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 분별 못하고 나댄 '여왕', 왕관은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용홍근 2026. 6. 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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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과거'로 미래를 덮으려 했던 오만… 민심은 '마이너스 유산'을 거부했다

[용홍근 기자]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6.3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31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박씨 왼쪽이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오른쪽이 측근이자 국정농단 사건 당시 변호인이었던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
ⓒ 소중한
시대를 착각한 오만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통할 것이라 믿었던 구태의연한 맹신이었을까. 자칭 타칭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 막판, 그야말로 전격 등판했다.

선거의 판세를 뒤흔들 수 있다는 해묵은 오판 속에 그는 강원, 부산, 울산, 진주, 충남, 대구, 창원 등 보수의 텃밭과 격전지를 가리지 않고 누볐다. 도도하게 흐르는 민심의 경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거침없는 행보였다.

차갑게 등 돌린 민심

그러나 베일이 벗겨진 성적표는 처참하다 못해 잔인했다. 그가 영향력을 과시하려 했던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심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대구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 보수층의 막판 결집을 자극해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 전국적 판세에서는 단호한 거부를 당한 참패다.

이번 선거 결과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직도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인가? 아니, 그는 애초에 다시 정치판에 호출될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는가.

옛말에 패군지장 불가이언용(敗軍之將 不可以言勇)이라 했다. 전쟁에 패한 장수는 용맹을 논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숙하고 성찰하는 것이 도리라는 뜻이다. 하물며 박 전 대통령은 단순한 선거 패장이 아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되어 쫓겨나고 사법적 단죄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 사면을 받았다고 해서 그에게 지운 역사적 책임과 과오까지 씻겨 나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었으나 결국 깊은 상처를 입어야 했던 국민을 향해 평생 자숙하며 숨죽여 사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다.

과거의 유령 대신 미래 선택

그러나 그는 선거 막판, 보수 결집의 '치트키'라도 된 양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여당의 무리한 법안 발의 등 여권발 변수로 요동치던 선거판에 올라타, 특정 후보들의 손을 잡고 "내가 왔으니 표를 달라"는 식의 퇴행적 정치를 재현했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김부겸 후보가 초반 선전에도 막판 보수 결집의 벽을 넘지 못한 배경에는 분명 박 전 대통령의 유세가 대구 보수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인 영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박근혜의 '정치적 부활'을 논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선거판을 20년 전 '묻지마 친박' 시절로 후퇴시키려는 오만한 도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거쳐 간 행적은 오히려 보수의 한계를 폭로하는 몰락 지도가 되었다. 그가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했던 전통적 지지 기반마저도 이번엔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강원과 충남의 유권자들은 과거의 향수에 기대 표를 구걸하는 정치 구태에 냉정한 심판을 내렸고, 부산과 울산 역시 '과거의 유령' 대신 미래를 선택했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박근혜'라는 석 자에 흔들리는 맹목적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의 등판은 보수층을 결집하기는커녕, 오히려 "또다시 국정농단 시절로 돌아갈 순 없다"는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의 위기감을 자극하며 거센 정권·과거 심판론에 불을 지폈을 뿐이다.

전통적 지지 세력이 있는 경남과 대구를 제외한 사실상의 전멸, 박근혜 개인이 가진 정치적 자산이 이제 '마이너스' 수준으로 파산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다. 또한,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 역사상 최고 득표율(45.05%)을 기록한 김부겸의 선전은, 박 전 대통령의 안방에서조차 '과거로의 회귀'에 저항하는 민심이 절반에 육박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제 그만 부끄러움 알기를

이번 지방선거는 '부패해도 유능하다'던 보수의 신화가 끝장난 선거이자, '박근혜가 움직이면 표가 나온다'던 해묵은 미신이 완전히 파기된 역사적 분기점이다. 국민은 2014년 세월호 참사의 무능과 2016년 국정농단의 수치심을 결코 잊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냉혹한 투표로 되갚아 준 것이다.

이제 '선거의 여왕'이라는 유통기한이 지난 왕관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이 이번 패배를 보고도 느낀 점이 없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또 다른 죄악이다.

두 번 다시 정치적 영향력을 획책하며 선거판을 흐리지 말라. 사리 분별 못하고 나댄 끝이 무엇인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똑똑히 보여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 앞에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는 하나뿐이다. 이제 그만 부끄러움을 알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예비역 공군 중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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