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북, 우정 아닌 견제”… 북한 놓칠 수 없는 중국의 셈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러시아 쪽으로 빠르게 기우는 북한을 다시 중국의 영향권 안에 묶어두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이 ‘우정의 복원’이라기보다 불신 속에서도 서로를 놓칠 수 없는 양측 계산이 맞물린 장면이라는 평가다.
영국 BBC방송은 8일 시 주석의 방북 배경을 짚은 기사에서 시 주석에게 북한은 ‘통제할 수도, 잃을 수도 없는 이웃’이라고 평가했다.
BBC는 “중국은 국경 지역의 안정과 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원하지만 북한의 핵 야망이 촉발하는 위기에 끌려 들어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며 “시 주석의 방문은 우정보다는 지렛대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방송은 중국과 북한이 그동안 한국전쟁을 앞세워 ‘혈맹’을 강조해왔지만 최근 몇 년간 양국 사이에 불신이 쌓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이 특히 의식하는 변수는 북러 밀착이다. BBC는 서방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에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마주하는 것은 김 위원장을 중국의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두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북중 관계 냉각은 지난해부터 뚜렷했다. 2024년 10월 북·중 수교 75주년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그 전 달 열린 북한 정권 수립 기념행사에도 중국 대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급 교류도 뜸했다.
북한은 중국의 빈 자리를 러시아로 채우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BBC는 자체 조사 결과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전에 투입됐다 숨진 북한군이 약 23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탄약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석유와 원조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불편한 흐름이다. BBC는 “중국이 맺은 공식 방위조약은 북한과의 조약이 유일하다”며 러시아가 평양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갖는 상황을 베이징이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핵정책 전문가는 BBC에 “중국은 모스크바와 평양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시점에 북한과 관련한 자국의 이익이 보호되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성현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방문학자는 BBC에 중국이 북러 밀착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중국의 속내가 단순하지 않다는 의미다.
북러 협력이 워싱턴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미국의 전략을 여러 전장에서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은 중국에 간접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이 확대되면 한국·미국·일본의 3각 군사 대응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이는 베이징이 우려할 만한 흐름이다.
중국이 북한 핵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 핵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는 미국의 역내 개입을 키우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시 주석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담화를 통해 ‘핵 보유국 지위 포기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북중 정삼회담에서 비핵화는 의제가 아니라고 미리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북한을 정면으로 압박하는 것은 아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외교정책 부문 회장은 중국이 “북한 핵 프로그램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 북한을 푸틴의 품으로 더 밀어 넣을 뿐”이라고 BBC에 말했다.
김 위원장에게도 중국은 여전히 필요한 상대다. 지난해 중국의 대북 수출은 약 23억 달러(약 3조5700억원)로 늘어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베이징과 평양을 잇는 여객열차 운행도 올해 초 6년 만에 재개됐다.
김 위원장으로서도 러시아에만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BBC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가 북한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고립된 푸틴 대통령과 달리 시 주석은 세계 정상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김 위원장에게 중국과의 관계 복원은 실용적 선택인 셈이다.
북·중 관계는 김정은 집권 초기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BBC는 김 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다른 우선순위를 갖고 있었다고 해석했다.
김정일 전 위원장은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며 베이징의 지원에 의존했지만 아들 김 위원장은 집권 직후 핵·미사일 개발을 빠르게 밀어붙였다. 김 위원장이 집권 첫 6년간 지휘한 탄도미사일 시험은 약 90차례, 핵실험은 4차례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BBC는 지적했다.
2013년 장성택 처형도 북·중 관계를 악화시킨 계기였다. 중국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북한 내부의 안정적 인물로 봤다. 그는 김일성 전 위원장의 사위이자 김 위원장의 고모부였다.
시 주석은 2014년 김 위원장을 만나기 전 먼저 한국을 방문했다. BBC는 이를 북한에 대한 외교적 불쾌감 표시로 해석했다. 북한도 중국에 대해 “변절자이자 우리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관계가 다시 움직인 것은 2018년이다. 핵 개발에 따른 제재 압박이 커지자 김 위원장은 방탄열차를 타고 베이징을 찾았다. 이후 미국·한국 정상과 만났지만 주요 외교 일정 전후로 중국과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양이 베이징의 뒷받침 없이 협상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중국에 북한은 완충지대이자 부담이다. 북한은 미군을 중국 국경에서 떨어뜨려 놓는 역할을 하지만 핵·미사일 시험으로 동북아 정세를 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보호를 원하지만 통제는 원하지 않는다. 중국도 북한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BBC는 “양측 모두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믿고 있다”며 “그것만으로도 양측이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충분하다”고 해설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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