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방돔광장 첫 주얼리 브랜드가 보여준 시간과 보석의 구조 [더 하이엔드]
1858년 파리에서 출발한 부쉐론은 보석의 아름다움보다 그것이 몸 위에 놓이는 방식을 먼저 고민한 메종이다. 방돔 광장의 첫 주얼러라는 역사 위에서, 리플레와 쎄뻥 보헴은 시간과 보석을 다루는 부쉐론의 방식을 보여준다.

부쉐론의 출발점은 창립자 프레데릭 부쉐론(Frédéric Boucheron)이다.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잇지 않고 14세부터 보석 세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파리의 주얼러 밑에서 기술과 판매를 익힌 뒤, 1858년 파리의 팔레 루아얄 지역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
당시 주얼리 시장의 중심은 보석의 크기와 가치였다. 프레데릭 부쉐론은 달랐다. 그는 보석보다 착용 방식에 주목했다. 주얼리가 몸 위에서 어떻게 놓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중요하게 봤다. 진열 방식도 바꿨다. 주얼리를 케이스 안에 눕혀 놓지 않고 세워 전시해, 고객이 착용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1866년에는 아뜰리에를 세우고 독자적인 제작 체계를 갖췄다. 락 크리스털, 에나멜, 인그레이빙 다이아몬드 등 당시 흔하지 않던 소재와 기법도 적극적으로 썼다. 1879년에는 잠금장치 없이 혼자 착용할 수 있는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퀘스천마크’를 발표했다.
1893년 그는 동시대 주얼러 중 처음으로 파리 방돔 광장 26번지에 부티크를 열고 지금까지 대표 매장이자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부쉐론이 ‘방돔 광장의 첫 번째 주얼러’로 불리는 이유다.

절제의 시계, 리플레
부쉐론의 시계를 대표하는 컬렉션은 1947년 탄생한 ‘리플레(Reflet)’다. 리플레는 프레데릭 부쉐론의 손자인 제라드 부쉐론(Gérard Boucheron)이 구상했다. 그는 기능적 시계를 넘어, 형태와 착용성이 분명한 타임피스를 만들고자 했다.

디자인에는 3년이 걸렸다. 리플레의 첫인상은 부쉐론 디자인 유산을 반영한 직사각형 케이스에서 나온다. 케이스와 다이얼에 적용된 고드롱(Godron) 패턴은 직선의 반복으로 기하학적 긴장감을 만든다. 고드롱은 1860년대 부쉐론 아카이브에서 이어진 장식 코드로, 건축 기둥의 세로 홈을 연상시킨다. 이 입체적인 선은 직사각형 케이스에 힘을 더한다. 케이스에 입김을 불면 방돔 광장의 홀로그램이 드러나는 시크릿 디테일도 있다. 방돔 광장의 첫 주얼러라는 부쉐론의 정체성을 담은 장치다.

리플레는 부쉐론의 멀티 웨어 정신을 시계로 옮긴 모델이다. 이는 히든 클래스프(Hidden Clasp) 구조를 통해 실현된다. 1944년 특허 받은 히든 클래스프는 케이스 안에 잠금 장치를 숨겨 스트랩을 쉽게 교체할 수 있게 했다. 일반적인 핀 버클을 없애고, 시계의 외형을 더 간결하게 만든 방식이다. 다양한 기능을 담으면서도 깔끔하고 절제된 형태를 지키는 요소다. 착용자는 옷차림이나 상황에 따라 스트랩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 남녀 모두 착용 가능하도록 스몰·미디엄 사이즈로 출시되며, 스트랩은 비비드 컬러부터 파스텔 컬러까지 다양한 색상과 소재로 선택 가능하다.
정교한 클래식의 주얼리, 쎄뻥 보헴
1968년 탄생한 쎄뻥 보헴(Serpent Bohème)은 부쉐론을 대표하는 주얼리 컬렉션이다. 출발점은 뱀의 머리를 상징하는 물방울 모티프다. 뱀은 오래전부터 보호와 재생, 영생을 상징해온 존재다. 여기에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뜻하는 ‘보헴(Bohème)’이 더해지며, 컬렉션은 강렬한 상징을 부드러운 주얼리 언어로 바꿨다. 그래서 쎄뻥 보헴의 물방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뱀의 상징성, 1960년대 후반의 자유로운 감각, 부쉐론의 세공 기술이 한 형태 안에 응축된 결과다.

디자인은 간결하지만 제작 과정은 치밀하다. 장인들은 드롭 형태의 모티프를 먼저 다듬고, 스톤의 크기와 배열에 맞춰 파베 세팅을 한다. 가장자리에는 작은 구슬 모양의 비딩 장식을 더해 물방울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든다. 골드 표면에는 뱀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질감을 새긴다. 부쉐론이 1858년 창립 이후 이어온 골드 세공 기술이 이 작은 모티프 안에서 드러난다. 제품 뒷면까지 설계의 일부다. 허니콤 구조의 오픈워크를 적용해 빛이 다이아몬드 아래에서 스며들도록 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광채의 통로로 계산한 것이다.


이 컬렉션이 반세기 넘게 이어진 이유는 하나의 형태를 고정된 유산으로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쎄뻥 보헴은 링·네크리스·브레이슬릿·뱅글로 확장되며 착용 방식의 폭을 넓혔다. 옐로 골드와 다이아몬드에서 출발한 조합은 말라카이트, 터콰이즈, 라피스라줄리, 마더오브펄, 오닉스 등 다양한 소재로 이어졌다. 소재가 바뀔 때마다 물방울의 인상도 달라졌다. 다이아몬드는 빛의 밀도를, 컬러 스톤은 개성과 감정을, 오닉스는 깊은 대비를 만든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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