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 모델 찾아요"... 첫사랑 소녀 때문에 한 거짓말
[김상목 기자]
16살 '코너'는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 아빠가 실직해 가세가 기울어 학비 저렴한 가톨릭 스쿨로 전학하니 흡연과 주먹질 난무하는 아수라장. 게다가 구시대 교칙까지 그를 괴롭힌다. 학교의 문제아 '배리'가 전학생인 그를 먹잇감으로 노리니 설상가상이다.
그나마 괴짜 '배런'이 유용한 팁을 알려준다. 그와 잡담 중 매력적인 소녀를 발견한다. 콩깍지가 씐 코너는 연락처를 얻고자 밴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모델을 찾는다며 접근한다. 모든 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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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 스트리트> 스틸 |
| ⓒ 누리픽쳐스 |
스쿨밴드는 전업 음악인과 아마추어의 경계에 선 존재다. 프로라 하기엔 어설프고 인생을 음악에 꼭 바치겠다는 비장한 결의도 아직은 먼 미래 이야기다. 종종 스쿨밴드에 가입하는 동기는 차마 대놓고 말하긴 좀 부끄럽고 민망한 사연이기 일쑤다. 코너 역시 그랬다. 한눈에 반한 소녀에게 접근하는 건 쉽지 않다. 그녀는 아마추어 모델로 활동하며 성인 남자친구가 있다고 한다. 자신 같은 고등학생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반드시 다가가고 싶다.
조숙한 여자애들에게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만한 게 무얼까? 음악 애호가인 형에게서 어깨 너머 풍월로 주워들은 최신 음악 유행을 주워삼키며 밴드 활동을 한다고 둘러댄다. 라피나에겐 더블린을 벗어나 패션 산업의 본무대 런던으로 가고픈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아직 본격 프로모델이 아니기에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상태. 스쿨밴드라도 뮤직비디오 주인공이라면 나쁜 제안은 아니다. 코너는 졸지에 진짜 밴드가 필요하다.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밴드이지만, 하려면 제대로 하고 싶다. 답답한 학교생활에 싫증난 급우들 가운데 재능을 모아야 한다. 졸지에 밴드 매니저로 임명된 배런의 소개로 만능 연주자 '에이먼'을 기타리스트로, 동네 유일한 흑인 '잉기'를 화제성 고려해 키보드로, 벽보 보고 찾아온 '래리' & '개리' 형제를 드럼과 베이스로 기본 구성을 완료한다. 당대 히트곡을 커버하는 걸로 출발하지만, 음악에 박식한 형은 그걸로는 여자친구 꾀일 수 없단다. 자작곡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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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 스트리트> 스틸 |
| ⓒ 누리픽쳐스 |
개방적인 분위기의 예수회 교육기관에서 수구적인 '백스터' 수사가 교장으로 군림하는 가톨릭 학교로 옮긴 건 코너에겐 견디기 힘든 위기다. 교사를 우습게 알고 수업태도 엉망인 학생들도 백스터가 등장하면 바짝 긴장할 정도로 억압적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지배하는 교장은 기성세대와 구체제의 부정적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교칙에 구두는 검정색만 착용하라며 형편 때문에 새 구두를 살 수 없는 주인공에게 억지 벌을 주는 것에서 그런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게다가 끔찍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마음이 편치 않다. 부모님의 불화는 아빠의 실업 상태가 길어지며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다툼이 일상이 되니 코너는 늘 음악에 묻혀 지내는 형의 방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다. 제법 유망한 청년이던 형조차 동네 백수로 전락한 가운데, 경제난이 겹쳐 아일랜드 청년은 다들 철천지 원수같던 영국으로 떠나는 참이다.
급우들은 딱히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니 방황하며 시간 죽이기에만 골몰한다. 자신감도 향상심도 사라진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뤄질 리 없다. 청소년들은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며 술과 약물에 찌든다. 그런데 그들의 부모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빈곤과 실업의 대물림이 세대로 계승되는 셈이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경제난이 겹치는데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런 지경이니 주인공이 여자친구 꾀기 위해 급조 밴드에 열중하는 걸 누가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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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 스트리트> 스틸 |
| ⓒ 누리픽쳐스 |
시간 때우러 거실 텔레비전 주변에 둘러앉은 가족, 음악에 박식한 형이 한창 떠오르던 뉴웨이브 밴드 듀란듀란의 대표곡 'Rio'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온다. 고지식한 아빠는 공연 실황이 아니라 뮤직비디오로 승부하는 실력 없는 밴드라 혹평하지만, 다른 가족은 세상이 변했으며 뮤직비디오는 예술적 영상 실험이라 반론한다. MTV 등장과 함께 팝 트랜드가 급격하게 변하던 시절의 초상이 재현되는 찰나다. 시대는 펑크에서 뉴웨이브와 테크노로 이행하던 중이다.
