별적 괴롭힘이 주요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근로조건의 문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여성노동자는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인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그 결과 퇴사를 강요받고, 생계를 위협받고, 정신적 건강을 잃고, 경력단절을 겪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퇴사로 가장된 퇴직에 대한 실업급여 인정, 괴롭힘처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구체적 명시와 산업재해 승인 확대, 복직권 확대 등 노동권 보장 확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근로조건 문제로 가시화된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는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권 자체를 박탈당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바다는 지역 여성노동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등의전화: 여성노동전문상담실 여성노동자회는 전국 11개 지역의 평등의전화에서는 근로조건,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모성권 침해, 직장 내 괴롭힘 등 여성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번호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서 전화를 해도 가장 가까운 지역 상담실로 연결되어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대표번호) 1670-1611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대통령 "대체불가 대한민국 시작...혁신적 실용정부 만들 것"
- 삼성마저 돈으로 압도했던 팀인데, 공짜 매물로...팬들의 처절한 생존기
- 이화영의 아내 백정화입니다, 이제 남편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 가슴엔 태극기, 팔엔 미군 계급장? 국군 복장 엉터리 묘사한 서울시
- '2500년 전 바닷길을 열다' 지중해 발효의 기원
- '재선거', 조희대 대법원에 달렸다?
- 중국 '넥스트 AI', 미래경제의 놀라운 설계도
- [오마이포토2026] 국힘,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조 요구서 제출
- "정치색 떠나 참정권 문제" 옆에선 "중국과 짜고 친 선거"... 혼돈의 올림픽공원
- 이스라엘, 트럼프 무시하고 이란에 보복 공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