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붕대 투혼’ 토백이의 집강아지 견생2막 [개st하우스]

이성훈,전병준,이수연 2026. 6. 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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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발에 붕대를 감고 튀르키예 지진 피해자들을 구조해 '붕대투혼'으로 알려진 인명구조견 토백이가 지난달 30일 은퇴했다. 9살의 토백이는 민간 무상분양 대상견이 되었고, 평생 함께 출동한 핸들러 김철현 소방관의 반려견으로 여생을 살게 됐다. 전병준 기자

“재난현장에 진입하기 전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건 119구조견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을 들이는 순간, 날카로운 철근과 유리에 찔리고 베이거든요. 리트리버 토백이는 지난 6년간 총 235건의 인명구조에 투입됐고, 저의 ‘앞으로’ 한 마디에 두려움을 억누르고 현장에 몸을 던졌습니다. 현장을 훨훨 날아다녔던 녀석이 어느새 은퇴를 맞이했네요. 고생은 제가 다 시켜놓고 남은 돌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인명구조견 토백이의 핸들러, 김철현 소방관(47)

지난달 23일 오전, 경북 경산의 한 호수공원. 푸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체중 25㎏의 건장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벌러덩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녀석이 입은 조끼에는 ‘119구조견 토백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콧등과 발 곳곳에 남은 크고 작은 흉터들은 지난 6년간 사선을 넘나들었던 험난한 견생을 대변하는 듯했죠.

토박이가 단잠을 깬 건 자리를 잠시 비웠던 김철현 소방관이 100m 밖에서 걸어올 때였습니다. 발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눈을 뜬 녀석은 김 소방관이 혓바닥으로 ‘똑딱’ 호출음을 내자 쏜살같이 달려가 그의 곁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김 소방관은 “이 정도 체력과 실력이면 당장 국제 인명구조견 대회에 나가도 순위권에 들 것”이라고 자랑하며 “아직 은퇴하기엔 너무 아까운 친구”라고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토백이는 지진과 붕괴, 폭발 등 위험천만한 재난 현장마다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던 베테랑 구조견이었습니다. 3년 전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무너졌던 튀르키예 현장에서, 다친 앞발에 하얀 붕대를 감고 수색을 이어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던 바로 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강인했던 토백이가 현역 활동을 마치고 공식 은퇴한 건 불과 3주 전입니다. 하지만 퇴직 후 연금으로 노후를 보장받는 사람 공무원과 달리, 국가봉사동물인 구조견들은 퇴직금은커녕 근무지 구석에서 무작정 입양 신청을 기다려야 하는 서글픈 운명에 놓이곤 합니다.

다행히 토백이는 이례적으로 은퇴와 동시에 따뜻한 품에 안겼는데요. 녀석의 손을 잡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평생의 파트너, 김철현 소방관이었습니다. 김 소방관은 “젊을 적 고생은 내가 다 시켜놓고, 나이 들어 약해지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며 “토백이를 가족으로 맞이하는 데 흔쾌히 동의해 준 아내와 자식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식 같은 토백아, 현장에 몰아넣어 미안했다”

개st하우스 팀은 지난달 23일 김 소방관의 자택인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현관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두 견공이 얼굴을 내밉니다. 주인공 토백이와 김 소방관이 앞서 기르고 있던 시 보호소 출신의 4살 소형견 루비였습니다. 전국에 단 30명뿐인 인명구조견 인솔자의 반려견답게 두 견공은 낯선 취재진에게 잔짖음 하나 없이 의젓하게 다가와 코 인사를 건넸습니다.

국가 봉사 동물은 관세청 탐지견, 군경 수색견, 장애인 안내견, 소방 인명구조견 등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특히 인명구조견은 인솔자가 목줄로 통제하지 않아도 수백 미터 밖에서 지시를 이행해야 하기에, 야생동물이나 음식물을 마주해도 흔들리지 않는 절제력 그리고 위험천만한 현장에 몸을 날리는 대범함을 갖춘 그야말로 최고의 엘리트 요원으로 꼽힙니다.

