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유학생 각성시킨 미국 교수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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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
| ⓒ 위키미디어 공용 |
그날 캐리어 교수의 손에는 하얀 머그잔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 담긴 검은 액체가 풍기는 향기는 좁은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무슨 얘기를 할까? 잠시 망설이는 순간 캐리어 교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길상, 커피 좋아하나?"
정말 의외의 질문이었다. 지도교수와의 첫 만남을 대비해서 생각했던 주제가 아니었다. 우리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뭐냐? 여기에서 무슨 연구를 하려고 하느냐? 영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느냐? 그런 예상 질문들을 만들어 나름 준비하였던 나에게는 매우 낯선 주제였다.
물론 답이 어렵지는 않았다. "네 마십니다"라고 또렷하게 대답하자, 캐리어 교수는 질문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무슨 커피를 마시나?" 역시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동서식품에서 생산하는 맥스웰하우스 커피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마십니다"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날 커피 대화는 이후 나의 인생행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하나의 커피를 꼽자면 그날 지도교수의 손에 들려 있던 커피, 나는 마셔보지 못한 그 커피일지도 모른다.
맥스웰하우스를 마신다는 답을 듣자 지도교수는 이렇게 물었다.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마실 정도로 한국이 그렇게 부유해졌나? 내가 CNN을 통해서 보는 한국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보이던데...." 그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길상은 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나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또 아는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커피는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하면서 생산하고, 덕분에 미국이나 서양의 부유한 나라들은 이를 싸게 가져다가 즐기는 거지. 아마도 세상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렇게 완벽히 구분되어 있는 물품은 커피밖에 없을 거야. 역사적으로 커피 생산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하루 인건비는 선진국에서의 커피 한 잔 가격을 넘어선 적이 없어."
이런 설명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지도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한국 전쟁 때 춘천 부근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본 한국, 그리고 지금 TV로 보는 한국은 여전히 어려운 나라야. 보통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학문하는 지식인은 커피 한 잔 속에 담긴 역사, 사람의 땀과 눈물 이런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그날 알았다. 캐리어 교수는 6.25 참전 용사였다. 제대군인에게 제공하는 정부 장학금(G.I. Bill)을 받기 위해 아내와 네 아이를 남겨둔 채 낯선 나라 한국까지 날아와 목숨 걸고 전쟁을 했던 분이다. 춘천 부근에서 전투 중 총상을 입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미국으로 후송된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꿈꾸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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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 |
| ⓒ 연합=OGQ |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아이스 브레이커 역할을 하는 물질로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교양처럼 여겨진다. 함께 공부하던 많은 학생들도 지도교수 연구실을 방문할 때 머그잔 가득 커피 한잔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나는 지도교수와의 만남에 분위기 메이커로 커피를 이용할 수 없었다. 지도교수와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지도교수 주변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마치 지도교수와의 어떤 정서적 유대를 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도교수의 친구 중 저명한 학자 몇 분이 지도교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나는 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로 유명한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였다. 지도교수와 1928년생 동갑인 촘스키 교수는 1986년 봄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를 방문하여 다섯 번의 강연을 했고, 강연 원고를 모아 이듬해에 <권력과 이데올로기: 마나과 강연>(On Power and Ideology: The Managua Lectures)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이 책을 들고 친구가 있는 일리노이대학을 방문한 것이 그해 여름 어느 목요일이었다. 지도교수의 셋째 아들 톰은 경제학자로 워싱턴주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 남미 경제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톰은 1980년 초에 시작된 내전으로 8만 명이 사망한 엘살바도르의 난민 구조활동을 갔다가 만난, 딸 셋이 있는 현지 여성과 결혼한 인권운동가였다.
그날 지도교수를 만나러 가보니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문밖에서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자 지도교수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들어가서 조용히 빈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마나과에서 만난 톰 가족의 안부를 전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지도교수는 안도하면서도 뭔가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당연히 김이 나는 커피 두 잔이 두 분 사이에 놓여있었다.
촘스키 교수는 화제를 돌렸다.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왜 이 친구에게는 커피를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캐리어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이 친구는 한국에서 온 제자인데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인 커피를 안 마신다, 지도교수를 잘 못 만난 탓이다"라고 말했고, 촘스키 교수는 "지도교수보다 낫네"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그날도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지도교수를 만났을 때 촘스키가 놓고 간 신간을 건네주셨다. 촘스키가 전해 달라는 말이 적힌 메모와 함께. "길상 리, 너의 논문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다룰 때 이 책에 실린 강연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마나과 두 번째 강연에서 촘스키는 1950년대 초반 트루먼 독트린을 설명하며 제주 4.3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와 친일파의 부활에 저항하는 3~4만 명의 제주 주민이 학살당한 역사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당시 한국에서 '제주 4.3'은 마음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가려진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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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를 포함해 클래어런스 J. 캐리어 교수의 제자들이 함께 2001년에 출판한 <변명의 여지 없는 누락: 클래어런스 캐리어와 교육사 연구의 비평적 전통>의 표지. 캐리어 교수의 사상을 바탕으로 미국 교육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
| ⓒ Peter Lang Inc. |
첫날 만나서 나눈 맥스웰하우스 커피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그 커피 이야기 덕분에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온전히 이해하고 논문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캐리어 교수는 나를 학과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머그잔을 꺼내서 나에게 커피를 따라주었다. 4년 동안 나를 도왔던 캐리어 교수와 바바라, 그리고 나는 함께 미국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썼다.
생각해 보면 유학 4년 동안 커피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커피를 마셔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지도교수가 제자인 나에게 준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도덕적 불편함'을 상징하는 질문이었다. 지식인은 도덕적으로 너무 편안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귀국 후 나는 어렵지 않게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남과 북이 함께 유엔에 가입하고,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던 1990년대 중반에 지도교수에게 편지를 썼다. 한국에 초청하고자 하는데 오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한국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얘기도 담았다. 그런데 지도교수는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긴 답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2년을 보냈던 한국, 사랑하는 제자 길상이 있는 한국이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헤아려보면, 그것은 마치 범죄자가 범행 현장을 궁금해하는 그런 것에 가깝다고 느낀다. 나의 이런 죄의식은 남과 북이 통일이 되던가, 적어도 남한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날 사라질 것 같다. 그날이 빨리 와서 서울이나 춘천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도교수는 나와 이런 편지를 주고받은 얼마 후 큰 심장 수술을 받고, 교수직을 은퇴하였다. 끝내 한국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지는 못한 채, 2013년 11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의 부고와 함께 그의 생애가 지역 신문에 실렸다. 기사에는 "그는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래서 그가 은퇴하였을 때 18명의 제자가 그의 업적을 기리는 논문집을 출판한 바 있다"고 씌어 있다. 그 18명 중 한 명이 한국에서 그와 커피를 마시며, 그가 지고 있던 한국을 향한 마음의 짐을 내려주고 싶었던 제자 이길상이다.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5).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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