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은 죽어야 팔릴 것" 유영국의 산이 독보적인 이유

전사랑 2026. 6. 6. 19:2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는 10월 25일까지

[전사랑 기자]

산을 그린 화가가 있다. 산을 보고 그리기보다, '내 안에 있는 산'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따스한 산도, 단풍에 물든 빨간 산도, 보랏빛 산도 있다. 산이라는 큰 틀 안에서 그는 색채와 구성, 추상을 연구했고 내면을 탐색했다. 오로지 산의 이미지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된 유영국(1916-2002)의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
 <산>, 1964.
ⓒ 전사랑
파격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구상은 생명력을 뿜으며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심연을 고유하게 품고 있다. 편안한 녹음이라기 보단 대자연의 장엄함을 보여준다. 원색들이 서로 만나 강렬한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며, 보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아 그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아낼 수 없는 강렬한 빛과 색이다.

작품의 본질은 고향 산, 그 자체

"엄마, 왜 산 그림만 그렸어?"

전시에 따라온 한 아이가 묻는다. 유영국은 이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떠난 지 오래된 고향 울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이라 답했다.
 전시전경
ⓒ 전사랑
1916년 산속 깊은 벽촌이었던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온몸으로 흡수한 자연을 그린 것이다. 지역 유지의 아들로 일찍이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현대적 화법을 받아들이고 탐구하며 추상회화라는 서양의 화법을 받아들였지만 그에게 언제나 본질은 고향의 산, 그 자체였다.
 <작품>, 1964.
ⓒ 전사랑
화가 아들도 "왜 산을 그리냐"고 물었다. 유영국은 "피카소 같은 천재는 무엇을 그려도 다 잘 그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며 조금 더 솔직한 답변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자신에게 완전히 소화된 것만을 그리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얄팍하게 알거나 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안에 스며든 것만을 끄집어내겠다는 것. 사진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어떤 영혼이 담긴 듯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의 산은 가장 정직하게 본질적인 근원을 탐색한 여정처럼 느껴진다.
 <작품>, 1962.
ⓒ 전사랑
한겨울의 서슬 퍼런 돌산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캔버스 전체가 돌의 질감을 닮아 있다. 깨질듯한 돌의 표면, 상하 노랑과 파랑의 대립. 그 긴장감으로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은 만져질 듯한 입체적 질감을 표현해 내고 산을 장엄하기도 하고 엄숙한,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독보적 존재감을 가진 존재로 표현했다.

보통 한 작가가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립하는 데에는 오랜 탐구기간이 있지만 유영국에 경우에는 이미 초기부터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를 이미 알고 붓을 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영국 전시도록 <절대와 자유>에 실린 글에서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첩첩산중과 망망대해가 교차하는 시골에서 갑자기 코즈모폴리턴의 도시 도쿄로 와서 세계미술의 가장 앞선 경향을 단번에 선택하고 섭취하는 그 '비약'이야말로 일종의 신화적인 요소"라고 평했다.

응축된 산이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

미술계에서 평가되는 유영국의 '신화적 요소'와는 달리 유영국 자신은 "예순 살까지는 기초 공부 좀 해 보고, 이후 자연으로 부드럽게 돌아가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했다. 제국주의가 일본을 장악하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울진에서 해방을 맞았고 그 기간 동안 부친이 운영하는 배에 올라 어획을 했다고 한다.

유학 후 생업에 종사했던 그는 김환기의 부름으로 서울에 올라와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1964년 이후 교수직도 그만두고 그룹전이나 미술협회에서 벗어나 고독하게 오로지 자신의 산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잃어버린 10년을 따라잡기 위해, 내면의 산을 끄집어내기 위해 분투한 것이다. 이런 분투의 기록처럼, 유영국의 1960년대 작품은 놀랍다. 유영국의 산이 독보적인 이유는 산이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어서다.
 <해토>, 1961.
ⓒ 전사랑
작품 <해토>. 겨울 동안 얼어 있었던 땅이 녹고 있다. 이미 생명은 땅 속에서 꿈틀거리며 깨어날 준비를 한다.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얼음을 가를 듯한 칼과 같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언 땅을 찢고 올라온다.

보통 <작품>, <산>처럼 간결하고 의미를 배제한 대부분의 작품과 달리 유독 이 작품에만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제목이 붙었다. '해토'. 얼었던 땅이 녹았다. 생명이 재개한다. 전쟁과 피난, 생업, 가르치는 일 모두를 정리하고 오로지 화가로서 도약하겠다는 의지, 선언과도 같다.

나는 온 마음을 쏟아하는 일에 있어서 보상이 적다고 느껴질 때, 혹은 외적인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유영국 화가를 떠올린다. 그가 작품을 최초로 판매한 것은 60이 다 되어서였고(1970년대 삼성 이병철 회장이 구매) "내 작품은 내가 죽어야 팔릴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매일같이 수도승처럼 철저한 루틴에 따라 작업실을 오가며 2년에 한 번씩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했다. 묵묵히 혼자만의 세계에서 완성된 그의 산은 무엇보다 강한 숭엄한 기운을 발산한다.
 <작품>, 1962.
ⓒ 전사랑
"그림이 안 팔리는 시대를 살았으나 팔린다는 생각에 구속되지 않음으로써, 나는 하고 싶은 생각, 하고 싶은 일을 그만큼 한 셈이란 생각도 한다. 안 팔리니까 빨리 그릴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었다."

동년배 화가들은 프랑스로, 미국으로 떠나 화단의 주목을 받을 당시, 유영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말이 얼마나 단단한 마음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외국에 나가는 대신 작업실로 가 칩거한 화가. 그는 동년배 화가들과의 비교도, 미술계, 학계에서의 욕심도 없이 그저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했다.

"설명이 요구되는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니고 군더더기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삶에서, 그림에서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유영국의 산을 보며 모두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세기 만에 모두를 아우른 거대한 산

자신의 작품이 시대에 앞서 간다는 것을 예측한 그의 말처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탄생 110주년 전시의 반응이 여느 때보다 뜨겁다. 점심 시간을 쪼개 전시를 보러 온 직장인, 모처럼 나들이를 나온 노년층, k-pop을 넘어 한국 문화에 깊게 들어온 외국인 관람객들, 유영국을 포함해 한국의 굵직한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컬렉트 하고 있다고 알려진 RM에 힘입어 젊은 세대들도 제법 보였다. 말 그대로 반세기가 지나서야, 유영국의 산이 모두를 아우르고 있었다.

산은 언제나 변화하는 모습으로 그대로 우뚝 서 있다. 가장 단단하게, 수많은 생명과 생태계를 끌어안고 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산을 만나고 어떤 산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한국 미술에서 유영국은 이처럼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유영국의 산도 생명력으로 꿈틀대면서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보는 이를 맞는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 자주 그의 산에 오를 계획이다.

2026 한국근대 거장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기간: 2026년 10월 25일까지
관람료: 무료

참고
국제갤러리, 『Colors of Yoo YoungKuk』, 신명인쇄, 2022.
김인혜, 『살롱 드 경성』, 해냄, 2023.
국립현대미술관, 『유영국, 절대와 자유』, 미술문화, 2016.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6/05/18/O6GTWGFUVFHZNGWRMYDEU6Z7QM/
https://archive.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_s.jsp?ID=202108210009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