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고, 깎고, 지워지는 여성노동, 성별임금격차는 차별의 결과다

한국여성노동자회 2026. 6. 8. 11: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6 임금차별타파주간 연속기고 ⑤] 경남 여성노동자들이 말하는 임금차별의 현실과 선거 이후 지방정부의 책임

[한국여성노동자회]

12개 여성노동자회와 11개 전국여성노동조합 지부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며 활동을 이어온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지난 10년 동안 여성노동자들은 '임금차별타파주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별임금격차가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동을 구조적으로 낮게 평가해온 차별의 결과임을 알려왔다.

올해도 여성노동자들은 다시 물었다. 왜 여성의 노동은 계속 쪼개지고, 깎이고, 지워지는가. 왜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노동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묶이는가. 왜 돌봄, 서비스, 단시간 노동, 비정규직 노동, 프리랜서 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이름으로 저평가되는가.
 10차 여성비정규직 임금차별타파주간 기자회견
ⓒ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박미영 부대표는 여는 발언에서 전국 성별임금격차 지도를 들어 보이며 경남의 현실을 짚었다. 남성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경남 여성의 임금 수준은 62에 그쳤다. 울산과 전남이 58, 대구가 61인 것과 함께 경남 역시 심각한 성별임금격차 지역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상권 전반이 여성노동 저평가와 성별임금격차의 심각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 부대표는 선거사무원 일자리의 사례를 언급했다. 한 블로그에는 선거사무원이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고, 현장 스케줄에 따라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에 집중적으로 근무하며, 낮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는 쪼개기 근무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산재보험 가입 의무 규정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었다. 댓글에는 실제 선거사무원으로 일하는 당사자가 "14시간을 묶여 있다 보니 가 있을 데도 마땅치 않아 힘들다"는 경험을 남기기도 했다.

이 사례는 여성 일자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노동자는 하루 전체를 일에 맞춰 살아가지만, 임금은 실제로 묶여 있는 시간 전체를 반영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은 쪼개지고, 대기시간은 지워지고, 노동자의 하루는 사용자의 필요에 맞춰 배치된다. 그러나 그 책임은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이러한 방식의 노동은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단시간·비정규·서비스 노동 현장에서 익숙하게 반복된다.
박 부대표는 "남성 임금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100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100 미만을 받는 유급·무급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고임금 노동의 뒤에는 저임금 노동이 있고, 안정적인 노동의 뒤에는 불안정 노동이 있으며, 유급노동의 뒤에는 제대로 계산되지 않는 무급·저임금 여성노동이 있다. 쪼개기 노동, 저임금 노동, 근로계약서 없는 노동, 4대보험 없는 노동이 바로 이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성별임금격차는 여성노동을 낮게 평가해도 된다는 사회적 관행, 여성노동자는 언제든 값싸게 쓰고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 돌봄과 서비스 노동을 '여성이 원래 하는 일'로 취급하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은 여성노동의 이름으로 박제화되었고, 한국 사회는 이를 차별로 인식하는 데조차 여전히 더디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거리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여성이 폭행당하고, 여성혐오 범죄와 교제살인이 이어지는 사회에서 노동현장 역시 안전한 공간일 수 없다. 출근한 여성노동자는 성희롱과 성폭력, 성차별적 조직문화에 노출된다. 임금에서는 성별에 따라 생존권이 쪼개지고, 깎이고, 지워진다. 여성의 노동은 일터 안팎에서 동시에 공격받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비중이 높은 상위 업종과 직종을 살펴보면 성별 분리 현상은 뚜렷하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업종과 직종에 집중되고, 여성은 돌봄, 서비스, 조리, 단순노무 등 낮게 평가되는 일자리에 집중된다. 그러나 문제는 업종과 직종의 차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일한 업종과 직종 안에서도 남성, 경력단절이 없는 여성,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 순으로 임금이 낮아지는 패턴이 확인된다. 업종·직종 분리와 직종 내부의 임금격차가 중첩되며 여성의 임금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경력단절은 여성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핵심적인 구조로 작동한다. 경력단절은 개인의 선택이나 공백이 아니라,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사회구조의 결과다. 육아와 가족돌봄이 특정 성별에게 전가되고, 돌봄을 수행한 경험이 노동시장에서 불이익으로 되돌아온다. 여성이 돌봄을 맡았다는 이유로 경력이 끊기고, 경력이 끊겼다는 이유로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밀려나는 구조가 반복된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저임금·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어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심각하다.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근로계약서가 없고, 4대보험이 없고, 임금체불이 반복되는 일터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권리 밖으로 밀려난다. 여기에 AI 확산과 산업 변화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게 집중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생애주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청년 여성노동자가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부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다시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양질의 일자리와 직업훈련, 사회보장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돌봄의 사회적 분담과 경력단절 예방, 성별임금격차 해소는 따로 떨어진 과제가 아니다.
 10차 여성비정규직 임금차별타파주간 기자회견
ⓒ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6.3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성별임금격차 해소의 과제는 끝나지 않았다. 경남의 성별임금격차는 새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과제다. 선거 과정에서 평등과 민생을 말했던 정치라면, 이제는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을 해결할 구체적인 정책으로 답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지역 여성노동의 실태를 조사하고, 여성집중직종의 저임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성별임금격차를 점검하고, 성별임금공시와 성평등 노동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단시간·비정규·특수고용 여성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돌봄과 서비스 노동을 필수노동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임금과 처우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일한 만큼 인정받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돌봄과 경력단절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쪼개고, 깎고, 지워지는 노동으로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묶어두고, 돌봄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여성노동자를 방치하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성별임금격차는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차별의 결과다. 그리고 차별이라면,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여성노동자의 삶은 계속된다. 이제 정치가, 새 지방정부가, 지역사회가 답해야 한다. 여성노동을 더 이상 값싸고 불안정한 노동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실질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혐오와 배제,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과 생존권을 지킬 수 있도록, 성평등 노동을 실현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