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 기분전환'... 이발소 팻말 '기분전환'의 황당한 정체

박홍순 2026. 6. 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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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인간과 광기 ① 사악한 영혼

[박홍순 기자]

 얀 샌더스 반 헤메센 <광기의 돌 제거> 1550년
ⓒ 퍼블릭 도메인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 특징의 하나로 정신을 꼽는 데에 주저할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정신이 단일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 이후 이성을 정신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했다. 세계의 원리를 밝히고,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정신적 경향이다.

하지만 정신에는 이성과 상반되는 특성이 있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 감정·충동·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요소들을 포괄한다. 그런데 정신적 착란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착란은 일반적으로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뜻하는데, 망상·환각·착각처럼 심각한 상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 기능의 저하에 머물지 않고, 없는 현상을 보거나 믿는 환각·망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머리의 돌이 광기를 일으킨다는 생각

사람들은 이를 흔히 '광기'라고 부른다. 광기가 인간 정신의 범위를 벗어난 비정상·비인간 영역이기에 사람들로부터 배제·격리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본래 인간 정신에 속한 한 부분이기에 이성은 물론이고 다양한 감성과 더불어 공존해야 할 내적 성질인가? 정신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본질에 다가서는 길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화가 얀 샌더스 반 헤메센(1500~1566)의 <광기의 돌 제거>는 광기를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중세 후반기에 광인을 치료하는 광경이다. 당시 칼로 머리를 가르고 광기의 돌을 제거하는 외과 의사의 모습을 묘사했다.

가운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인물이 광인이다. 수술하는 동안 꼼짝하지 못하도록 두꺼운 천으로 몸과 팔을 의자에 꽁꽁 묶어두었다. 옆에서 붉은색 모자를 쓴 사람이 칼로 이마를 째고 무언가를 꺼내는 중이다. 탁자 위에는 갈고리 모양의 다른 수술칼을 비롯해 관련 도구들이 놓여 있다. 오른편으로는 신부로 보이는 사람이 두 손을 잡고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듯하다.

수술은 대체로 이발사들이 맡아서 했다. 중세 의사들은 피를 보는 수술을 천하게 여겨 경멸했고, 교회도 사제들에게 피를 보는 외과적 처치를 금지했다. 이발사들이 평소에 면도용 칼을 다루는 능숙한 손재주가 있었기에 수술을 맡았다. 이를 뽑는 치과 치료, 종기를 제거하고 봉합하는 등의 외과 수술을 수행했다. 일부 이발사들은 이발소 앞 팻말에 '면도, 헤어컷, 기분전환'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기도 했다. 기분전환이란 간단한 뇌수술을 의미했다.

유럽에서 유행한 이발사들의 광기의 돌 제거 장면을 여러 화가가 작품에 담았다. 중세 이발사들은 온갖 의료행위를 했다. 독일 인문주의자이자 풍자 작가 제바스티안 브란트는 대표작 <바보 배>에서 이발사들의 의료행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이발사가 약초를 고아서 제조한 고약으로 곪은 데, 찔린 데, 뼈 부러진 데, 칼에 베인 데 등 아무 상처에나 덕지덕지 발라대니 못 보는 진료과목이 없다네."

그 시대에는 뇌에 작은 돌이 있어서 광기를 불러일으킨다고 믿었다. 17세기 후반에도 정신 질환자를 '머리에 돌이 든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발사가 막 그 돌을 꺼내는 중이다. 왼쪽의 막대 위에는 그가 꺼냈다고 홍보하는 '광기의 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실제로 돌이 들어 있을 리는 없고, 피 묻은 돌멩이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꺼내서 보여주었다고 한다. 혹은 뇌를 싸고 있는 뼛조각 일부를 떼어냈을 수도 있다.

외과 의사 노릇을 했던 이발사들이 머리에 돌이 있다고 진단한 광인들 가운데, 정말 착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두통 환자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신부나 수녀까지 일부 가담하는 것으로 봐서, 또한 뒤편으로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이 익숙한 광경인 듯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봐서 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은 화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또 다른 의문을 던져 준다. 의자에 결박된 채 황당한 수술을 받는 사람이 광인인가? 아니면 광기의 돌이 있다며 이마를 째는 이발사들, 이를 믿고 방관하는 교회나 당국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광인인가? 착란증을 보이는 사람이나, 이를 격리하고 수술로 치료하겠다며 나서는 사람이나, 이러한 현실을 방관하는 사람들이나 사실은 모두 광인임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광기를 조롱과 배제 대상으로 규정

전통사회에서 광인은 동정과 함께 집단적 놀림이나 잔혹한 치료의 대상이기도 했다. 과거 우리 사회만 해도 길에 광인이 나타나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놀리는 경우가 흔했다. 유럽에서는 광인을 둘러싼 이중성이 더 극단적인 분리로 나타났던 듯하다. 중세 유럽인들의 일상과 사고방식 기록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네덜란드 역사가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다음처럼 서술한다.

