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이정돈 괜찮아”…6900원짜리 ‘작은 사치’가 뜬다 [비크닉]

이지영 2026. 6. 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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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편의점 냉동고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결국 집어 드는 6900원짜리 아이스크림. 누군가에겐 퇴근 후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고, 누군가에겐 “오늘 이 정도는 괜찮지” 싶은 소비다. 선뜻 집기엔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가격. 바로 그 애매한 가격대가 지금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하겐다즈 얘기다.

1961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시작한 하겐다즈. 국내에서는 1991년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사진 하겐다즈


지난해 상반기 기준 하겐다즈 매출은 약 440억원으로 소매점 빙과 브랜드 매출 1위를 기록했다. 한국하겐다즈의 2024년 6월~2025년 5월 회계연도 매출은 985억원, 전년 대비 12% 증가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2년 연속 경신했다. 전체 빙과 시장이 10년 새 약 30% 쪼그라드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불황일수록 더 잘 팔리는 아이스크림. 그 역설의 배경엔 60년 넘게 쌓아온 브랜드의 힘이 있다.


왜 사람들은 69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는가


하겐다즈의 성장 뒤에는 급격하게 변한 디저트 시장 구조가 있다. 과거 하겐다즈는 편의점 냉동고 안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범접하기 어려운 프리미엄’이었다. 하지만 지금 디저트 시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인 할인점의 600원짜리 아이스크림부터 성수동 젤라또 전문점의 9000원짜리 한 컵, 요거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의 1만~2만원대 배달 디저트까지 가격대가 극단적으로 넓어졌다.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하겐다즈.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이 큰 사치는 포기하면서도 작은 사치만큼은 기꺼이 지갑을 여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하겐다즈의 가격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사진 이지영 기자


소비자의 머릿속 기준점이 상향되면서, 역설적으로 6900원짜리 하겐다즈는 ‘프리미엄 디저트 중 가장 익숙한 선택지’로 재포지셔닝됐다. 새로운 디저트 브랜드에 1만원 이상을 쓰는 건 망설여도, 이미 품질과 맛을 알고 있는 하겐다즈에 6900원을 지불하는 건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한때 독점적 사치였던 브랜드가 디저트 인플레이션 시대를 거치며 ‘가장 접근하기 쉬운 프리미엄’으로 자리를 옮긴 셈이다.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이 큰 사치는 포기하면서도 작은 사치만큼은 기꺼이 지갑을 여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하겐다즈의 가격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 배경도 여기 있다. 수만원짜리 외식이나 명품 소비는 줄여도, 69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는 “오늘 나한테 이 정도는 괜찮다”는 심리적 허들을 넘기 쉽다. 가격이 애매하게 비싸기 때문에 오히려 특별해지는 역설이다.



미국산 아이스크림에 유럽식 이름


하겐다즈는 태생부터 이미지를 파는 브랜드에 가까웠다. 1961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출신 루벤 매투스(Reuben Mattus) 부부가 창업했는데, 브랜드 이름부터 유럽 고급품처럼 들리도록 설계됐다.

‘하겐다즈’는 실존하는 어떤 언어에도 없는 단어다. 낙농 강국인 덴마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창업자가 유럽풍의 이국적인 발음을 조합해 만든 조어다. 초창기 포장에는 실제로 덴마크 지도와 코펜하겐 표기가 들어갔다. 뼛속까지 미국 브랜드지만 처음부터 유럽 프리미엄처럼 팔린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당시 대량생산 제품이 주류였던 미국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하겐다즈는 아이스크림을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조금 더 특별한 디저트로 포지셔닝했다. 실제보다 먼저 이미지를 만든 셈이다.

