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학개미, 미국 주식 버렸다…10개월 만에 ‘마이너스’ 전환
9개월 순투자 끊겨…환율 책임론도 약화
서학개미 빠지고 외국인 ‘팔자’가 환율 변수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의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4월 이른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 흐름이 10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등 해외 증시가 상대적으로 정체된 가운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고환율 부담이 투자 심리를 누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증시가 강한 상승세를 보인 점도 해외주식 자금 이탈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비금융기업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4억2490만달러로 집계됐다. 비금융기업등의 해외주식 투자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6월(-1억6810만달러) 이후 10개월 만이다. 지난해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이어졌던 9개월 연속 순투자 흐름도 끊겼다.
국제수지 통계상 비금융기업등은 통상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 자금 흐름으로 해석된다. 수치가 플러스면 해외주식 매입이 매도보다 많다는 뜻이다. 반대로 마이너스면 매입보다 매도·회수가 많다는 의미다. 지난 4월에는 서학개미가 미국 등 해외주식을 새로 사들인 규모보다 기존 투자금을 회수한 규모가 더 컸던 셈이다.

연초 이후 흐름은 뚜렷하게 꺾였다. 비금융기업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올해 1월 57억1020만달러에 달했지만 2월 35억6510만달러로 줄었고, 3월에는 6억3720만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이어 4월에는 순투자 감소를 넘어 순회수 국면에 들어섰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수십억달러 규모로 해외주식을 사들이던 개인 투자자들이 고환율 국면에서 사실상 매수세를 멈춘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해도 분위기는 달라졌다. 비금융기업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지난해 10월 74억520만달러, 11월 52억7300만달러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12월 20억1150만달러로 줄어든 뒤 올해 1월 반짝 늘었다가 2월부터 빠르게 위축됐다. 1월과 비교하면 4월 해외주식 투자액은 61억3510만달러 감소했다.

가장 큰 배경은 환율 부담이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같은 미국 주식을 사더라도 원화 기준 매입 비용이 커진다. 미국 증시 상승 기대가 있더라도 환율이 이미 1500원 안팎까지 올라와 있으면 개인 투자자는 신규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부각되며 환율 불안이 이어진 점도 해외주식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 요인으로 보인다.
해외 증시의 상승 탄력이 예전만 못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에는 인공지능, 빅테크, 반도체 종목을 중심으로 해외주식 투자 열기가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고환율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격적으로 달러를 사 해외주식에 들어갈 유인이 약해졌다. 환율은 높고 해외 증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서학개미 자금이 한발 물러난 것이다.

반대로 국내 증시 활황은 자금 흐름을 바꾼 변수로 작용했다. 코스피가 최근 8000을 돌파하며 강한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해외로 향하던 개인 투자자금 일부가 국내 시장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고환율 상황에서 해외주식은 환전 부담이 크지만 국내 주식은 환전 비용 없이 상승장에 참여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비싼 달러를 사 미국 주식에 들어가기보다 국내 증시에서 기회를 찾는 선택지가 커진 셈이다. 정부가 해외 투자금의 국내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효과도 일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외환시장의 부담은 서학개미보다 외국인 자금 흐름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고환율 국면에서 개인들의 해외주식 투자가 원화 약세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다만 4월 통계만 놓고 보면 서학개미를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려워졌다. 비금융기업등의 해외주식 투자가 순회수로 돌아섰다는 것은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관련 달러 수요가 줄어든 정도를 넘어 일부 자금이 국내로 돌아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오히려 최근에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환율 수급에 더 큰 변수로 떠올랐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원화 자산을 줄인 뒤 달러로 바꾸면 외환시장에는 달러 매수 압력이 생긴다. 실제로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국내 증시도 크게 흔들렸다.

지난 5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5.54% 급락한 8160.59에 마감했고, 장 초반에는 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인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닥도 함께 하락하면서 장중 한때 1000선이 무너졌다.
외국인의 매도 규모도 이례적이었다. 외국인은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3033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7일부터 20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이어간 것이다. 이 기간 순매도액은 70조1580억원에 달했다. 서학개미의 달러 수요가 꺾인 상황에서 외국인의 ‘팔자’ 행렬이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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