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을 그렇게 줬는데, 여섯달만에 또 나가?" 정책자금 확대가 낳은 진풍경
지원자 늘었지만 '바로 일할 사람'은 부족
'높은 연봉만 보고 잦은 이직' 경계감 높아져
정책자금 확대와 벤처투자 시장 회복 기대가 맞물리면서 벤처캐피털(VC) 인력 채용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신규 펀드 결성 기대는 커졌지만, 실제 투자 집행과 포트폴리오 관리를 맡을 즉시전력 인력(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부족해지면서 투자 경험을 갖춘 경력 심사역의 몸값도 오르는 분위기다.
"정책자금 풀린다" 기대에 채용시장 꿈틀

8일 VC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정책자금 확대와 민간 투자 회복 기대가 커지면서 심사역 채용 시장도 함께 들썩이고 있다. 펀드 결성 여건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자, 실제 투자 집행을 맡을 경력 인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벤처투자는 3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1% 증가했다. 태윤선 KB증권 연구원은 "2022년 1분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며 "지난해부터 벤처투자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 완연한 성장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 VC 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정책자금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지금은 투자 관련 인력이 엄청 귀한 상황"이라며 "펀드 결성을 하려 해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투자 레코드가 조금만 있어도 몸값이 확실히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 심사역 경력 채용에 나선 국내 VC A사의 임원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서류 접수를 했는데 예상보다 지원자가 많아 놀랐다. 이직 자체가 전반적으로 활발해진 것 같다"며 "조금만 경력을 쌓고 투자 레코드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연봉을 올려주는 방향으로 이직 제안을 받는 경우가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정책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면 VC들은 신규 펀드를 결성하고, 이후 수년에 걸쳐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 집행, 포트폴리오 관리에 나선다. 문제는 펀드 결성이 곧바로 투자 역량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 투자 대상을 찾고, 기업을 검토하고, 투자 이후 창업팀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낼 심사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최근 분위기를 2020년대 초반 벤처투자 호황기와 비교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투자 인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려는 운용사가 많았고, 특정 분야 투자 경험을 갖춘 심사역에게 제안이 몰렸다. 최근에도 인공지능(AI), 데이터, 반도체, 디지털 헬스케어 등 기술 이해도가 요구되는 분야에서 투자 경험을 갖춘 인력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A사 임원은 "3~4년 전처럼 투자 경험을 갖춘 심사역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다시 나타나는 것 같다"며 "특히 정책자금 기반 펀드를 많이 운용하는 하우스일수록 투자 집행 속도를 맞추기 위해 경험 있는 심사역을 영입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VC B사의 6년차 심사역은 "돈은 생기는데 즉시 전력으로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심사역 몸값이 높아지는 분위기"라며 "심사역들 사이에선 확실히 이직을 해야 연봉도 많이 오른다는 공감대도 있다"고 전했다. 지원자 수는 늘었지만, 실제 투자 검토와 집행, 포트폴리오 관리까지 맡을 수 있는 인력은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인력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운용사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심사역 입장에서는 시장 회복기에 더 나은 보상과 직급을 제안받을 수 있지만, 운용사 입장에서는 잦은 이직이 투자 연속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는 투자 검토부터 집행, 후속 투자, 회수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심사역이 짧은 주기로 회사를 옮기면 포트폴리오 기업 관리와 투자 책임 소재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사 임원은 "조금만 경력을 쌓고 연봉을 올리기 위해 옮기는 사람도 분명 늘었다"며 "딜 클로징부터 사후관리까지 한 사이클을 온전히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잦은 이직을 반복하면 투자 철학이나 책임감 측면에서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6개월 단위로 회사를 옮기는 지원자들도 있다"며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진정성과 커리어 방향성을 더 중요하게 보자는 논의도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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