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만에 기타 잡고 관객 앞에 선 심수봉…“이제야 평범한 삶 찾은 듯”

최민지 2026. 6. 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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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심수봉이 오는 20일 방영되는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녹화를 마친 후 인터뷰에 응하며 기타를 안고 있다. 40년 넘게 기타를 잡지 않았던 그는 "이제야 평범한 삶을 되찾은 듯 하다"며 웃음 지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0년 넘게 단 한 번도 기타를 잡지 않았어요. 총성이 울린 ‘그 날’을 연상시켰으니까…. 그러나 이젠 무대에서 세 곡 정도는 기타를 치며 노래해요. 관객들이 박수 쳐주실 때마다 과거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요.”

가수 심수봉은 지난 2년 간 전국에서 60여 차례 진행한 ‘더 심수봉쇼 콘서트’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부터는 무대에서 직접 기타도 연주한다는 것이다. 심수봉이 말하는 ‘그 날’은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 당한 일을 말한다. 현장에 악사로 불려갔다 사건을 목격했던 심수봉은 “이제사 좀 극복이 된 것 같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신곡 ‘품어줄 안아줄’ 공개(9일)를 앞두고 지난 3일 경기 삼송리의 MBN 스튜디오에서 심수봉을 만났다. 한 차례 서면으로 질의 응답을 주고받은 뒤였다. “말 재주가 없어서 걱정”이라던 그는 사흘 만에 A4 용지 14장을 빼곡히 채운 답변서를 보내왔다. 정작 만나서는 “이런 것도 말해도 되냐”며 속얘기들을 털어놨다.

가수 심수봉.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한때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했다.
A : 그랬나.(웃음) 워낙에 밖에 나가는 걸 즐기지 않는다.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음악 듣고 피아노 치는 게 하루 일과다.

Q : 어떻게 지냈나.
A : 최근 히든싱어8(JTBC) 출연했다. 그땐 정말 녹화가 힘들어서 쓰러질 뻔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를 땐 2절을 불러야 하는데 1절 가사를 불러 NG가 났는데 방송에 그대로 나갔더라. 다시 보니 웃음만 났다.

Q : 곡도 쓰나.
A : 이젠 내 곡을 후배들에게도 줘보려고 한다. 후배 가수이자 큰언니의 손주인 (손)태진이 덕에 떠올린 아이디어다. 처음 쓴 곡은 고음이 좋은 여자 가수에게 어울려서 송가인에게 줬다. 두 번째 곡은 태진이에게 줬는데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직 녹음을 안 한다.(웃음) 다음 주자는…. 히든싱어 우승자인 최연화가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 무대로 데뷔했다. 그의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은 입상엔 실패했지만 음반으로 발매되며 크게 히트를 쳤다. 이듬해 10·26 사건을 겪은 뒤 방송 활동 금지 등으로 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이후 발표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비나리’ 등은 연이어 히트를 쳤다.

Q : 요새도 귀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A : 늘 음악은 하늘에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작곡·작사 등 창작하는 것도 노력이 아니라 물려받은 자질이다. 지금도 멜로디는 단번에 쓴다.

Q : 타고났다.
A : 할아버지(심정순), 아버지(심재덕), 작은 아버지(심상건) 모두 소리꾼이셨다. 고향 서산에는 할아버지 기념비도 세워져있다. 비문엔 ‘이 나라 음악을 주도한 판소리 명창이요 가야금 명인’이라고 적혀있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사랑이 평생의 목표가 돼버렸다.
심수봉의 첫 악기는 피아노였다. 학교도 안 간 딸에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선생은커녕 악기도 없는 고향 마을을 뒤진 끝에 한 교감 선생님 집에 일본인이 해방 무렵 주고 간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 길로 그 댁의 딸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Q : 기타는 언제 배웠나.
A : 중학생 때 몸이 좋지 않아 휴학하고 어머니와 떨어져 무의도에서 요양할 무렵, 한 대학생 무리가 바닷가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더 애니멀스’의 ‘해 뜨는 집’을 듣고 홀린 듯 쫓아갔다. 어머니께 연락해 다음에 섬에 올 때 기타를 사달라고 했다.

Q : 드럼도 연주했다.
A : 고등학생 때 TV에 나오는 드러머의 연주를 보고 반해버렸다. 직접 쳐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학원에 등록했다. 아마추어 콩쿠르에 나가 상도 탔다. 이후 미 8군의 전용 클럽 무대에 서는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2021년 KBS 추석 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 심수봉. 중앙포토


호텔에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데뷔곡 ‘그때 그 사람’을 쓴 것도 그 무렵이다. 그는 “가사를 쓸 때는 항상 고민이 많다”며 “발음이 발성과 맞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쉽게,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심수봉의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든다. ‘사랑밖엔 난 몰라’는 가장 많이 울었던 시절 썼던 곡이라고 했다. “10·26 트라우마에, 가정사도 굴곡이 있었다. 가사는 그런 고통을 뿌리로 해서 써지나보다 위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Q : ‘비나리’는 프로포즈 송이다.
A : 짝사랑 하던 남편에게 고백하며 불러준 노래였다. 남편은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PD였는데, 하루는 남편을 불러 놓고 ‘당신을 떠올리며 쓴 노래’라며 차 안에서 테이프에 녹음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들려줬다. 남편이 계속 앵콜을 청해서 7번을 더 불렀다.

심수봉의 어린 시절. [사진 에스비기획]


신곡 ‘품어줄 안아줄’도 남편과의 교감 끝에 나왔다. 미국 민요 ‘웨이페어링 스트레인저’라는 곡에 심수봉이 가사를 붙였는데, 제목은 남편 작품이다.

Q : 신곡은.
A : ‘백만송이 장미’에 이어 두 번째 번안곡이다. 공연 때 기타를 치며 부를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음원 녹음에 뮤직비디오까지 처음으로 만들었다. 지난 4월 공주 공연에서 기타 치면서 처음 노래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후로 앵콜 무대에서 이 곡을 테크노 버전으로 바꿔 한 번 더 부르며 춤도 췄다.

Q : 기억에 남았겠다.
A : 이번 투어 공연은 내게 정말 특별하다. 첫 공연이었던 2024년 대구 무대에서 객석과 처음 눈맞춤을 했을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복 받은 사람이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오랜 세월 이방인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평범한 삶을 되찾은 것 같다.
그는 은퇴 생각을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체력이 닿는 한 음악은 계속 하고싶다”고 했다.

Q : 아직도 무대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A : 내 음악으로, 내 인생의 명암도 적당히 깃들어 있는 가요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를 소원한다. 제목도 ‘좋은 선수 작은 자 하나’로 정해놨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려보지 못한 작은 사람들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게 인생 마지막 목표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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