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AI 시대 인간의 조건을 묻다
[고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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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틸컷 |
| ⓒ 영화 <군체> |
솔직히 말하자면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군체>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 영화가 없다. 같은 날 본 영화가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유레카>여서 체감상 그리 느꼈을 수도 있다. 대사도 적고 롱테이크도 많은 3시간 40분짜리 영화를 인터미션 없이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대비효과를 제외하고도 <군체>는 전개가 빠르다. 오프닝부터 경찰에 생화학테러를 예고하는 미친 과학자가 나오고 곧바로 전지현과 고수의 '얼굴'이 스크린을 채운다. 투자 설명회로 자연스레 배경을 설명하자마자 좀비의 등장.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건이 있는 지하 쇼핑몰의 캠핑 매장에서 출발해 화물 엘리베이터를 지나 회의실 등이 있는 사무 구역, CCTV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의 통제실, 마네킹과 재고가 즐비한 물류창고가 <군체>의 활동무대가 된다. 브루스 윌리스가 활약한 <다이하드>처럼 이렇게 고층빌딩 하나를 통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 외부 조력자가 활동하는 무대도 있다. 낯선 좀비 떼에 쫓기면 피로를 느낄 틈도 없는 만 하루 동안의 대소동이 일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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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틸컷 |
| ⓒ 영화 <군체> |
시간은 잘 가는, 어쩌면 천만영화라는 타이틀이 '사회파 감독'이라고 믿는 연상호 감독을 수식하는 최대치는 아닐 것이다. 연 감독은 인터뷰에서 'AI 알고리즘의 보편적 사고가 개별성을 무력하게 만든다'라는 관점에서 시작한 영화라고 밝혔다. 버전업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AI처럼 진화하는 좀비라는 설정은 새로운 종류의 공포였다. 현재의 문제를 운 좋게 해결한다고 해도 매 순간 진화하는 그들이 언제 취약점을 물고 뜯으며 공격할 줄 모른다.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기에 빠르게 끝내야 한다는 시한부의 공포까지도 내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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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군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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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틸컷 |
| ⓒ 영화 <군체> |
<부산행>의 후속작이라는 부담감, 코로나의 유행이란 악조건 속에 제작된 <반도>는 당시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스크린 수를 배정받고도 대중적,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많은 이들이 과한 신파를 지적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메시지의 부재에 있었다. 부산행 사태로 발생한 좀비 아포칼립스를 대하는 주인공들의 가치관이 미약했다. 앞서 말한 '저 새끼 감염됐어.' 같은 두고두고 회자될 대사 한마디 없었던 <반도>는 흥미로운 설정을 영상화하는 데 그쳤고, 결국 미군의 등장이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허겁지겁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AI 알고리즘의 보편성에서 출발한 <군체>가 문제의식은 다행히 <반도>보다는 명확하다. 세정은 대학원생 시절에 지도교수였던 영철의 아버지를 연구비 유용 등으로 고발했다. 영철의 아버지는 세정을 회유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 일을 잊지 않던 영철은 세정에게 보낸 초대장에 "소통의 불완전함으로 일어난 비극"이라는 손글씨를 적어 보내고 완전한 소통이 가능한 좀비 군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소통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순간 영철이 세정에게 패배한다.
<바깥은 여름> <안녕이라 그랬어> 등을 집필한 김애란 작가는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인간과 AI의 가장 큰 차이를 '망설임의 유무'로 정의했다. 연상호 감독은 <군체>를 통해 전하려 했던 메시지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일 것이다. 소통의 불완전함은 필연적으로 긴장감과 갈등을 불러오지만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합의를 찾으려는 과정이 인류를 한 단계 진화시켰다. 인류의 새로운 발자국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이 공존하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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