잔인함과 동정심의 첨예한 대조는 중세의 사법과 생활에 뚜렷이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과 광인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잔인함이, 다른 한편에서는 연민과 다정함이 있다. (…) 믿기 힘들 만큼 소박한 잔혹함, 천하고 잔인한 못된 장난, 불쌍한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한심한 근성에는 권리 감정의 충족이라는 고상한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그에 의하면 중세 유럽에서 사회적으로 비정상으로 규정된 대상에 대한 격리와 처벌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었다. 15세기에 유럽 도시들은 광인들을 도시의 경계선 바깥으로 몰아냈다. 시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 추방 조처가 내려졌다. 중세와 르네상스 전 시기에 걸쳐 이들의 교회 출입을 금지했고, 강제로 가둬두는 장소가 곳곳에 있었다.

특히 중세 끝 무렵은 사법의 잔혹함에 사로잡힌 피의 시대였다고 한다. 범죄자들만 대상이 아니었다. 강도나 불온한 패거리만이 아니라 "마녀와 마술사, 또는 남색가를 대상"으로 한 처벌이 횡행했다. 중세 후반부를 휩쓴 마녀사냥의 광풍도 광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의 일종이었다. 광기가 악마나 마녀에 의해 생기는 증상으로 이해했으니 말이다.

하위징아가 보기에 마녀사냥은 마법과 이단이라는 개념을 뒤섞어 광기에 대한 대대적 대응에 나선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대개 신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까지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전대미문의 비행에 대한 혐오·공포·증오의 감정 전체가 이단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중세에 광기는 마녀와 마찬가지로 사악한 영혼이었고, 악으로 분류되었다.
 테오도르 제리코 <강박 광증 여자>, <고위군인 착란증 남자> 1822년
ⓒ 퍼블릭 도메인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강박 광증 여자>와 <고위군인 착란증 남자>는 18~19세기 유럽에서 광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의 초상화다. 제리코는 알고 지내던 의사의 도움을 받아 여러 광증 환자들을 접하며 그들의 표정과 태도를 여러 점의 작품에 담았다.

<강박 광증 여자>는 강박장애 환자를 묘사하고 있다. 특정한 생각·충동·모습이 일상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그림은 브란트가 <바보 배>에서 강박 광증의 하나인 병적인 질투를 묘사한 모습과 흡사하다. "입술이 파랗고, 몸은 반쪽에다, 비루먹은 개처럼 비쩍 말랐네. 또 두 눈에 핏발이 섰고 사람을 볼 때 곁눈질로 살피지." 병적인 질투도 상대의 과거와 현재 행동을 끊임없이 의심하여 정상적인 일상과 관계가 불가능해지는 강박장애의 일종이다.

<고위군인 착란증 남자>는 집에서 쓰는 담요를 고위 장교의 망토처럼 두르고 동전을 훈장처럼 목에 걸고 있다. <바보 배>에서 병적인 허세로 구분한 증상과 비슷하다. "빛나는 무훈을 세웠노라 침을 튀기고 정말인지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거품을 물지만, 몽땅 허장성세, 깡그리 거짓부렁일세." 망상에 빠져 주위의 누구와도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허세로 가득한 세계에 갇혀 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광인을 위험인물로 분류하는 사회

광인을 사악한 영혼에 휩싸인 위험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배제·격리 대상으로 보는 태도는 중세 후반만의 현상이 아니다.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중적인 인식에 담긴 배타적인 태도는 여전히 완강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정신병원이 혐오 시설로 인식되어 님비 현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자기 거주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다. 쓰레기 소각장, 교도소, 장애인 시설 등과 함께 정신병원도 자주 논란이 된다. 도심에 치료 시설이 없으면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음에도 오히려 점점 심해지는 추세다.

정신병원 설립 예정지마다 대부분 "정신병원 설립 결사반대" 플래카드나 구호가 요란하고, 주민들의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심지어 기존에 운영되던 정신병원도 지역 주민 반대에 폐쇄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난폭한 환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곳, 감옥과 다름이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교육 환경과 안전을 이유로 주민들이 건축허가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도 한다.

정신 질환자에 대한 배척의 태도를 강화하는 데는 언론의 부추김도 한몫을 하고 있다. 살인사건 가해자의 정신 병력이 있으면 이를 곧바로 '정신 질환자 범죄'로 보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범죄가 발생한 사회적 배경을 비롯한 다른 요소는 배제하고 사건의 원인이 정신 질환에 있다는 인식을 퍼뜨린다. 몇몇 설문조사에 의하면 언론 매체가 정신 질환에 부정적 편견을 갖는 데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다.

과거에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가 크게 보도되면서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더 번졌다. 조현병만이 아니라 정신 질환자 전체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을 알기 위한 설문조사에서 대체로 응답자의 약 3분의 2가 '정신 질환자는 위험한 편'이라는 생각을 밝힌다. 그 결과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대책으로 격리의 필요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다수의 연구와 통계는 정신 질환 자체가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실제의 통계를 봐도 정신 질환에 의한 강력 범죄는 전체 범죄의 0.4~0.68% 수준으로, 일반인에 의한 강력 범죄 비율보다 낮게 나타난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율은 더 낮다.

범죄의 원인을 정신 질환과 성급하게 연결하는 보도 행태는 사회적으로 정신 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찍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흔히 '낙인효과'라고 부른다. 정신 질환과 강력 범죄 간의 연관성을 부각함으로써 이들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을 강화한다. 사회적으로 배제와 격리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더 확대된다. 취업·관계·주거 등에서 불이익이 증가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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