“언젠가는 모든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하겐다즈 창립자 루벤 메투스가 남긴 문구로, 최고 품질의 아이스크림을 만들겠다는 브랜드 철학을 상징한다. 밑에 사진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하겐다즈 최초 매장, 사진 하겐다즈


하지만 이미지만으로 브랜드가 유지된 것은 아니다. 1966년 출시된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은 제품에 사용할 적합한 품질의 딸기를 찾는 데만 약 6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겐다즈는 크림, 우유, 달걀노른자, 설탕 등 원재료 중심의 품질 전략을 강조해왔다. 빠르게 신제품을 쏟아내기보다 하나의 플레이버와 원재료에 시간을 들이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도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전략은 일관됐다. 고급 호텔·항공사 납품과 프리미엄 상권 중심의 매장 운영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했다. 항공사 프리미엄 서비스에 제공되는 아이스크림, 5성급 호텔 디저트 메뉴에 올라 있는 아이스크림. 소비자가 하겐다즈를 접하는 맥락 자체를 프리미엄으로 만들어온 셈이다. 하겐다즈가 실제로 판 것은 아이스크림 그 자체보다도, 그 아이스크림이 놓이는 ‘자리’에 가까웠다. 소비자들이 6900원을 지불하면서도 이를 낭비가 아닌 ‘나를 위한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리미엄도 희석될 수 있다


하겐다즈가 최근 공들이는 영역은 프리미엄의 강화가 아니라 ‘젊은 프리미엄’이다. 오랜 시간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브랜드가 ‘낡은 프리미엄’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다.

그 배경엔 글로벌 시장에서의 실패 경험이 있다. 중국에서 하겐다즈는 한때 백화점 명품관 옆에 입점할 정도로 초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경기 둔화와 로컬 브랜드 성장 속에 입지가 약화됐다. 하겐다즈의 모회사 제너럴밀스는 올해 중국 내 하겐다즈 매장 운영권을 현지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소매 제품 유통과 푸드서비스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시장에서 초프리미엄 전략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프리미엄 이미지만으로는 성장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불황일수록 더 잘 팔리는 하겐다즈. 전체 빙과 시장이 10년 새 26% 넘게 쪼그라드는 동안, 하겐다즈는 오히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사진 이지영 기자


한국 하겐다즈는 두 갈래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반얀트리·콘래드 등 5성급 호텔과의 협업으로 럭셔리 이미지를 유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수동 팝업스토어, 29CM·아우어베이커리 등 젊은 소비자들이 모이는 채널로 향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톡 선물하기 단독 제품 ‘리얼블랑’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성공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비대면 선물 문화와 결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단단한 질감 탓에 “식칼로도 잘리지 않는다”는 밈(meme)이 확산됐고,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은 200만개를 넘어섰다.

다만 프리미엄의 대중화 뒤에는 해소되지 않은 딜레마도 있다. 하겐다즈는 최근 몇 년간 유튜브 예능 ‘네고왕’ 출연, 편의점 2+1 행사, 대형마트 할인 프로모션을 지속해왔다. 동시에 유크림·카카오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올해 3월 주요 제품 가격을 8.3~16.9% 인상했다. 가격을 올리면서도 할인 프로모션을 반복하는 구조다. ‘비싸서 특별한 브랜드’라는 이미지와 ‘할인할 때 쟁여두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공존하는 것이다.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해야 하지만, 동시에 프리미엄 이미지도 지켜야 한다. 하겐다즈가 안고 있는 딜레마 역시 이 지점에 있다.

이에 대해 하겐다즈 측은 “프로모션은 단순한 가격 경쟁 차원이 아니라 더 많은 소비자들이 하겐다즈만의 특별한 경험을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접점”이라며 “프리미엄은 가격 자체가 아닌 품질과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할인 프로모션을 브랜드 경험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다만 브랜드 경험을 넓히는 과정에서 희소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하겐다즈는 반얀트리, 콘래드 서울 등 5성급 호텔과의 협업을 통해 프리미엄 디저트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은 반야트리 ‘스트로베리 초콜릿 포레 케이크’, 콘래드 서울 호텔 ‘무화과 바닐라 치즈 케이크’. 사진 하겐다즈


하겐다즈의 성공은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가 작은 사치에는 지갑을 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관건은 프리미엄을 더 비싸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팔면서도 특별함을 잃지 않는 일이다. 가장 익숙한 프리미엄이 된 지금, 하겐다즈는 특별함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을 지켜낼 수 있을까.

■ b.멘터리

「 오늘날 브랜드는 개인의 가치관을 담는 중요한 소비 기호죠.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하는 브랜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따라 가며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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