전국에 단 서른 마리뿐인 119 인명구조견 중에서도 토백이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는데요.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이 계기였습니다. 6만명이 숨지고 13만명이 다치거나 실종됐던 당시, 토백이를 포함한 4마리의 119 인명구조견이 현지 실종자 수색을 돕기 위해 파견됐습니다. 그때 토백이는 깨진 유리에 찔려 앞발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붕대를 감은 채 수색을 이어가 수십 미터 지하에 고립된 실종자 8명을 찾아냈습니다. 이른바 ‘붕대 투혼’이었죠. 이 사연이 tvN의 인터뷰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한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인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구조견이라도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김 소방관은 과거 토백이의 구조 장면이 담긴 보디캠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상 속 토백이는 고층 건물의 붕괴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색하던 중 거대한 낭떠러지 같은 잔해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잔해, 날카로운 유리와 가시처럼 튀어나온 철근 가닥이 가득한 바닥. 용맹한 모습으로만 기억된 토백이에게도 위험하고 두려운 현장이었습니다. 김 소방관은 “앞으로” “찾아”라며 그런 토백이를 다그쳤고, 녀석은 앞발로 버티고 선 채 김 소방관의 손을 핥으며 주저합니다.


그러나 생존자를 한시 빨리 찾아야 하는 위급 상황에서 그 임무를 해낼 수 있는 건 인간보다 1만 배 정밀한 후각을 가진 토백이 뿐이었습니다. 김 소방관은 앞장서 붕괴 현장으로 진입해 토백이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단호한 어투로 “앞으로”를 거듭 외쳤습니다. 그제야 토백이도 조심스럽게 해당 구역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영상을 다시 보던 김 소방관은 “동료들은 저를 토백이 아빠라고 부르지만, 그런 자식 같은 아이를 위험한 곳으로 밀어 넣으며 늘 미안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구조견에서 은퇴했으니 더는 위험한 현장을 누빌 일이 없는 토백이. 하지만 여전히 현역 구조견처럼 각이 딱 잡혀 있습니다. 김 소방관이 출동의 시작을 알리는 “가라”를 외치자, 소파에 누워있다가도 냉큼 김 소방관의 왼편에 똑바로 섭니다. 김 소방관이 가는 곳마다 자석처럼 달라붙던 녀석은 “앉아, 엎드려, 서, 짖어” 구령에 맞춰 정확히 움직였고, “앞으로” 지시가 떨어지자 달려가 수색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토백이랑 남편 지켜달라고, 늘 기도했어요”

김 소방관만 바라보던 토백이가 돌연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현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외출했던 부인 장선혜 씨가 집으로 돌아온 겁니다. 선혜씨의 무릎을 베고 편안하게 누운 토백이를 보며 김 소방관은 “군기 빠진 걸 보니 토백이도 집 강아지 다 됐다”며 웃었습니다.

사실 은퇴 구조견을 분양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른 동물 등록은 기본이고, 주기적인 산책 및 건강검진도 해야 하며 가족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대형견이 생활할 수 있는 넉넉한 주거 공간도 채점 대상입니다. 김 소방관은 “전국의 구조견 핸들러 소방관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이 있는데, 다들 은퇴 구조견을 입양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아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은퇴한 인명구조견 30마리 중 이처럼 기존 담당 소방관의 품으로 돌아간 경우는 단 4마리에 불과합니다.

선혜씨 역시 사람 어른만 한 대형견을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그저 쉬웠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토백이를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이자 자식처럼 대하는 남편의 애틋한 진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혜씨는 “뉴스에서 남편과 토백이의 출동 소식을 볼 때마다 ‘하나님, 우리 남편이랑 토백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서 “함께 사선을 넘나든 토백이가 남편에게 어떤 존재인지 너무 잘 알기에 은퇴 후 입양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고 웃었습니다.

