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원전’ SMR 짓는 빌 게이츠…SK 등 韓기업이 ‘날개’ 달았다[르포]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출발한 버스가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와이오밍주 케머러엔 미국 최초로 건설 허가를 받은 ‘테라파워’의 4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케머러 1호기’의 현장 조립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미래 에너지의 탄생지’가 될 거란 평가를 받는 미국 최초의 SMR 건설 현장은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정적인 대용량 전력 공급이 필요한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인근 최소한의 부지에 안전하고 강력한 전력 공급원을 만드는데 특화된 SMR의 특성 때문이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이곳은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의 탄생지이자 새로운 원자력 시대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테라파워의 나트륨 4세대 원자로는 기존의 원자로보다 1000배 이상 안전해 훨씬 작은 부지에도 건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는 소듐냉각고속로(SFR)를 기반으로 한 SMR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 경수로 원자로가 냉각재로 일반 물(경수)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 원자로는 끓는점이 880℃인 액체 나트륨을 쓴다. 액체 나트륨은 끊는 점이 높기 때문에 원자로 안에서 물이 끓지 않도록 하기 위해 높은 압력을 가해야 하는 기존 경수로형 원전보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게 테라파워측 설명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 3월 이러한 테라파워의 기술력을 인정해 케머러 1호기의 건설을 허가했다. 미국에서 신규 상업용 원전 건설이 승인된 것은 10년만이고, 신기술로 꼽히는 SMR 건설로는 최초 사례다.
특히 와이오밍에서 시작해 전세계 시장으로 확장을 노리고 있는 테라파워의 글로벌 SMR 프로젝트엔 한국의 기업들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8월 2억 5000만 달러(3800억원)를 투자하면서 게이츠 재단에 이은 테라파워의 2대 주주가 됐다. 특히 SK는 테라파워 SMR의 아시아 시장 독점 활용권을 가진 전략적 투자자다. SK는 이미 지난 4월 베트남과 AI 생태계 조성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데이터센터 구축부터 SMR을 활용한 전력 공급 기반 모델을 조성할 기반을 확보했다.

SK에 이어 HD현대는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은 SK가 보유한 4000만 달러의 지분을 확보해 테라파워를 중심에 둔 한국 기업들의 협력 시스템이 구축됐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원자로의 설계 기술을 가진 테라파워가 SMR을 지을 때마다 SK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일종의 패키지로 참여해 발전소를 직접 건설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르베크 CEO도 원전 건설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테라파워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는 “미국은 오랫동안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플랜트를 확장하기 위해선 원전 기술을 갖춘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테라파워는 미국의 어떠한 원자력 기업보다 한국과 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 설치된 원자로 조립 시설을 가리키며 “한국의 파트너들이 제작한 원자로 부품들이 이 건물 안에서 조립돼 그대로 설치된다”며 향후 이어질 추가 건설에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라파워는 12기의 SMR 건설을 예정하고 있다. 이중 8기는 AI 시대를 앞두고 데이터센터 구축을 염두에 둔 메타가 발주했다. 르베크 CEO는 “지난해 AI 반도체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가 테라파워에 투자했다”며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가진 SK와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가진 엔비디아의 참여는 AI와 원자력이 결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실제 AI 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당장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하나를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선 SMR 1기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포럼(WEF)은 “2040년까지 SMR 시장이 연평균 22%씩 성장할 것”이라며 “2050년 글로벌 원전 투자에서 SMR의 비중이 17∼3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성장 전망이 나오면서 지난 3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일본의 대미투자 2차 프로젝트에 SMR을 포함시켰다. 미국 에너지기업 GE 버노바와 일본 기업 히타치가 미국 테네시주와 앨라배마주에 400억 달러(61조원) 규모로 SMR을 건설하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도 한·미 무역합의에 따른 3500억 달러(약 53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대상으로 SMR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투자 대상은 오는 18일 대미투자특별법이 발효된 이후에 확정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르베크 CEO는 “우리는 한·미 무역합의에 SMR이 포함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며 “이는 정부 차원의 결정이지만 이와 별개로 상업적 측면에서 우리는 어떤 미국의 원자력 기업보다 한국 기업들과 강력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 간 결정이 우리 프로젝트 진행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케머러=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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