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이토록 무가치한 싸움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를 끌고 가는 핵심 장치는 ‘감정워치’다. 손목시계인데 순간순간 솔직한 감정이 액정에 표기된다. 불안·결핍·공허….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는 처지에서 ‘모자무싸’를 지켜보며 하는 수 없이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됐다. 좌충우돌, 도무지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 말이다. 매일 백악관 둘레를 취재하면서도 트럼프의 속내를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인사를 만나기는 어렵다. 아, 트럼프에게 감정워치를 채울 수만 있다면….
‘모자무싸’의 애틋했던 감정선을 깨지 않을까 염려가 앞서지만, 그래도 한번 상상해 볼까.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란과의 종전 협상을 마주하는 그의 워치에는 어떤 감정이 표기될까.
길어야 한 달 남짓이면 끝난다던 전쟁은 석 달이 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 합의된 것 같던 실무 협상이 다시 어그러질 무렵, 그는 마침내 이렇게 토로했다. “협상이 너무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의 감정워치 화면 위로 깜빡이는 세 글자. 지루함.
![지난 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종합격투기 대회 구조물이 조립되고 있다. [EPA=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08/joongang/20260608001154414vadk.jpg)
협상이 지루해졌다는 건 종전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속수무책의 고백으로 들린다. 자신이 벌여 놓은 엄청난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는 그는 이제 다른 감정으로 달아나려 한다. 최근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사우스 론)에는 거대한 철제 케이지가 조립되는 중이다. 오는 14일, 트럼프의 여든 번째 생일에 종합격투기 ‘UFC 프리덤 250’ 경기가 이곳에서 열린다. 끝을 알 수 없는 전쟁 탓에 기름값은 치솟는데, 최소 6000만 달러(약 900억원)가 들어간다는 행사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방송인 조 로건조차 “전쟁 중에 백악관에서 격투기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직격했지만, 트럼프의 감정워치는 다음 두 글자로 유난히 깜빡이고 있을 것이다. 흥분.
아닌 게 아니라 철제 케이지에서 펼쳐지는 격투기는 단순하다. 협상 따위의 지루한 절차 없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어느 한쪽이 승리한다. 이 단순한 싸움에 흥분한 그는 백악관 앞 UFC 케이지를 파리 에펠탑처럼 영구 보존하자는 구상까지 내비치기에 이르렀다. 출구 없는 정치 현실을 스펙터클한 이벤트로 덮어보려는, 로마 황제식 ‘빵과 서커스’ 통치술이다.
그러나 화려한 검투 경기로 돌아선 민심을 현혹하려던 제국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역사는 기억한다. 무가치한 싸움에 몰두하는 지도자가 끝내 증명하는 것은, 제 리더십의 무가치함뿐이다.
정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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