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세계여행 중인 서른다섯, 안 불안하냐 묻는다면

유채원 2026. 6. 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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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 아닌 시작담] '내가 재밌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노마드 여행자 전하리

[유채원 기자]

오전 9~10시쯤 일어나 오트밀이나 요거트, 커피로 간단히 배를 채웁니다. 이후에는 동네를 산책하며 장을 보고,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캠핑카에서 직접 요리해 먹습니다. 주변에 산이나 바다가 있으면 등산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기도 합니다.

여행자 전하리(35)님의 하루 일과입니다. 전하리님은 캠핑카를 타고 스페인을 여행 중입니다. 대도시보단 자연 근처에 주로 머물죠. 여행을 한 지는 벌써 10년째.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으로 캐나다, 미국, 멕시코, 남미, 호주, 인도, 네팔, 유럽 등을 오가며 배낭여행과 워킹홀리데이를 이어왔습니다. 인도에 머물던 시기에는 요가 트레이닝을 받고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전하리님은 디지털 노마드도, 휴가 온 회사원도,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크리에이터도 아닙니다.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자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여행하며 사는 일이 불안하진 않았을까요? 지난 5월 28일, 화상 인터뷰로 전하리님을 만나봤습니다.

'단순하게 살아도 되겠다' 생각했던 순간
▲ 여행자 전하리. 스페인 북부 레온(Leon)근처 산길에서 찍은 사진이다.
ⓒ 전하리
- 처음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 때는 대외 활동, 동아리, 과 활동도 잘 참여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처럼 살았죠. 학과 선택을 잘못해서 그런지 흥미도 없었어요. 남들은 다 열심히 스펙을 하나씩 준비하는데,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기대가 안 됐어요. 졸업하기가 두려운 거예요. 토익 점수 만든다고 휴학도 하고, 졸업도 미뤘는데 '취업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하고 싶지는 않았죠. 그래서 해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는데, 뉴질랜드에 2주 정도 보내주는 대외 활동 프로그램에 신청했어요. 그때 뉴질랜드에 갔는데 좋은 거예요. '이렇게 초록초록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니' 이런 감정을 처음 느꼈어요. '여기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졸업하기 전에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에 갔죠."

-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여행하고 계세요?

"지금은 스페인을 여행 중이에요. 캠핑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주 이동해요. 캠핑카에서 요리하고 샤워할 수 있는 건 캠핑카의 물탱크 덕분이거든요. 그 물을 다 쓰면 갈아줘야 해요. 그 작업을 4일마다 하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캠핑카 관리 시설을 찾아다녀요. 한 동네에서 제일 길게 있었을 때는 3~4개월 정도 머물렀어요. 지난해 여름에는 포르투갈 페리체(Pe niche)에 머물렀는데, 서핑하기 좋고 캠핑카 시설도 가까워서 오래 지낼 수 있었죠.

겨울에는 캠핑카에서 지내기 추워서 오프그리드 하우스에 머물기도 했어요. 오프그리드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와서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삶의 방식이에요.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일손이 부족한 경우가 있는데, 하루 3~4시간 정도 일을 도와주면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 주기도 해요. 처음에는 여행 경비를 아끼려고 시작했는데, 지내다 보니 그런 생활이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 여행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요?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당연하다고 믿었던 삶의 방식이 깨지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제가 머물렀던 오프그리드 하우스의 주인 분은 독일 아주머니예요. 그분은 집을 2주 만에 지었대요. 땅을 사서 집을 뚝딱뚝딱 나무로 만들고 지금까지 살고 계시는 거예요.

1년에 4개월만 일해요. 리조트에서요. '빡세게' 일해서 모아서 그걸로 1년을 그냥 사시는 거예요. 겨울에 일하고 여름에는 즐기고. 주변에서 찾기 힘든 삶의 형태잖아요. 참 소박하고 좋은 거예요. '역시 다양한 삶이 있다. 좋다. 나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살아도 되겠다' 싶었어요."

- 10년간 여행하면서 살아보니 어떠셨나요?

"그냥 재밌다! (웃음) 제가 추구하는 인생의 느낌이거든요. '내가 재밌는 인생'. 힘주고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것도 가져야 하고', '이것도 달성해야 하고', '몇 억 있어야 집을 살 수 있고' '다음에는 차를 사고'… 다른 사람들도 힘 빼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 없잖아요. 눈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난 거잖아요.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생각 없이 편하고 재밌게 살고 싶어요."

- 그동안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별 게 없어요. 디지털 노마드도 아니고 돈을 한 번에 모아서 쓰는 편이거든요. 지금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호주에서 4년 동안 모은 돈으로 여행 다녀요. 아마 제 여행 스타일과 생활 방식이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캠핑카 특성상 대도시를 잘 못봐요.