듀란듀란에 이어 당대 인기절정의 'A-ha'가 언급된다. 밴드를 한다고 둘러대자 라피나는 아하 노래는 알 테니 불러보라며 주문한다. 머뭇거려보지만, 그래도 대표곡 'Take on Me' 한 소절쯤은 흥얼거릴 수 있다. 그만큼 대중음악이 갖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밴드 활동에 돌입하며 그들이 커버하는 곡은 여전히 반항기 청소년들이 끌릴 법한 펑크 계열 곡들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운드트랙은 만장일치 평가를 받는 감독답게 곡 선정이 예술이다.
<싱 스트리트>는 뼛속까지 음악영화다. 이야기 전개와 OST 구성이 그대로 겹친다. 대개는 인물 사이 갈등이나 사건이 터지고 수습되는 과정을 통한다면, 이 작품은 음악이 그 몫을 거의 전부 도맡는 셈이다. 밴드의 자작곡 탄생마다 창작 동기부터 가사 내용까지 숫제 시나리오 대신하듯 감당한다. 사랑의 시작은 'Up', 밴드의 출발과 자작곡 탄생은 'Drive It Like You Stole It'에, 공연에 도전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모험의 여정은 'Go Now'가 소화하는 식이다.
당대 브리티시 팝 아이콘과 히트곡이 쉴 새 없이 음악애호가를 즐겁게 한다. 당대 팝 음악 사조이던 뉴 로맨틱스와 글램록에 영향받아 염색과 화장을 한 코너를 보며 교장은 '데이빗 보위' 흉내 내냐며 혀를 찬다. 그저 무심히 배경음악으로 흘러가는 멜로디도 유심히 청취하면 어디서 들어봤거나 당대 인기곡 리스트가 그득하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록큰롤 뮤직비디오 옴니버스, 혹은 영상 사운드트랙 앨범 같은 기능을 한다.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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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 스트리트> 스틸 |
| ⓒ 누리픽쳐스 |
코너는 첫사랑에 맹목적이다. 이미 남자친구가 있고 호감은 느껴도 인생 첫 분기점에서 꿈을 쫓는 게 우선인 라피나에게 자꾸만 연하남 특유의 칭얼댐으로 매력 포인트를 잃곤 한다. 오히려 상대가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는 순간은 자기 꿈에 열중하거나 먼 미래를 내다보는 풍모인데도 사춘기 소년이란 어쩔 수 없는 법. 그러나 밴드 활동이란 단체생활을 통해 코너는 성장해 간다. 자신을 먹잇감으로 대하던 배일리에게 맞설 때 그런 면모가 정점에 달한다.
점점 학업도 뒷전에 틈만 나면 연습과 곡 만들기에 매진하는 일상이지만, 사실 싱 스트리트 활동은 대단한 기회를 얻거나 일확천금 벌이랑은 까마득히 거리가 멀다. 그러나 주인공이 점점 강해지고 성장하는 데엔 결정적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밴드 구성원의 조건은 다 딴판이다. 코너는 첫눈에 반한 연상 여자친구 얼굴 한 번 더 보려다 점점 아티스트의 꿈으로 향하고, 비뚤어질 위기를 음악 활동으로 극복한다. 에이먼은 솔로 뮤지션에서 협연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잉기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친구를 만들었다. 라피나도 밴드 뮤직비디오가 포트폴리오로 제출할 가장 공신력 있는 경력이 된다. 모두 함께 꿈을 찾아 노력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풍경이 보는 이를 흐뭇하게 만든다.
꿈을 잃지 않는다는 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부당한 억압에 맞설 용기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벌이는 막판 학교 축제의 '반란' 역시 혼자라면 불가능한 일.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일단 도전하는 청춘을 누가 탓하랴. 10년 만에 극장에 돌아온 <싱 스트리트>는 빛나는 청춘 비망록으로 후회없는 재회다.
<작품정보>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 영국 드라마
2026.06.10. (재)개봉 106분 15세 관람가
감독 존 카니
출연 퍼디아 월시-필로, 루시 보인턴, 잭 레이너
수입/제공 ㈜누리픽쳐스
배급/공동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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