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넥스트 AI', 미래경제의 놀라운 설계도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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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넥스트 AI'를 준비하는 5대 산업 - 양자컴퓨팅, 저공경제, 수소에너지, 상업우주, 바이오제약. |
| ⓒ 차이나벤처닷컴 |
2026년 6월 첫 주에 올라온 중국의 신규 사모펀드를 분석해 봅니다. 단 일주일 사이에 20개 이상의 신규 사모펀드가 등록됐습니다. 1000만 위안(약 22억 원)짜리 소규모 펀드부터 39.4억 위안(약 8786억 원)짜리 대형 펀드까지. 양자컴퓨팅에서 수소에너지, 저공경제(Low-altitude Economy), 센서, 도시재생까지 섹터도 천차만별입니다. 얼핏 보면 여전히 무질서합니다. 그런데 이 펀드들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설계도가 펼쳐집니다.
펀드 구조의 치밀함, 출자자 구성의 전략성, 투자 의무 조항의 정교함. 이것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이 놀랍습니다. 무질서해 보이는 겉모습 안에 상당히 정밀한 국가 산업 설계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벤처캐피털 투자는 국가가 설계한 밭에 자본이 씨앗을 고르는 과정입니다.
정부 투자 규제의 진화 —얼마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를 지휘한다
이번 주 가장 주목할 펀드는 중전정보자산창업투자기금(中电信量子产业创业投资基金)입니다. 발기인은 국둔양자(Origin Quantum, 国盾量子). 총 약정출자액 15억 위안(약 3345억 원). 현재 중국 내 최대 규모의 양자 특화 펀드입니다. 그런데 이 펀드에는 두 가지 의무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첫째, 시리즈A 이전 단계 투자 건수를 전체의 50% 이상, 금액을 30% 이상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국영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거나 못하는 외부 기업들에게 투자 건수를 50% 이상, 금액을 3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투자 건수 50% 이상 시리즈A 이전'이라는 의무 조항은 될성부른 씨앗을 고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설계하고 강제하는 주체가 국무원입니다. 국무원은 한국의 기획재정부·산업부·국무조정실이 합쳐진 중국의 최고 행정기관입니다. 이 기관이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구조적으로 방향을 설정해 주고 있습니다. '체계 내 안전한 프로젝트'로 자금이 몰리는 고질적 문제도 제도 설계로 차단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청두(成都) 미래산업 펀드 서명식에 '청렴 협력 이니셔티브'가 별도 세션으로 등장한 사실도 주목할만 합니다. 국가 유도 자본이 권력형 자원 배분 통로가 되지 않도록 자정하려는 의식이 제도 언어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국가 자본은 지금 '얼마를 모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양자·저공경제·우주항공·녹색에너지 — 국가가 다음 판을 짜고 있다
이번 주 신규 펀드들의 투자 방향을 한 줄로 나열하면 중국 국가 산업 설계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양자컴퓨팅 15억 위안(약 3345억 원), 수소에너지 5억 위안(약 1115억 원), 저공경제·상업항공우주 10억 위안(약 2230억 원) 외 다수, 리튬전지 산업 체인 16억 위안(약 3568억 원), 신에너지 12.25억 위안(약 2732억 원), 집적회로·반도체 39.4억 위안(약 8786억 원).
AI와 반도체 투자는 계속 이어갑니다. 그런데 이번 주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그 다음 층위입니다. 양자컴퓨팅, 수소에너지, 저공경제(Low-altitude Economy), 상업항공우주(Commercial Space), 우주항공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청두 미래산업 펀드 하나만 봐도 인공지능·저공경제·바이오의약·상업항공우주 네 축이 동시에 명시돼 있습니다. 안후이 AIC(금융자산투자회사) 기금도 항공우주·저공경제를 전략적 신흥 산업 투자 축으로 명기했습니다.
이것은 개별 기업의 판단이 아닌 국무원이 지정한 전략적 신흥 산업 목록이 민간 자본 흐름에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입니다. 3~5년 후 한국 기업들이 맞닥뜨릴 중국 경쟁자들은 지금 이 펀드들이 조기에 뿌린 씨앗에서 자라납니다.
청통테크투자펀드 LP 참여 — 양자산업의 국가 신용 보증 기제
이번 양자특화펀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출자자는 최대 출자자 텔레콤인베스트먼트(Telecom Investment, 电信投资, 49%)가 아닙니다. 16.67%를 공동 출자한 청통테크투자펀드(Chentong Kechuang Investment Fund, 诚通科创投资基金)입니다.
