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력 없는 레바논 전쟁 휴전, 미국-이스라엘-레바논의 '동상이몽'
[정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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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의 마을 |
| ⓒ AFP / 연합뉴스 |
6월 3일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워싱턴 디씨에서 미국의 중재로 네 번째 회담을 가진 뒤 휴전 재개에 합의했지만 휴전은 전혀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휴전 합의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합의 자체의 결함 때문이다. 가장 큰 결함은 교전 당사자 중 하나인 헤즈볼라가 참여하지 않은 자리에서 합의된 휴전이고 합의가 헤즈볼라 축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합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헤즈볼라의 완전한 공격 중단과 레바논의 리타니강 남부 지역에서 헤즈볼라 세력의 완전 철수를 종전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후 미국의 도움으로 비국가 세력, 즉 헤즈볼라는 배제하고 전적으로 레바논군이 통제하는 "시범 구역(pilot zones)"을 만드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합의는 "이런 절차를 통해 포괄적인 평화와 안보 합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헤즈볼라가 수용할 리가 없다. 헤즈볼라 수장인 나임 카셈은 4일 성명을 통해 레바논 정부와 이스라엘 간 협상은 "헛된fultile)" 것이고 레바논에게 "굴욕적(humilitating)"이라며 합의 내용을 거부했다. 또한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 공격을 중단시키고 대원들을 철수시키는 휴전은 "항복이고 이스라엘의 목표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는 4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기자들에게 네타냐후 총리는 물론 헤즈볼라 측과도 통화를 했고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는 대비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에 평화가 온다면 아주 좋을 것"이라며 "레바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어떤 휴전이나 종전 합의도 교전 당사자의 참여 또는 합의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교전 당사자로부터 위임을 받아 합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에게 그런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헤즈볼라는 처음부터 레바논 정부가 미국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 직접 대화하는 걸 반대했고 현재 레바논 정부와 헤즈볼라 간에는 대결 구도가 형성돼 있다.
결국 헤즈볼라의 참여도 동의도 없는 협상에서 미국이 중재 및 지지하고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 이뤄진 합의는 사실상 이들 세 국가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걸 '휴전'이란 말이 무색하게 계속되는 교전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휴전과 미국의 지지 및 확인은 기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휴전을 가져오지도, 사실상 기대하지도 않은 휴전이고 오히려 정치적 협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세 국가가 사실상 휴전이나 종전이 아니라 휴전 협상을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점을 통해 잘 드러난다.
미국의 목표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계속되는 교전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국의 영향력을 이용해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 간 협상을 직접 중재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이익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지 않고 그로 인해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도 상관이 없다. 다만 이란과 종전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교전이 중단되거나 완화되기만 하면 된다. 때문에 효력 없는 휴전이라도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휴전 합의에 서명하고 이를 발표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목표는 헤즈볼라를 제거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안전 보장이라는 핑계로 원할 때까지 레바논 남부에 대한 점령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바논과 직접 대화를 통해 헤즈볼라 축출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 건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소득이다. 또 다른 소득은 든든한 뒷배인 미국과 함께 헤즈볼라에 대한 압력과 고립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는 네타냐후 총리 개인에게도 큰 소득이다. 헤즈볼라의 공격에 노출된 이스라엘 북부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고군분투했고 성과를 냈다는 점은 향후 선거와 자신의 정치적 생존에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레바논 정부의 가장 큰 목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중단시키고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킨 후 주민들을 귀환시키는 것이다. 레바논 정부는 이를 위해 헤즈볼라 무장 활동을 중단시키고 헤즈볼라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 또한 약화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레바논 정부에게는 정부보다 영향력이 크고 레바논군보다 많은 병력을 가진 헤즈볼라를 통제할 힘이 없다. 헤즈볼라를 제압하지도 통제하지도 설득하지도 못하는 레바논 정부는 해결책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헤즈볼라에 대한 압박과 고립 작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외국의 힘을 빌려 자국의 정당이자 사회 운동 세력이고 레바논 남부에서 안전, 보건, 복지 서비스 등을 제공해온 헤즈볼라를 약화시키고 무장 활동을 중단시킨다는 건 현실성이 없을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많은 레바논 남부 주민이 여전히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고, 헤즈볼라의 무장 활동에 반대하는 레바논 국민들조차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점령과 지속적인 공격에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설사 헤즈볼라의 무장 활동이 중단되더라고 그것이 이스라엘군 철수와 레바논 남부의 안전 보장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레바논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큰 모험 또는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휴전 합의와 관련해 미국, 이스라엘, 레바논이 휴전이나 종전보다 각자의 정치적 목표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교전 당사자인 헤즈볼라가 참여도 동의도 하지 않은 휴전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 때문에 실효성 없는 휴전 합의라는 평가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헤즈볼라 공격에 대한 무력 대응은 휴전 합의와 별개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휴전 합의가 실효성 없음을 보여주는 듯 이번 휴전 합의 이후 오히려 교전은 더 강화되는 모습이다. <알자지라>의 보도에 따르면 5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국경 마을에 있는 이스라엘군을 공격하고 지대공 미사일로 이스라엘 드론 450대를 격추하는 등 공격을 강화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로 인해 장교 세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표했다. 다른 한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고 이스라엘 언론인 Ynet은 네타냐후 총리가 아직 휴전 이행을 명령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계속되는 교전으로 레바논의 인명 피해는 물론 피란민도 계속 늘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는 3월 2일 시작된 전쟁의 사망자가 6월 5일 현재 3558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란의 사망자 숫자를 넘어선 것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5일 레바논 전체에서 약 14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시작됐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오랜 무력 분쟁에서 비롯된 레바논 전쟁은 더는 이란 전쟁의 부수적인 무력 충돌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별개의 전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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