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피고발된 선관위…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6.3 지방선거에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부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일함이 법적 처벌 문제로 비화했다. 서울 송파·광진·강남구의 14개 투표소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의 투표권이 침해된 것은 단순한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넘어 직무상 과실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선관위는 지난 3일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허철훈 사무총장)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 모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포함한 선관위 관계자 6명에 대해선 이미 시민단체들이 나서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다. 검찰 역시 4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현행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살피기 위한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소속 정무직 공무원의 경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규정돼 있는 만큼 공수처가 경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투표용지 부족 '고의성'이 관건

선거 준비 단계에서 투표 용지가 부족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투표 당일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에 투표 용지 부족 상황을 우려하는 선관위 내부 보고 등이 있었음에도 대응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포괄적 의미의 고의성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수사가 본격화할 경우 투표 용지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투표 대기자 처리 방식의 적절성, 투표시간 연장 이후 투표 진행 절차의 규정 위반 여부 등까지 포괄적으로 검증이 이뤄질 예정이다.

익명을 요청한 선거법 전문 변호사는 “일부러 투표용지를 부족하게 준비한 것만 고의성이 인정되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선거 준비 상황이나 의사결정 과정이 전례와 다르거나 일부라도 문제 가능성을 염두에 뒀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역시 고의성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며 “선관위 입장에선 투표 부족 사태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만약에라도 또 다른 선거 관리 부실 사례가 드러난다면 상황이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픈 대목일 것”이라고 말했다.
용지 없어 투표 포기…'선거 방해죄' 해당할까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하거나, 투표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늦은 저녁까지 투표하기 위해 대기한 상황도 선관위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공직선거법(제242조 2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자의 투표를 간섭하거나 방해한 사람”을 3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구 조사 결과 및 개표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는 상황에서 투표가 이뤄진 점 역시 선관위의 관리 부실로 인한 문제란 점에서 법적 책임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공직선거법은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선거일 전 6일부터 각종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고 있는데, 오후 10시까지 투표시간이 연장된 서울 잠실7동 제2투표소 등에선 유권자들이 출구 조사 결과에 노출된 상태서 투표가 이뤄졌다. 또 선거일 당일 투표소에 새로운 투표용지를 보낸 것 역시 '투표용지는 선거일 전날까지 읍·면·동 선관위에 송부해 보관해야 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제151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하며 “밤 10시에 투표한 분들은 출구 조사와 초반 개표 결과까지도 확인한 상태에서 투표를 했다면 투표일 5일 전 여론조사 깜깜이 기간을 명시한 공직선거법 108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또 선관위가 투표용지를 다급하게 새로 인쇄해서 이송했다고 하는데 이것 자체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진우·석경민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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