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애는 안 하면서 '남의 연애'에 빠진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엇에 빠지고, 왜 그것에 열광하는 걸까요? 선택에는 늘 이유가 있습니다. SNS에서 화제가 되는 아이템부터 대중의 소비와 행동까지, 눈에 보이는 유행의 장면을 따라가며 그 너머의 이유와 배경을 들여다봅니다. <기자말>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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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퍼 리얼리즘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한 장면. |
| ⓒ SBS Plus 방송화면 캡처 |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사치가 되어버린 이른바 '3포 시대'입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하는 혼인율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 안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남녀 간의 만남과 사랑으로 뜨겁습니다.
판타지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지독한 현실'
과거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개 판타지의 영역이었습니다. 한때 화제를 모았던 채널A <하트시그널>의 출연자들은 모두 화려한 외모와 스펙을 자랑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고급스러운 장소와 세련된 데이트 코스를 배경으로 펼쳐졌습니다. 시청자들 또한 방송을 현실의 연애로 믿기보다 잘 짜여진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듯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기를 끄는 것은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입니다. <나는 솔로>를 비롯한 최근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혹은 거울 속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돌싱이나 모태솔로처럼 콤플렉스나 치부로 여겨지는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점 많고 서툰, 보통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고 상처받으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판타지 로맨스보다 훨씬 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보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
사람들은 왜 이 서툴고 지독한 현실 연애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 프로그램은 사랑을 소재로 삼고 있을 뿐, 실제로는 인간의 본심을 들여다보는 관찰 실험장에 가깝습니다. 외딴 숙소라는 제한된 공간에 낯선 이들을 모아 놓고, 카메라는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가감 없이 비춥니다.
호감과 거절이 교차하고, 연대와 배신이 얽히는 이 특수한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심리는 적나라하게 해체됩니다. 선택받고 싶은 욕망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불안이 충돌하면서, 애써 숨겨왔던 열등감, 인정 욕구, 이기적인 면모가 튀어나옵니다.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지점 역시 연인들의 아름답고 설레는 순간보다, '저 상황에서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와 같은 인간 군상의 민낯을 목격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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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 리얼리티가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틀로 소비된다는 점은, 이 방송을 리뷰하는 2차 콘텐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
| ⓒ 유튜브 갈무리 |
사실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관찰할 수 있는 포맷은 데이트 매칭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 생활을 다루는 오피스 예능이나, 생존을 다룬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생존 경쟁이나 특수한 직업 환경은 일반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세계는 아닙니다. 반면 연애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일상의 영역입니다. 동시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맞부딪히는, 생활 속 '극한'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보통의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철저히 이성을 앞세웁니다. 예의를 차리고, 본성을 숨기며, 사회화된 가면을 씁니다. 그러나 사랑과 질투, 소유욕이라는 원초적 감정이 개입하는 순간, 이성은 통제력을 잃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이기적이거나 방어적인 행동이 튀어나옵니다. 따라서 현실판 연애에서의 우리 모습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근사하기보다 지질하고 구차하기만 합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바로 이 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첫인상 선택이나 데이트권 획득 등을 통해 출연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서열을 매기고, 거절의 상처를 주며, 질투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합니다. 갈등이 격화되고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쉽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남'의 연애인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와 감정 소모가 따릅니다. 반면 '남'의 연애는 이 피로한 과정의 드라마를 안전한 위치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선택과 갈등에 깊이 몰입은 하지만, 그 결과를 감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화면 속 인물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들을 평가하고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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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연애는 피로한 과정의 드라마를 안전한 위치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
| ⓒ Created with Gemini |
하지만 이러한 방송은 인간을 몇 가지 심리 유형과 관계 패턴으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짧게 편집된 장면만으로 누군가는 회피형으로, 누군가는 자기애적 인물로 규정되고, 사람들은 단편적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타인을 이미 간파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시선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상대방의 다층적인 면모를 이해하기보다 쉽게 판단하게 됩니다.
또한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경쟁과 서열의 문제처럼 바라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누가 더 많은 선택을 받는지, 누가 끝내 밀려나는지에 초점을 맞춰, 마음을 나누는 과정마저 경쟁처럼 소비하게 만듭니다. 누군가 거절당하고 질투하고 상처받는 장면이 하나의 오락처럼 소비된다는 사실은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화면 속 사람들의 서툰 말과 행동, 질투와 불안, 그리고 관계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을 너무 쉽게 분석하고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모니터 너머 마주하는 그 날것의 감정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며 사랑 앞에서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은 내 안에도 존재합니다. 남의 연애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안에서 마주치는 것은 나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서툰 모습을 비난하기에 앞서 나의 취약함 또한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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