오전 10시는 토백이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시간입니다. 이날도 토백이는 ‘119구조견 토백이’라는 자수가 새겨진 주황색 조끼를 입고 김 소방관 부부와 함께 동네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아파트 승강기에 오른 토백이는 익숙한 듯 가장 깊숙한 구석 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김 소방관은 “덩치 큰 토백이를 보고 이웃 주민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르친 펫티켓”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조견들은 대부분 래브라도 리트리버나 말리노이즈 같은 대형견이다 보니, 은퇴 후 민간에 입양된 뒤에도 이웃들로부터 입마개 착용 요구나 승강기 탑승 거부 등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에는 깎아지른 바위산과 붕괴 잔해를 거침없이 뛰어넘으며 실종자를 찾았던 영웅인 토백이도 어느덧 9살의 노견입니다.사람 나이로 환갑에 가까운 은퇴 구조견들은 과격한 공놀이나 달리기 대신 가벼운 걷기 위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합니다. 부인 선혜씨는 “토백이는 다른 개나 고양이를 봐도 짖거나 달려들지 않아 함께 산책하기 정말 편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산책하던 중 토백이를 단번에 알아보는 팬들도 여럿 만났습니다. 노란 학원 버스에 탄 초등학생들은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며 토백이를 반겼습니다. 이에 김 소방관은 토백이의 장기인 제자리 점프, 우렁차게 짖기를 보여주며 화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가던 동네 주민은 기념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유모차에 탄 아기가 작은 고사리손으로 커다란 토백이의 얼굴을 반죽하듯 주무르자, 토백이는 마치 손주에게 무동 태워주는 할아버지처럼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여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평생 봉사했지만 퇴직금 0원…저희가 대신 전했습니다

지난 6년간 토백이는 인명구조견으로서 총 235건의 현장에 출동해 소중한 인명을 구조하고, 잔해에 묻힌 실종자를 찾아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은퇴 구조견이 받는 건 일부 병원비 및 사료비 지원뿐입니다. 퇴직금이라고 할 만한 실질적인 혜택은 없는 실정이죠. 이에 개st하우스가 나섰습니다. 기업 후원 물품을 모아 토백이를 위한 소정의 민간 퇴직금을 마련했습니다.

우선 가전제품 업체 로보락이 로봇청소기와 무선 흡입청소기를 기증했습니다. 토백이처럼 덩치가 큰 대형견들은 매달 쇼핑백 2개 분량의 털이 빠질 만큼 실내 털 날림이 심합니다. 기증된 로봇청소기는 하루 세 번씩 흡입과 물청소를 자동으로 해결하고, 무선 청소기는 소파와 침대 등 가구 틈새에 박힌 털을 말끔히 제거해 토백이 가족의 쾌적한 생활을 돕게 되었습니다.

펫푸드 업체 네추럴코어는 육포와 말린 열빙어 등 토백이가 좋아하는 영양 간식 1달 분량을 선물했습니다.


토백이의 명예로운 은퇴 소식에 개st하우스 구독자 70여명도 따뜻한 축하 댓글로 마음을 보탰습니다. 구독자들은 “튀르키예의 영웅, 그간 고생 많았다” “토백이를 품어주신 김 소방관 부부에게 감사한다” “헌신한 은퇴견에 대한 제도적 보상을 조속히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구 중앙119구조본부에 세워진 구조견 추모비에는 먼저 별이 된 구조견 100여 마리의 근무지와 생존 기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구조견들의 평균 수명은 12~15년으로, 일반 대형견의 평균 수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덧 아홉 살에 은퇴한 토백이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6년 남짓인 셈입니다.

김 소방관은 “토백이를 위험한 곳에 수색 보낼 때마다 내 자식을 강가에 내놓는 것처럼 늘 미안했다”면서 “이제 토백이 아빠로서 여생을 행복하게 돌봐주겠다”며 따뜻한 다짐을 전했습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인턴=이수연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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