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상자 속의 양’ 챗GPT와 써보니 “첨엔 내 각본 칭찬하더니…”

나원정 2026. 6. 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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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개봉 영화···‘상자 속의 양’
日거장 고레에다 내한 인터뷰
AI 소재, 챗GPT 각본에 활용
5일 내한 인터뷰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망자를 휴머노이드로 부활시킨다는 소재의 영화 '상자 속의 양'을 만들며 자신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나면 꼭 전하고픈 말이 있었다"면서 "누구나 가질 법한 이 보편적인 감정에서 영화를 출발했다"고 밝혔다. 사진 미디어캐슬

" “AI(인공지능)가 해주는 충고는 옳지만 재미가 없더군요. 이런 식이라면 모든 사람이 쓰는 게 다 비슷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64) 감독이 휴머노이드 소재의 신작 ‘상자 속의 양’(10일 개봉)의 각본 작업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하며 느낀 AI 창작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日 거장 "챗GTP 처음엔 내 각본 칭찬했지만…"


‘상자 속의 양’은 7살 아들 카케루를 사고로 잃은 부부가 아들과 감쪽같이 닮은 휴머노이드(쿠와키 리무)를 입양하고 겪는 애도의 여정을 그렸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2018),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과 찍은 ‘브로커’(2022) 등 가족영화로 이름난 고레에다 감독이 직접 원안·각본·연출·편집을 맡아 올해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상자 속의 양'(6월 10일 개봉)은 아이를 대신해 한 집에 들어온 7세 설정의 휴머노이드가, 가족이 된다는 기쁨과 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함께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미디어캐슬
영화 홍보를 위해 아역배우 쿠와키 리무와 전날 내한한 그를 5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배급사 NEW 사옥에서 만났다. 평소 AI를 쓰는 편이냐는 본지 질문에 그는 먼저 “(번역 기능 정도를 제외하면) 전혀 AI를 쓰지 않고 지내왔다”고 답했다. 디지털 영상이 일반화한 시대에 여전히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아날로그파다웠다.
그런 고레에다 감독도 이번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런 (휴머노이드) 소재의 영화를 만드는데 AI를 전혀 쓰지 않는 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프로듀서가 했고, 내가 쓴 각본을 챗GPT에 읽게 해봤다. 공을 주고받듯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각본 작업을 좀 했는데, 처음엔 챗GPT가 아주 훌륭한 각본이라고 칭찬해주면서 극 중 엄마의 인물상을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아이의 고뇌가 더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조언해주더라”고 돌아봤다. 이어 “내가 원하는 식의 피드백은 아니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영화 '상자 속의 양'(6월 10일 개봉)에서 죽은 아들을 본뜬 휴머노이드 역할은 아역 배우 쿠와키 리무(10)가 로봇의 기묘함과 천진난만함을 오가며 연기했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발탁된 그를 두고 고레에다 감독은 "촬영하며 테이크를 거듭할 때마다 대사 뉘앙스나 분위기를 바꿔가는 놀이 감각, 약간의 응용력이 있다고 느꼈다"고 칭찬했다. 사진 미디어캐슬
그는 “각본을 읽는 사람 본인만이 가진 약간 일그러진 부분도 있는, 그런 의견을 받고 싶었다”면서 “AI는 너무 바른 대답만 한다”고 가장 무난한 정답을 말하도록 설계된 AI의 통계적 평균화의 한계를 꼬집었다. “AI가 해주는 충고를 다 반영시키면 옳은 각도는 될 것 같은데 결국 다 똑같은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현 수준으론 AI 창작은 시기상조란 견해를 내놓았다. “영화에 나오는 관계도 실패를 하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AI는 그런 부분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챗GPT와의 관계는 이 영화로 끝내고, 앞으로도 인간들의 힘을 결집해서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서 AI 부활 사업 "죽은 이는 누구의 것인가"


