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넘버와 화려한 색채의 조화, 뮤지컬 ‘렘피카’ [D:헬로스테이지]
무대 위에 날카롭게 그어지는 직선들과 객석을 압도하는 일렉트로팝의 거친 비트는 단숨에 관객을 1920년대 파리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간다.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렘피카’는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파란만장한 삶을 시각과 청각으로 펼쳐내는 작품이다.

지난 2024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엇갈린 평가 속에 조기 폐막이라는 부침을 겪은 이 작품이,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작품은 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평면적으로 읊는 전형적인 구조를 과감히 탈피했다. 대신 완벽하게 계산된 구도 안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인간의 야망과 정체성의 혼란을 집요하게 들춰낸다.
작품이 거둔 가장 명확한 성취는 화가의 독특한 그림체를 무대 장치와 연출로 고스란히 살려냈다는 점이다. 무대를 채우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은 비대칭으로 움직이면서 인물의 계급과 고립, 그리고 해방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연출은 인물들을 직선의 틀 안에 가두거나 경계선 위에 세우는 방식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러시아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파리로 도망친 난민 신세의 불안감, 그리고 어떻게든 상류사회로 올라가려는 타마라의 야망이 이 무대 구도를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여기에 과감한 원색 조명이 더해지면서 무대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캔버스처럼 변한다.
시각적 구도가 주는 차갑고 정돈된 분위기는 팝·록·R&B가 혼합된 작곡가 매트 굴드의 음악을 만나 시너지를 낸다. 극 전반을 지배하는 일렉트로팝은 20세기 초 급진적인 기계 문명과 근대성을 대변하는 청각적 장치다. 신시사이저의 기계적인 음색과 드럼의 거친 타격감은 타마라가 직면한 시대의 속도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높은 음역대와 과감한 전조를 동반하는 넘버들은 인물의 내적 갈망을 직관적으로 폭발시키며 서사의 전개 속도를 끌어올린다.

이야기의 중심 축은 타마라를 중심으로 남편 타데우시와 뮤즈 라파엘라라는 대립 구도를 통해 밀도를 더한다. 극은 이들의 관계를 단순한 삼각관계로 축소하지 않고, 안정적인 과거로의 회귀와 예술적 해방을 향한 타마라 내부의 정체성 싸움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갈등은 두 사람과 함께 부르는 음악의 장르 차이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남편과 갈등할 때는 차분하고 정형화된 클래식풍의 음악이 흐르는 반면, 라파엘라와 교감할 때는 규칙을 깨부수며 전개되는 자유로운 록 음악이 전면에 나선다. 두 인물 사이에서 고뇌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타마라의 모습은 극의 밀도를 더한다.
그렇다고 작품은 타마라의 삶을 단순한 성공 신화로 포장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혼란 속에서 그가 감내해야 했던 행보는 치열한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가깝다.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과 그럼에도 끝내 지켜낸 주체적인 가치들은 시대를 건너뛰어 오늘의 관객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공연은 오는 6월 20일까지 코엑스아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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