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만에 기타 잡고 관객 앞에 선 심수봉…“이제야 평범한 삶 찾은 듯”

“40년 넘게 단 한 번도 기타를 잡지 않았어요. 총성이 울린 ‘그 날’을 연상시켰으니까…. 그러나 이젠 무대에서 세 곡 정도는 기타를 치며 노래해요. 관객들이 박수 쳐주실 때마다 과거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요.”
가수 심수봉은 지난 2년 간 전국에서 60여 차례 진행한 ‘더 심수봉쇼 콘서트’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부터는 무대에서 직접 기타도 연주한다는 것이다. 심수봉이 말하는 ‘그 날’은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 당한 일을 말한다. 현장에 악사로 불려갔다 사건을 목격했던 심수봉은 “이제사 좀 극복이 된 것 같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신곡 ‘품어줄 안아줄’ 공개(9일)를 앞두고 지난 3일 경기 삼송리의 MBN 스튜디오에서 심수봉을 만났다. 한 차례 서면으로 질의 응답을 주고받은 뒤였다. “말 재주가 없어서 걱정”이라던 그는 사흘 만에 A4 용지 14장을 빼곡히 채운 답변서를 보내왔다. 정작 만나서는 “이런 것도 말해도 되냐”며 속얘기들을 털어놨다.

Q : 한때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했다.
A : 그랬나.(웃음) 워낙에 밖에 나가는 걸 즐기지 않는다.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음악 듣고 피아노 치는 게 하루 일과다.
Q : 어떻게 지냈나.
A : 최근 히든싱어8(JTBC) 출연했다. 그땐 정말 녹화가 힘들어서 쓰러질 뻔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를 땐 2절을 불러야 하는데 1절 가사를 불러 NG가 났는데 방송에 그대로 나갔더라. 다시 보니 웃음만 났다.
Q : 곡도 쓰나.
A : 이젠 내 곡을 후배들에게도 줘보려고 한다. 후배 가수이자 큰언니의 손주인 (손)태진이 덕에 떠올린 아이디어다. 처음 쓴 곡은 고음이 좋은 여자 가수에게 어울려서 송가인에게 줬다. 두 번째 곡은 태진이에게 줬는데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직 녹음을 안 한다.(웃음) 다음 주자는…. 히든싱어 우승자인 최연화가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 무대로 데뷔했다. 그의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은 입상엔 실패했지만 음반으로 발매되며 크게 히트를 쳤다. 이듬해 10·26 사건을 겪은 뒤 방송 활동 금지 등으로 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이후 발표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비나리’ 등은 연이어 히트를 쳤다.
Q : 요새도 귀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A : 늘 음악은 하늘에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작곡·작사 등 창작하는 것도 노력이 아니라 물려받은 자질이다. 지금도 멜로디는 단번에 쓴다.
Q : 타고났다.
A : 할아버지(심정순), 아버지(심재덕), 작은 아버지(심상건) 모두 소리꾼이셨다. 고향 서산에는 할아버지 기념비도 세워져있다. 비문엔 ‘이 나라 음악을 주도한 판소리 명창이요 가야금 명인’이라고 적혀있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사랑이 평생의 목표가 돼버렸다.
심수봉의 첫 악기는 피아노였다. 학교도 안 간 딸에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선생은커녕 악기도 없는 고향 마을을 뒤진 끝에 한 교감 선생님 집에 일본인이 해방 무렵 주고 간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 길로 그 댁의 딸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Q : 기타는 언제 배웠나.
A : 중학생 때 몸이 좋지 않아 휴학하고 어머니와 떨어져 무의도에서 요양할 무렵, 한 대학생 무리가 바닷가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더 애니멀스’의 ‘해 뜨는 집’을 듣고 홀린 듯 쫓아갔다. 어머니께 연락해 다음에 섬에 올 때 기타를 사달라고 했다.
Q : 드럼도 연주했다.
A : 고등학생 때 TV에 나오는 드러머의 연주를 보고 반해버렸다. 직접 쳐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학원에 등록했다. 아마추어 콩쿠르에 나가 상도 탔다. 이후 미 8군의 전용 클럽 무대에 서는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호텔에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데뷔곡 ‘그때 그 사람’을 쓴 것도 그 무렵이다. 그는 “가사를 쓸 때는 항상 고민이 많다”며 “발음이 발성과 맞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쉽게,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심수봉의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든다. ‘사랑밖엔 난 몰라’는 가장 많이 울었던 시절 썼던 곡이라고 했다. “10·26 트라우마에, 가정사도 굴곡이 있었다. 가사는 그런 고통을 뿌리로 해서 써지나보다 위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Q : ‘비나리’는 프로포즈 송이다.
A : 짝사랑 하던 남편에게 고백하며 불러준 노래였다. 남편은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PD였는데, 하루는 남편을 불러 놓고 ‘당신을 떠올리며 쓴 노래’라며 차 안에서 테이프에 녹음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들려줬다. 남편이 계속 앵콜을 청해서 7번을 더 불렀다.
![심수봉의 어린 시절. [사진 에스비기획]](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04/joongang/20260604145423282tkxq.jpg)
신곡 ‘품어줄 안아줄’도 남편과의 교감 끝에 나왔다. 미국 민요 ‘웨이페어링 스트레인저’라는 곡에 심수봉이 가사를 붙였는데, 제목은 남편 작품이다.
Q : 신곡은.
A : ‘백만송이 장미’에 이어 두 번째 번안곡이다. 공연 때 기타를 치며 부를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음원 녹음에 뮤직비디오까지 처음으로 만들었다. 지난 4월 공주 공연에서 기타 치면서 처음 노래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후로 앵콜 무대에서 이 곡을 테크노 버전으로 바꿔 한 번 더 부르며 춤도 췄다.
Q : 기억에 남았겠다.
A : 이번 투어 공연은 내게 정말 특별하다. 첫 공연이었던 2024년 대구 무대에서 객석과 처음 눈맞춤을 했을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복 받은 사람이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오랜 세월 이방인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평범한 삶을 되찾은 것 같다.
그는 은퇴 생각을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체력이 닿는 한 음악은 계속 하고싶다”고 했다.
Q : 아직도 무대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A : 내 음악으로, 내 인생의 명암도 적당히 깃들어 있는 가요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를 소원한다. 제목도 ‘좋은 선수 작은 자 하나’로 정해놨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려보지 못한 작은 사람들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게 인생 마지막 목표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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