‘상자 속의 양’은 지난달 칸영화제 공개 당시 그의 작품으론 이례적일 만큼 낮은 평점을 받았다. 소재의 첨예함에 비해 AI에 대한 연출자 태도가 “지나치게 감상적”(사이트 앤 사운드)이란 평가가 주를 이루며 무관에 그쳤다. 정작 이날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가졌다고 직접 밝힌 AI 기술에 대한 생각들은 오히려 감상적이기보단 비판적인 쪽에 가까웠다.
애초 ‘상자 속의 양’은 2년 전 중국 상하이 방문길에 중국에서 생성형 AI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비즈니스가 활발히 이뤄진다는 기사를 읽고 현지에서 관련 사업가들을 취재한 경험이 토대가 된 작품이다.
마침 일본에서도 작고한 스타를 AI로 부활시키는 시도가 있었다. 한 예로 2019년 NHK 연말방송 무대에선 1989년 사망한 전설적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노래하는 모습부터 창법까지 되살려 홀로그램으로 등장시켰다. 이를 통해 고레에다 감독이 가진 의문이 영화의 단초가 됐다. 바로 ‘죽은 이의 존재는 대체 누구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영화 '상자 속의 양'(6월 10일 개봉)에서 건축가이기도 한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사진 아래)는 생전 아들에게 모질게 했던 말을 자책하고 후회하지만, 휴머노이드 아들(쿠와키 리무, 사진 위)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사진 미디어캐슬
아버지를 갑자기 여읜 경험이 있는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도 “아버지가 만약 눈앞에 나타난다면 정말로 전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는 소중한 이를 잃어봤다면 누구나 느낄법한 이 보편적 감정이 정말로 실현됐을 때의 윤리적 책임, 기술이 불러올 또 다른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렇게 출발한 영화는 표면적으론 우화적이지만, 들춰볼수록 신랄한 구석이 많다. 영화에서 AI를 길고양이와 닮은꼴로 묘사한 부분이 한 예다. 4일 내한 기자회견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는 하는데 너무 가까이 오지는 않는 존재. AI가 정말로 고양이 같은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다. 언뜻 ‘고레에다 영화’다운 친근함과 일상성이 깃든 비유 같지만, 극 중 휴머노이드 아이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반대의 상상을 하게 된다.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좋았던 기억만을 편집해 제작된 이들은 입양 가정에 따라 또다시 폭력과 유기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들이 마치 길고양이처럼 인간사회와 불가피하게 공존하되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게 되는 배경이다.

AI 발달로 인간이 지구상 2등 존재 된다면…


‘상자 속의 양’은 또 “부모든 사람이든 그렇게 간단히 성장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와도 연결되는 작품. 이번엔 그저 부모가 철들어가는 과정 이상의 의미를 담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휴머노이드 카케루가 인간 부모를 벗어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새롭게 자각하는 과정을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를 뛰어넘어 더 큰 존재가 되는 모습”이라 설명하며, 나아가 이것이 “지구 위에서 인간이 두 번째 자리에 위치하게 되는 이야기”, 다시 말해 “생성형 AI가 (계속해서 발전하며) 인간을 넘어서게 됐을 때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극 중 안드로이드 아이와 인간 아이의 대화를 통해 “(로봇은 못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인간 아이는 답하지 못한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지니게 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얻은 결론을 “상상력”이라 답했다.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 내용에서 따온 ‘상자 속의 양’이란 제목처럼 이 영화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영화 내내 거듭 강조한다. 이를테면 아들을 잃은 슬픔과 자책에 휩싸인 나머지 오토네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남편과의 관계를 돌아보거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눈뜨며 진짜 애도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무언가를 보면서 전혀 다른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정원에 있는 (죽은 아들이 심은) 레몬 나무와 (안드로이드 아들이 심은) 올리브 나무를 보면서 아이들을 한명씩 겹쳐서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런 능력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면서도 “최근엔 인간도 상상력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도 느낀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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