이 펀드는 국무원 국가자산위원회가 리드하고 차이나청통(China Chentong, 中国诚通)이 설립한 중앙기업 창업투자 모펀드입니다. 이 기금이 LP(유한책임출자자)로 들어왔다는 것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닌 국가 신용을 해당 섹터에 직접 부여한 것입니다. 이후 민간 자본 유입이 수월해지고, 규제 우호성이 높아지며, 정부 조달 연계에서 구조적 우위가 생깁니다.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이 우위가 실질적 경쟁력입니다.
중국에서 어떤 섹터가 '정말로' 국가 핵심 의제인지를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바로 이런 중앙기업 모펀드의 LP 참여 여부입니다. 양자컴퓨팅은 이미 그 시험지를 통과했습니다.
돈 번 대기업들의 자본을 초기 스타트업으로 다시 뿌린다 — 기업 자본의 부상
이번 주 펀드들의 공통점은 LP가 순수 금융기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촨넝파워(Chuanneng Power, 川能动力), 진즈테크놀로지(Jinzhi Technology, 金智科技), CALB(CALB, 中创新航), TCL테크놀로지(TCL Technology, TCL科技), 바이헬스(By-Health, 汤臣倍健), 토치일렉트로닉스(Torch Electronics, 火炬电子)가 모두 각 분야의 대표 기업들이 LP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이미 해당 산업에서 돈을 번 기업들입니다. 토치일렉트로닉스는 2025년 매출 41.21억 위안(약 9190억 원), 전년 대비 47% 성장. CALB는 리튬전지 시장에서 확보한 자본을 산업 체인 전방위로 재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초기 스타트업 펀드의 LP로 들어온다는 것은 단순한 재무적 다각화가 아닙니다. 번 돈을 다시 될 성부른 씨앗으로 심는 과정입니다.
산업 생태계가 자기 복제를 시작한 것입니다. 대기업의 성공이 다음 세대 스타트업의 자본이 되고, 그 스타트업이 다시 산업 체인을 강화합니다. 중국 산업 자본이 VC(벤처캐피털)를 R&D와 M&A의 확장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구조 변화입니다.
전략적 LP(Strategic LP)의 부상. 산업 정책과 민간 자본이 LP 구조 안에서 하나의 의사결정 단위로 통합되는 과정입니다. 금융과 산업의 경계가 펀드 안에서 지워지고 있습니다. 소규모 펀드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풍경은 실제로는 중앙이 짜놓은 판 위에서 지방과 산업 자본이 역할을 분배받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농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농부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클 수 없는 이유
한국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6년 창업·스타트업 지원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정부는 'Again 벤처붐'을 슬로건으로 AI,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등 딥테크 분야에 16.5조 원을 투입하고, 벤처투자 규제를 완화하며, 모태펀드 존속기간도 연장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막대한 자금이 움직이는 구조를 다시 치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스타트업 지원 체계는 여전히 정부가 씨앗을 고릅니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모태펀드. 심사위원단이 사업계획서를 평가하고,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기업을 선정합니다. 이 구조의 본질적 한계는 하나입니다. 정부는 산업 현장을 모릅니다.
진짜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은 서류로 발굴되지 않습니다. 산업 체인 안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뛰어온 전문가들만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 실제 공급망에 끼어들 수 있는지, 어느 스타트업이 기존 체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의 산업자본이지 정부 심사위원이 아닙니다.
중국의 양자 펀드가 보여주는 구조는 이것입니다. 토치일렉트로닉스, CALB, TCL테크놀로지 같은 산업 기업들이 LP로 직접 참여해 씨앗을 고릅니다. 이들은 투자한 스타트업을 자신의 산업 체인으로 즉시 끌어올릴 수 있는 주체입니다. 투자와 동시에 고객이 되고, 파트너가 되고, 양산 경로가 열립니다. 정부 지원금으로는 만들 수 없는 연결입니다.
우리가 중국식 자본시장 생태계를 따라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지만 중요한 인사이트는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 성장 산업 지원 예산 확대와 동시에 산업 현장의 전문가들이 이제껏 수혜를 받지 못한 진짜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선별하고, 직접 투자하며, 자신의 산업 체인으로 바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기술이 아닙니다. 화려한 대기업이 기꺼이 농부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입니다. 국가가 밭을 설계하고, 산업 자본이 씨앗을 고르고, 시장이 수확합니다. 씨앗을 고르는 손이 현장을 아는 손이어야 한다는 것. 이 구조가 매주 한 겹씩 완성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임선영 씨는 중국 칭화대 전산언어학 석사를 마친 중국경제전문가이며 <중국경제 미래지도>, <중국AI 미래지도>(출간 예정)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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