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76% ‘진보 벨트’… 진보 코드 강화 속 대입·교육예산 주목
일반행정-교육행정 따로 ‘미스매치’ 지역 서울 등 4곳
109만표 육박 ‘무효표’, 교육자치 재설계 목소리

6·3 교육감 선거로 지역 교육권력 판도가 달라졌다. 진보와 보수가 팽팽했던 구도가 깨지고 진보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진보 진영은 수도권을 비롯해 학생이 많은 10곳을 석권했고, 보수 진영은 6곳에 그치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쳤다.
달라진 지역 교육 권력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은 서울(정근식), 경기(안민석), 인천(도성훈), 부산(김석준), 전남광주(김대중), 전북(천호성), 울산(조용식), 강원(강삼영), 제주(고의숙), 충남(이병도) 등 10곳이다. 보수 교육감이 이긴 지역은 대구(강은희), 경북(임종식), 세종(강미애), 대전(오석진), 충북(윤건영), 경남(권순기) 등 6곳이다.
보수 진영이 막판에 대전과 경남에서 역전승하며 체면치레한 듯하지만, 진보의 압승에 가까웠다. 4년 전 교육감 선거에선 진보 9석, 보수 8석으로 대등했고, 관할 학생은 보수 쪽이 많았다. 보수 교육감 당선 지역에는 유·초·중등 학생이 320만809명으로 53.7%, 진보 교육감 승리 지역에는 275만6309명으로 46.3%였다(2021년 교육기본통계 기준).
이번 선거에서 보수 교육감 지역에 속한 유·초·중등 학생은 지난해 교육기본통계 기준으로 132만1180명(23.8%)으로 축소됐다. 진보 교육감 당선 지역 423만70명(76.2%)에 크게 못 미친다. 학생 절반이 쏠려 있는 수도권과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은 전남광주, 부산, 충남 등을 진보 진영이 쓸어담았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 벨트’에 속한 학생이 압도적이어서 교육 예산도 훨씬 많이 배정받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 진영이 지역의 교육의 실권을 다시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시장·도지사와 교육감의 정치·이념 성향이 다른 ‘미스 매치’ 지역은 4곳이었다. 서울의 경우 보수 성향 시장(오세훈)과 진보 교육감이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다. 대전·충북·세종은 반대로 진보 성향 광역 지방자치단체장과 보수 교육감이 승리한 지역이다. 미스 매치는 일반 행정과 교육 행정이 따로 놀기 쉬워 교육감 직선제의 부작용 중 하나로 꼽힌다.
‘진보 코드’ 강화 속 대입 개편 주목
가장 주목되는 움직임은 대입 개편이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는 2032학년도(현 중1) 혹은 2033학년도(현 초6)부터 적용할 새 대입 제도를 만들고 있다. 올 하반기 국가교육위가 발표하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에서 윤곽을 드러낸다. 논의 테이블에 수능·내신 절대평가, 수·정시 통합, 서·논술형 수능 도입 같은 입시 현장을 뒤흔들 수 있는 정책이 올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진보 교육감 당선인 7명은 선거 과정에서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 전환 등을 공동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또한 보수 성향으로 3선에 성공한 강은희 당선인 등도 5지 선다형 수능이 시효가 다했다는 입장으로 큰 틀에서 진보 교육감 당선인들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대입 제도가 교육감 권한은 아니다. 다만 교육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교육감들의 협조는 필수적이어서 정부가 교육감들의 뜻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교육감들의 협의 기구인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 대표는 국가교육위 당연직 위원으로 대입 개편에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있다. 교육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낼 경우 대입 개편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이 당선된 지역은 인천, 울산, 전남광주, 충남, 제주, 강원 등 6곳이다. 정근식(서울) 당선인 역시 전교조 초창기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인연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유지, 민주시민교육 강화, 혁신학교 확대 등 진보 진영에서 강조하는 정책들이 학교 현장에서 한층 강조될 전망이다. 전반적으로 수월성보다는 교육 격차 해소 쪽에 무게를 실을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 서열을 해체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일 전망이다.
교권 강화는 모든 당선인의 공약이어서 교육청마다 최우선 순위로 추진될 전망이다. 다만 쟁점인 교권 침해 사안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어 대입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에는 진보는 반대, 보수는 찬성 입장으로 엇갈려 힘을 받지는 못할 전망이다. 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이 요구해온 교원의 정치 기본권 확대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 예산 지키기 나설까
올해 하반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 예산 구조조정 논의에서 교육감들이 단일대오로 대응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예산당국은 교육청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는 내국세의 20.79%를 교육교부금으로 교육청 예산으로 배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100원을 걷으면 20.79원을 교육청에 자동으로 주는 방식이다.
예산당국은 학생 수가 줄고 노인 인구는 늘어나는 인구구조 변화가 빨라 경직적인 교육교부금을 서둘러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산당국은 내국세 연동이 아닌 경상성장률 연동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교육교부금을 초·중등 예산 외 평생 교육이나 대학 교육 등으로 사용처를 확대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반면 교육계에서는 학생 수가 줄어도 학급 수 변화는 크지 않고 신도시 과밀 학급과 인구 소멸 지역 소규모 학교 문제는 여전하다며 교육 예산 축소에 반대하고 있다. 다만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건 ‘현금 살포성’ 공약들이 ‘교육 예산이 남아돈다’는 예산당국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는 관측도 있다.
파란색을 선거 캠페인에 활용한 친여 성향 당선인들이 구조조정 칼날에 방어선을 칠지 주목된다. 이들이 개편 반대 목소리의 구심점이 될 경우 교육 예산 구조조정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감의 권한에 해당하는 교육 예산을 줄이는 논의여서 새 교육감들 입장이 중요하다”며 “특히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되는 경기도의 당선인이 여당 5선 국회의원 출신이어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109만표 육박한 무효표… “직선제 수술대 올려야”
이번 선거에서 교육감 직선제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무효표가 108만7120표 쏟아져 4년 전 선거보다 18만3893표(20.4%) 증가했는데, 이는 시장·도지사 선거 무효표 43만3975표의 2.5배에 해당한다. 무효표가 1, 2위 표차보다 많은 지역도 속출했다. 경남의 경우 당선인과 2위 표차가 7165표, 무효표는 7만1333표로 10배에 달했다. 대전에서도 무효표가 2만5715표였는데 1, 2위 표차는 4521표에 불과했다.
유권자들이 찍을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인데 ‘깜깜이 선거’ 문제가 개선은커녕 오히려 악화된 것이다. 후보 난립과 단일화 파열음, 막말 공방에 이어 현금 살포성 공약 등 선거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교육감 직선제를 포함해 교육자치 제도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시·도지사 러닝메이트, 시·도지사 임명, 공동 등록제, 지역의회 교육위 선출 등 대안을 논의할 때란 주장이다. 한 교육청 부교육감을 지낸 대학 교수는 “선거 뒤 교육청에 전문성이 검증 안 된 선거 공신들이 교육청에 ‘실세’로 들어와 교육을 좌우하는데 피해는 결국 학부모·학생 몫”이라며 “정치 중립을 내세우나 실상은 정치가 교육을 망치는 길을 열어주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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