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2018년의 압승, 2026년의 경고

이재명 정부의 선거 캘린더는 문재인 정부와 비슷하다. 취임 후 1년 안팎에 지방선거를 치르고, 3년 즈음 총선을 맞는 일정이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이 대선 주기를 바꿔놓은 탓이다. 묘하게 닮은 정치 시계는 두 진보 정권의 비교를 피하기 어렵게 한다.
■
「 두 차례 탄핵 학습한 중도 유권자
지나친 권력 쏠림의 부작용 우려
공소취소 무리수에 강력한 제동
」
시간을 8년 전으로 돌려 보자. 문재인 정부 출범 1년1개월 만에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7곳 중 14곳을 휩쓰는 기록적 압승을 거뒀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 2석만 겨우 건졌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중앙정치와 거리두기를 선언한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의 재선 성공이 이변이라면 이변이었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박원순 시장의 3선에 성공했고, 구청장 선거에선 강남과 송파마저 휩쓸며 서초구를 제외한 24개 자치구를 석권했다. 임기 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남북 화해 기대, 야당의 분열 등이 겹친 결과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적폐 청산’ 프레임을 가동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 6·3 지방선거 역시 초반에는 광역단체장 15 대 1 승리까지 예상될 정도로 여권에 유리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기대했던 대구는 생각보다 큰 차로 패배했고, 경남도 내줬다. 무엇보다 핵심 ‘명픽’으로 꼽히던 정원오와 하정우(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패배는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두 번째 탄핵을 경험한 유권자들의 학습효과가 작용했다. 한쪽에 지나치게 힘을 몰아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대 퇴행적 야당을 꾸짖되 여당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는 남겨두겠다는 ‘비판적 지지’의 민심이다.
여당은 구태의연한 내란 극복 프레임 외에 이렇다 할 국정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만하고 안일했다. 대통령 공소취소 특검 추진이나 스타벅스 마케팅 실수에 대한 과도한 공세 역시 중도층의 피로감을 키웠다. 이 대통령은 선거 전날 국무회의에서 검찰을 향해 “잘못이 있다면 고쳐라”고 말하며 자신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한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2028년 총선으로 향한다. 사실상 2030년 대선의 전초전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정국 속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의 수퍼 여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와 부동산 실패가 겹치며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민심이 돌아서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피하려면 이런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여당이 누려온 ‘야당 복’의 유효기간도 끝났다.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확인한 무대였다.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당 대표의 운명은 명확하다. 당장은 버티더라도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처지다. 여당으로선 더 이상 야당의 ‘윤 어게인’ 같은 시대착오적 행태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를 뒤흔든 가장 큰 리스크가 ‘조국 사태’였다면, 지금 정부의 최대 리스크는 무리한 ‘대통령 사법 문제 뒤집기’라는 게 이번 선거에서 입증됐다. 이런 경고를 무시한 채 공소취소 특검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면 민심이 식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 무리수를 둘수록 정권을 다시 내줄 위험은 커진다. 비록 공소취소에 성공하더라도 정권을 내준다면 ‘공소취소의 취소’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 대통령은 힘의 정치를 내려놓고 국정 성과로 승부하면서 야당과의 정치적 타협을 통해 자신의 사법적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정부·여당에 일할 기회를 주면서도 동시에 경고장을 내민 선거였다. 승리나 패배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 어게인’의 길을 갈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leehs@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후세계 있다”는 서울의대 교수, 방광암 걸리자 한 일 | 중앙일보
- “재벌회사 사람이 왜 여깄나” MB 때린 노무현, 권양숙은 달랐다 | 중앙일보
- “췌장암, 항암 없이 완치”…‘이부진 요리스승’ 89세의 장수 식단 | 중앙일보
- 단순 가려움증인 줄 알았는데…암이었다, 이게 무슨 일? [Health&] | 중앙일보
- 성매매 민원 터졌던 ‘박카스 할머니’…인천 만월산에 다시 떴다? | 중앙일보
- [단독] ‘불륜·폭행’ 두 번 제명에도 4선 성공…유진우 당선 비결 | 중앙일보
- 오심 잔혹사, 이번엔 사라지나…‘초당 500회 추적’ 공의 비밀 | 중앙일보
- [단독] 보좌진 멱살 잡고 “XX 놈아”…혁신당 총무국장, 1심 벌금형 | 중앙일보
- “J-20이 스텔스라고? 중국, 후회할 것” 미 공군 소령의 지적 | 중앙일보
- 조수빈 전 KBS 아나운서 “선관위, 해체 아니라 분쇄돼야” 직격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