주차도 엄격하고 공간도 협소해서 항상 외곽을 여행하는 편이거든요. 도시를 여행하면 쇼핑, 외식도 하고 박물관도 가고 공연도 보고 돈 나갈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자연 가까이에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일반적으로 하는 여행보다는 지출이 적을 수밖에 없죠.

원래도 돈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에요. 화장도 잘 안 하고 옷도 자주 사지 않거든요. 캠핑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차피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데?' 하는 생각에 물건을 거의 사지 않게 됐고요. 그래서 식비 외에는 지출이 거의 없어요.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 장을 보는데 60~80유로(약 10여만 원) 정도 쓰고, 둘이 나눠 부담하니까 실제 생활비는 더 적은 편이에요."

"인생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즐기는 마음으로"
▲ 포르투갈의 오프그리드 하우스 부엌 겨울동안 고양이를 돌보며 머물렀던 곳이다.
ⓒ 전하리
- 10년 동안 직장에 다니지 않고 여행하며 살아오셨어요. 사회가 말하는 안정적인 삶과 다른 길을 걷는 데 대한 불안은 없으셨나요?

"위기감을 느낀 적은 많이 있어요. 전에는 서른까지 여행해야겠다고 정해 놓기도 했어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갔을 때 외국인 친구를 한 명 만났는데 '나 30살까지 여행 다니면서 살 거야'라고 말한 적 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왜 서른이야라고 묻더라고요. 이유를 못 대겠는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30대 이미지 때문에 서른까지 여행한다고 정한 거예요. 거기서 충격을 받았어요. '아직도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에 내 인생을 맞추고 있었던 거구나. 내가 왜 이렇게 정했지? 내 인생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안 불안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직장 다니고 연애하고 평범하게 살아도 불안해 하는 거예요. 내가 여행 다니면서 불안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사람은 어디에 있든 다 불안한가 보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쭉 살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설렘이 컸어요. 하고 싶은 걸 생각하면 기분이 너무 좋고. 미래가 설레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여행을 이어가게 됐어요."

- 시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SNS로 메시지가 와요. 한 번은 군 적금 모은 걸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실패할까 봐 두렵다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군 전역을 앞둔 군인 분이었는데요. 주변 사람들이 '여행 가면 졸업도 취업도 늦춰지고 시간 낭비, 돈 낭비니까 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그 분께 '인생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그냥 사는 거다, 과정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어요. 즐기는 마음으로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이분법적으로 성공 아니면 실패로 생각하는 거 자체가 뭔가를 시작할 때 독이지 않을까요."

- SNS에 "어릴 때 꿈은 화가나 의사였지만, 지금의 꿈은 날씨 좋을 때 귤을 까먹을 수 있는 여유"라고 쓰셨더라고요. 지금도 같은 꿈을 꾸고 있나요?

"이렇게 계속 쭉 살고 싶어요. 자연에서 여행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게 꿈이에요. 뜨개질 같은 취미생활, 여행, 하이킹, 서핑, 요리, 요가… 제가 관심사가 되게 많아요.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요. 앞으로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있을 때 할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는 지금보단 좀 더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포르투갈의 오두막에서 지낼 때 조용하게 고양이를 돌보면서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좋더라고요. 가정을 꾸린 것 같았어요. 어차피 어느 순간에는 집도 필요할 거 아니에요. 그런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 관한 생각이 맞물렸죠. 저만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겠다 싶거든요. 그런데 부모님께 계속 걱정을 끼쳐드리는 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삶은 계속 유지하되, 어느 정도는 안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의 저는 넘치는 생각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어른의 나이' 서른이 되기 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야 할지, 지금이라도 해외 경험을 해야 할지, 취직 준비에 다시 매진해야 하는지 고민이 컸거든요. 걱정에 짓눌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속절 없이 흘렀습니다.

겨우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발이 얼 것처럼 추웠는데, 벚꽃이 피더니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거창한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계절이 벌써 두 번 바뀌었더라고요. 어쩐지 울적했습니다. 시간은 왜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 걸까요?

그러던 중 하리님과 만났습니다. "즐거운 인생 되시길 바랄게요" 대화가 끝난 뒤 하리님이 남긴 이 인사가 유독 마음에 남았는데요. 미래를 고민하고 과거를 후회하느라 마음이 복잡할 때,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한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즐거운가?'

앞으로도 종종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합니다.

《 group 》 성공담이 아닌 시작담 : https://omn.kr/group/bside_club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비사이드클럽 인스타그램 계정(@bside_seoul)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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